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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딸깍 출판'에 이어 '딸깍 용역' 시대?

어느 분야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논란이 출판계에서도 크게 일었다. AI 이용해 대량 생성하는 저품질 도서와 관련된 논란이다. 클릭으로 단시간에 책을 찍어낸다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른바...

'딸깍 출판'에 이어 '딸깍 용역' 시대?

제주도, AI 전면 활용 업체에 용역비 1800만원 투입

작년 12월 17일, 19일 한 업체와 수의계약 2건 체결

용역 마무리까지는 각각 13일, 9일 걸려...품질은?

업체 대표, 제주지사 후보 자서전 펴낸 출판사도 운영

2025 제주 마을 단위 생활권 조사 용역 보고서 표지

[미디어제주 = 김재훈 기자] 어느 분야인들 그렇지 않겠느냐만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논란이 출판계에서도 크게 일었다. AI 이용해 대량 생성하는 저품질 도서와 관련된 논란이다. 클릭으로 단시간에 책을 찍어낸다는 비판적인 관점에서 이른바 ‘딸깍 출판’라고 일컫는다. 올해초, 대량 생산되는 AI 생성 도서를 국립도서관이 납본을 거부하면서, 방향을 잡아가고는 있는 모습이다.

'딸깍 출판' 문제가 어떻게 진행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지난해 제주도가 용역을 추진하면서 AI를 전면적으로 활용하는 업체에 용역을 맡긴 사실이 파악됐다.  행정 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치는 영역에도 AI가 도입되고 있는 것이다. 개인이 구매하고 소비하는 도서와 비교하면 비용이나 사회적 영향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물론, AI의 발전 속도는 놀랍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위협한다. 하지만 현재 시점에서, 행정 당국이 해당 분야를 오랜 기간 연구하며 역량을 쌓아온 전문가 집단이 아닌 AI 활용 업체에 용역을 맡기는 데 대해서는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그 결과가 대량 양산되고 있는 도서의 품질과 다를 바 없다면 ‘딸깍 용역’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AI 산업에 대한 무분별한 지원과 행정 당국의 편의에 기인해 자칫 겉만 번드르르한 양산형 저품질 용역에 혈세가 대거 투입될 물꼬가 터진 것은 아닌지 서둘러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행정이 실제 시민의 생활 현장과 멀어지고, 정책이 시민의 삶과 괴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이란 공습 과정에서 AI가 인간의 생사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목격했지만, AI가 정책 개발 과정에 도입되면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에 대한 영향 및 이와 관련된 사회적 의미도 검토해 볼 만하다.

<미디어제주>는 제주도는 지난해 12월 17일 부산시에 위치한 ㅈ주식회사와 ‘제주 마을 단위 생활권 조사 용역’ 계약을 891만 원에 체결한 사실을 확인했다. 용역 기간은 17일부터 같은 달 30일까지로, 계약부터 준공까지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2주 만에 200페이지 분량의 결과 보고서를 만들었다. 전문 연구자들이 소속된 연구소에서 통상적인 조사 및 연구 용역을 진행할 때 수개월 이상 시간을 쏟는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짧은 기간이다. 딸깍.

제주도청의 수의 계약 내역/제주도청 홈페이지 수의계약 정보 갈무리

그런데 이 용역 계약일로부터 이틀 뒤인 19일, 제주도는 ‘AI 기반 제주지역 주요 현안 종합 이슈 조사 용역’을 같은 업체와 885만 8,000원에 계약했다. 이번에는 대놓고 AI를 이용해 제주지역 현안 및 이슈를 조사한다고 명시했다. 이 용역은 더 빠르게 마무리됐다. 같은 달 28일에 준공했으니, 불과 9일 만이다. 딸깍. 두 계약은 모두 수의계약이었으며, 계약금 총액은 1,776만 8,000원에 달한다.

AI기반 제주지역 주요현안 종합 이슈 조사 용역. 9일만에 끝냈다./제주도청 홈페이지 수의계약 정보 갈무리

<미디어제주>는 위 두 개의 용역 보고서 중 ‘제주 마을 단위 생활권 조사 용역’ 보고서를 입수했다. AI를 전면적으로 활용한 용역 보고서는 좀 남다를까? 전혀. 아무런 티가 나지 않는다. 겉을 봐서는 알 수 없다. 보고서 표지나 내지 어디에도 AI가 생성했다는 정보를 제공하는 표시는 없었다. AI를 어떻게, 어느 수준에서 활용했는지에 대한 정보도 담기지 않았다. AI 생성 사진이 문제가 되면서 최근에는 AI가 생성한 사진에 워터마크를 넣기도 하는데, 행정 집행 및 정책 수립 과정에 사용하는 용역 보고서에는 이런 정보가 전혀 없는 것이다.

서술 방식에 있어서도 기존 보고서와 차이가 컸다. 논리 전개 과정에서 각각의 내용이 어떤 선행 연구나 학자, 혹은 근거에 기반했는지 확인할 수 있는 인용 표시는 보이지 않았다.(본문 중 인용 표시는 딱 하나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인용 정보가 부족했다.). 물론, 인용 및 출처 표도 없다. 특히 ‘제주 마을 단위 생활권 조사 용역’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제주에 특화된 구체적인 조사 내용이 부재했다.

보고서는 도입부에 “분석에 활용되는 자료는 주로 공개된 행정 자료와 정책 문헌에 기반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그 공개된 자료조차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오영훈 도정은 15분도시 생활권 30곳을 조성하겠다고 발표하고 추진 중이다.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15분도시 생활권과 연계되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보고서는 제주 마을 생활권을 도시 생활권, 농촌 생활권, 도서·특수 생활권 등으로 제시했다. 실제 살아있는 제주생활권이 아닌 오래되고 안전한 개념을 토대로 제주의 특수성과 구체성을 일반화한 것이다. 딸깍.

보고서의 부분 부분을 떼어놓고 보면 틀린 말은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보고서 내 ‘제주도’가 들어갈 자리에 세계 어느 지역을 대강 대입해도 무방해 보일 정도다. 용역진 혹은 AI가 쓴 보고서는 스스로 '구조화 했다'고 말하고 있는데, 글쎄다. 기자의 시각으로 볼 때 이는 구조화가 아닌 형해화다.

이 용역을 의뢰한 제주도 자치행정과의 담당 팀장 및 주무관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제주 마을 단위 생활권 조사 용역’ 추진 배경에 대해 내부적으로 필요한 용역인데, 제안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제안이 들어왔는지 물었지만 답을 피했다. 누구일까. 업체일까. 상부일까. 아니면 또 다른 누가? 용역 과업지시서 등을 요구했지만 담당 주무관은 정보공개청구 과정을 요청했다.

제주도청 기획조정실 정책기획관의 담당 관계자로부터 ‘AI 기반 제주지역 주요 현안 종합 이슈 조사 용역’ 파일을 요청하고 흔쾌히 알겠다는 답을 들었지만, 결국 파일로도 책자로도 용역 결과를 받지 못했다. 지난 2일 파일을 요청했지만 6일까지 이메일은 오지 않았다. 이에 6일 오후 직접 부서로 찾아갔지만 상부 보고 및 검토가 필요하다는 답을 들어야 했다. 피곤하게 구시네,라는 듯한 눈빛. 참, 기자라는 건 남을 피곤하게 만들면서 피곤해지는 일이다. 하지만 7일에는 받을 수 있길 바란다. 보고서를 쓴 AI와 다르게 우리는 서로 한없이 피곤해지곤 하는 인간들이니까.

이들 용역의 품질과 관련된 구체적인 부분은 추후 관련 전문가들과 함께 살펴보고, 과업지시서 내용을 성실히 이행했는지에 대해서도 계속 들여다보고자 한다.

한편, 두 용역을 수행한 ㅈ주식회사는 최근 제주도에 제주본부를 설립하는 등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ㅈ주식회사 대표 L씨는 도서를 출판하는 별도의 업체 ㅅ사의 대표를 겸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ㅅ사는 올해 1월 15일 등록했다. 역시 AI 생성 도서들을 생산하고 있다. ㅅ사는 제주도지사 선거에 나서는 모 예비후보의 자서전 등을 펴내기도 했다.

(참고로 이 기사를 쓰면서 부주의한 부분은 없나, 하는 생각에 지나치게 사려깊어졌다. 마지막 문장 때문이다. 그러다가 끝내 이런 형식을 택하게 됐다. 어느새 새벽 4시가 지났다. 내가 그렇지 뭐. AI 없이 학업을 마친 모든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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