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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깅노트] 상장 기념식 '눈물'의 역설

반도체 전공정 장비 기업 HPSP도 상장 이후 성장 흐름을 이어왔다. 2022년 코스닥 상장 당시 매출 1593억원에서 2024년 1814억원으로 확대됐고, 순이익도 660억원에서 863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회사는 상장 자금을...

[디깅노트] 상장 기념식 '눈물'의 역설

"저는 상장 기념식에서의 감동 유무에 따라 투자를 결정합니다."

최근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와 점심을 먹으며 들은 말이다. 얼핏 기념식이 감동적일수록 투자 매력이 높다는 말로 들리지만, 사실은 정반대의 의미였다. 그는 상장 기념식이 화려하고 대표의 감격스러운 눈물이 많을수록 투자를 지양한다고 했다.

아리송한 투자 철학 같았지만 들어보니 꽤나 설득력 있는 기준이었다. 상장 기념식이 유독 감격적이고 감동적일수록 이후 성장세가 빠르게 꺾이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회사가 상장을 하나의 '도착지점'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대표의 얼굴에도 긴 여정을 끝내고 마침내 통과했다는 안도감이 묻어난다.

반대로 기념식이 덤덤하고 심심한 기업들은 분위기가 다르다. 상장을 끝이 아니라 출발선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아직 갈 길이 멀다는 표정이다. 그래서인지 상장 이후에도 성장세가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그는 말했다.

상장은 결과를 평가하는 자리가 아니라 검증이 시작되는 출발선이다. 긴 여정을 함께할 동반자도 생긴다. 회사를 시장에 공개하고 자금을 조달한 순간부터는 투자자들과 함께 가야 한다. 주요 경영 상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성장성을 입증해야 하며, 주주와의 소통을 통해 신뢰까지 쌓아야 한다. 할 일은 훨씬 늘어난 셈이다.

다만 상장을 시작이 아니라 골인 지점으로 받아들이는 기업들이 여전히 있다. 상장 당시의 기업가치나 공모가를 하나의 성적표처럼 여기는 모습이다. 이 과정에서 주주 역시 함께 가야 할 동반자가 아니라, 성과를 보여주고 끝나는 일회성 관객처럼 취급하기도 한다.

상장을 기점으로 도약하는 기업은 더 높은 성장을 이어간다. 실제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분명하다. 상장 이후 곧바로 실행에 나선다는 점이다. 화장품∙디바이스 기업 에이피알이 대표적이다. 회사는 2024년 2월 유가증권 시장에 상장했다. 수요예측 단계부터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고, 일반 청약에서도 약 14조원의 자금을 끌어모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의미 있는 지점은 그 이후다. 상장 첫해 매출은 전년 대비 약 38% 증가한 7228억원을 기록했다. 이어 지난해에는 매출이 1조5273억원까지 늘며 다시 한 번 크게 뛰었다. 1년 만에 외형이 두 배 이상 확대된 셈이다. 에이피알은 상장 직후 미국 진출을 본격화했고 현지 팝업스토어, 옥외광고 등을 이어가며 해외 매출을 빠르게 확대했다. 현재는 해외 매출이 내수를 약 4배 웃돌고 있다. 회사는 여기에 멈추지 않고 이제 유럽과 동남아에도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다른 업종에서도 확인된다. RPG 게임 를 선보인 시프트업도 상장 이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24년 상장 첫해 매출은 2241억원으로 전년 대비 32.9%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2945억원으로 한층 더 늘었다. 여기에 순이익률은 65%에 달한다. 시프트업은 상장 직후 주력 게임인 니케의 중국 진출을 꾀했다. 142명이던 니케 팀을 2025년 160명까지 순차적으로 충원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현재 시프트업의 매출 대부분은 중국와 일본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매출이 약 80%를 차지한다.

장비업체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반도체 전공정 장비 기업 HPSP도 상장 이후 성장 흐름을 이어왔다. 2022년 코스닥 상장 당시 매출 1593억원에서 2024년 1814억원으로 확대됐고, 순이익도 660억원에서 863억원으로 꾸준히 상승했다. 회사는 상장 자금을 연구개발과 미국 내 시설 확충에 집중 투입해 기반을 다졌다. 지난해 매출은 1730억원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올해는 반등이 예상된다. 삼성 파운드리 미국 공장 수주를 확보한 데 이어 해외 낸드 고객사로의 공급도 예정돼 있다.

지금 시장은 예전과 다르다. 투자자들의 눈높이가 크게 올라갔다. 개인투자자들도 공시를 직접 보고 분기 실적을 비교하기 때문에 상장 당시 제시한 비전이 실제로 이어지는지도 빠르게 검증된다. 때문에 지금의 상장은 진검승부의 무대다. 상장을 목표점으로 내리막길을 걸어갈지, 출발점으로 도약할지는 기업의 마음가짐과 역량에 달렸다. 상장 기념식에 눈물보다는 다짐과 각오가 많아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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