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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뒷모습으로 쓴 서사(敍事)

세상을 등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운명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초상(肖像)일지도 모른다. 얼굴은 일시적인 표정으로 감정을 숨길 수 있다면, 뒷그림자는 지나온 날의 서사(敍事)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먼저 쓰인 문장들은 되돌릴 수 없는 삶의 결정적인 증거이다.

뒷모습으로 쓴 서사(敍事)

구글 선호출처 추가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세상을 등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어쩌면 우리의 운명을 정직하게 보여주는 초상(肖像)일지도 모른다. 얼굴은 일시적인 표정으로 감정을 숨길 수 있다면, 뒷그림자는 지나온 날의 서사(敍事)를 숨김없이 드러낸다. 먼저 쓰인 문장들은 되돌릴 수 없는 삶의 결정적인 증거이다. 숙명은 돌이킬 수 없는 필연이겠지만 운도 필연처럼 다가온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으로 채워지는 여정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운명을 인지하는 방식의 뿌리를 건드린다. 그는 인과율과 필연성에 대한 믿음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다. 'A가 발생했으니 B가 발생할 것이다'라는 필연적 믿음은 실제 관찰되는 인과관계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오직 A와 B가 시간적으로 반복되어 발생해왔다는 사실뿐이다. 흄에게 진정한 필연성은 이성적 추론이나 객관적 사실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오직 경험에서 비롯된 '심리적 습관'에 불과하다. 태양이 매일 뜬다고 해서 내일도 뜰 거라는 믿음은 논리적 필연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본성에 자리 잡은 심리적 기대에 가깝다. 상관관계(correlation)에서 인과관계(causation)를 추론하는 경향이다. 운명이란 외부의 절대적 설계가 아니라, 반복적인 관습과 믿음의 체험으로 인과적으로 해석하며 만들어낸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뒷모습도 이성이 아닌, 무의식적으로 되풀이되는 습관과 견고한 믿음이 만들어낸 심리적 궤적을 담아낸 문장이다. 이 관습의 문장이 삶의 방향을 마치 숙명처럼 고정하는 것이다.

흄이 제시한 심리적 필연성 앞에서, 실존주의의 아버지라 불리는 덴마크의 철학자 쇠렌 키르케고르는 결단(Decision)의 중대함을 역설하며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그는 인간이 군중 속에서 익명으로 흘러갈 때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다. 신 앞에 선 단독자(單獨者)가 되면 참된 실존을 경험한다고 보았다. 키르케고르 사상은 피할 수 없는 윤리적 선택에 놓여 있다. 인간은 무수한 가능성에서 합리적인 계산만으로는 해답을 찾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봉착하곤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신앙의 도약(Leap of Faith)'이라 불리는 비합리적인 결단을 감행하며 자신을 던져야 한다. 도약은 전적으로 고독한 개인의 몫이자 책임이다. 우리의 뒷모습은 군중으로부터 돌아서서,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절벽에서 내린 단독적인 결단들이 쌓여 만들어진 서사이다. 선택을 회피할 수 없다. 모든 문장은 우리의 용기와 고독을 증언한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운명을 결정하는 실존적 심연이다.

현대 프랑스 철학자 에마뉘엘 레비나스는 운명적 서사를 타자(他者)와의 관계에서 조명한다. 개인의 책임을 무한대로 확장한다. 그는 서구 철학이 '나'라는 주체를 중심으로 모든 것을 이해해 왔다고 비판하고, 타자의 '얼굴(Face)'이 우리에게 던지는 윤리적 요구에 주목한다. 레비나스에게 타자의 얼굴은 어떤 명령이나 논리적 요청 이전에, 우리에게 무한한 책임을 부여하는 근원적인 소명이다. 따라서 내 삶의 궤적, 즉 운명은 나 자신의 자유로운 선택에서만 비롯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자의 고통과 존재가 나의 책임 범위를 끊임없이 확장하며, 삶의 방향을 윤리적으로 규정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뒷모습은 지나온 길의 흔적만을 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외면할 수 없었거나 혹은 짊어졌던 타인의 무게가 새겨진 책임의 문장이다. 운명의 서사는 타자의 존재로 인해 '나'에게 강제된 의무감으로 완성된다. 우리가 등을 돌리고 걸어가는 길은 타인과의 관계적 윤리가 빚어낸 필연의 길이기도 하다.

흄은 운명의 필연성을 습관과 믿음의 결과로 보았다. 키르케고르는 고독한 결단에서 참된 실존을 찾으려 했다. 레비나스는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에서 윤리적 소명을 발견했다. 사상가들이 보여주듯, 삶의 서사는 이미 완성되어 있다. 되돌아갈 수 없는 과거의 선택과 행위들이 지금의 뒷모습을 만들었다. 그것은 우리에게 후회나 회피가 아닌 책임적 수용을 요청한다. 살아온 날의 문장들을 겸허히 감당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내딛는 다음 한걸음이 우리의 서사에 더해질 마지막이자 도덕적인 문장이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인생은 족적(足跡)의 고독한 침묵을 외면할 수 없다. 스스로 서명을 남겨야 하는 투쟁이다. 이성(理性)은 예측할 수 없는 심연에서 신념의 비약(飛躍)으로 고유한 자아의 형상을 직조해낸다. 작성된 문장에 의미를 부여하고 타인의 어려움을 기피하지 않을 때, 우리의 뒷모습은 윤리적 건축물이 된다. 김진 김진명리학회 회장·시인·철학자

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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