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병원 폐원, 9월 1일부터 분만 의료기관 ‘0곳’
73세 원장·64세 전문의, 야간 분만 나눠 맡아
한때 연 1000건 분만…최근엔 100건 남짓
연 5억 원 지원에도 24시간 분만체계 유지 한계
26일 밀양 제일 병원 앞. 31일 마지막 영업을 끝으로 9월 1일 폐업한다. /최은주 기자
“24시간 대기해야 해요. 밤에 분만이 있었다고 해서 다음 날 외래 진료를 안 보는 게 아니니까요.”
산부인과 의사 홍성권(73) 밀양 제일병원 원장은 일주일에 사흘 밤을 병원에서 보낸다. 나머지 나흘은 김창수(64) 전문의가 맡는다. 아이는 시간을 정해 태어나지 않는다. 두 사람은 마음 편히 병원에서 30분 이상 떨어진 곳으로 가지 못했다. 밤새 아이를 받은 날에도 이튿날이면 다시 외래 진료실에 앉았다.
두 사람이 그렇게 나눠 지켜온 밀양의 밤이 31일 끝난다. 31일 마지막 진료를 끝으로 9월 1일 폐업한다. 제일병원은 산부인과·내과·마취과·소아과 등 4개 진료과, 79병상 규모다. 직원은 75명, 의사는 4명이 남았다. 1986년 문을 연 뒤 40년간 밀양의 분만을 맡아왔다.
분만실을 지킨 두 의사
홍 원장이 밀양에 처음 온 것은 1983년이었다. 부산에서 학교를 마친 그는 군 복무 대신 공중보건의로 지금은 사라진 진폐증 전문 영남병원에서 일했다. 물 좋고 산 좋은 밀양이 마음에 들었다. 공중보건의 마지막 해인 1985년 병원을 짓기 시작해 이듬해 제일병원의 문을 열었다. 산부인과를 택한 데에는 부인과 질환을 오래 앓았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은 뒤 웃는 환자들의 얼굴이 좋았다고 했다.
“진통할 때는 많이 아프지만 아기를 낳고 나면 다들 웃잖아요. 즐겁게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거죠.”
홍성권 밀양 제일병원 원장이 27일 병원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최은주 기자
김 전문의는 2013년 제일병원에 합류했다. 밀양에서 태어나 어릴 적 부산으로 갔던 그에게는 고향으로 돌아오는 일이기도 했다. 도시보다 시골을 좋아했고, 제일병원에서 일하던 친구가 밀양으로 와 달라고 권했다. 그 역시 환자가 아이를 안고 웃으며 퇴원하는 모습에 이끌려 산부인과를 택했다.
“인턴 때 여러 과를 돌아보는데 퇴원할 때 웃으면서 나가는 과는 산부인과밖에 없더라고요. 다들 아기를 안고 좋아서 나가니까요.”
스무 명의 아기가 있던 방
홍 원장은 지난 40년 동안 자신이 받은 아이가 2만 명가량 된다고 말했다. 다른 과 진료를 받으러 왔다가 자신이 이 병원에서 태어났다며 인사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 노인은 “우리 손자들 다 원장님이 받아주셨는데 참 잘 컸습니다”라며 찾아오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산모를 묻자 그는 한 사람을 꼽지 못했다.
“2만 명 정도 받았기 때문에 특별한 산모가 있다기보다는 저한테는 당연한 일상이었습니다.”
분만이 많은 달에는 100건을 넘겼다. 한 해 1000명이 넘는 아이를 받은 때도 있었다. 하루 열 건의 분만을 하고, 신생아실에 스무 명의 아기가 한꺼번에 머물기도 했다. 한때 병원에는 의사가 10명이 넘었고 직원도 120명가량이었다.
이제 한 해 분만 건수는 100명 남짓이다. 2024년과 2025년 제일병원의 분만 건수는 각각 107건과 108건이었다. 올해도 한 달 평균 8~9건에 그쳤다. 한때 한 달 100명이 넘는 아이가 태어나던 병원에서 이제는 한 달에 열 명도 태어나지 않는다.
밀양에서 태어나는 아이 수도 함께 줄었다. 밀양의 출생아 수는 2000년 1280명에서 2010년 686명, 2020년 373명으로 감소했고 지난해에는 249명까지 줄었다. 25년 만에 5분의 1 수준이 된 것이다.
줄어든 분만, 줄지 않은 대기
분만 건수는 10분의 1 가까이 줄었지만 한 명의 산모를 받기 위해 필요한 24시간 대기체계까지 10분의 1로 줄일 수는 없었다. 김 전문의가 합류한 2013년 이후 가장 바빴을 땐 한 달 20~30건가량의 분만이 있었다. 외래 진료를 보다 분만실로 향하고, 분만이나 수술을 마친 뒤 다시 진료실에 앉았다.
김 전문의는 출산 뒤 퇴원한 한 산모가 심한 출혈로 다시 병원을 찾았던 일을 기억했다. 출혈이 잡히지 않아 자궁 적출 수술까지 고려해야 할 만큼 위급했지만, 밤에는 큰 수술에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밤을 새워 산모를 살핀 끝에 출혈을 잡았다. 산모는 일주일 넘게 치료를 받은 뒤 퇴원했다.
“분만이라는 과정이 아주 다이내믹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언제 어떻게 될지 모릅니다. 흔한 일은 아니지만 항상 긴장해야 하고, 어디 멀리 가지도 못하고 주변에 있어야 하죠. 그런 점들이 힘들었습니다.”
김 전문의는 오래전부터 쉬고 싶었지만 후임 의사를 구하지 못했다. 그는 “인력 충원도 안 되고,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이때까지 쭉 온 거죠”라고 말했다. 홍 원장은 “이 나이에 요새 사람들 당직 안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없으면 밤에 아이는 누가 받습니까?”라고 말하기도 했다.
분만할 곳이 부족한 것은 밀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분만 가능 의료기관 목록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경남의 분만 의료기관은 29곳이다. 이 가운데 11곳이 창원에 있고 김해·진주·양산에 각각 4곳씩 몰려 있다. 반면 의령·함안·창녕·고성·남해·산청·함양·거창·합천 등 9개 시군에는 한 곳도 없다. 제일병원이 문을 닫으면 밀양도 분만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이 된다.
김창수 전문의와 제일병원 직원들이 병원에서 함께 촬영을 하고 있다. /김창수 전문의
연 5억 원을 지원받아도
제일병원은 2013년 보건복지부의 ‘분만취약지 지원사업’ 대상에 선정된 뒤 분만실 운영을 위해 연간 약 5억 원을 지원받아왔다. 산부인과 의사와 간호인력의 인건비 등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현재 분만과 산부인과 진료에 직접 관련된 간호사·간호조무사는 13명 정도라고 김 전문의는 설명했다. 홍 원장은 연간 5억 원만으로 이 인력을 유지하기에는 부족했다고 말했다. 제일병원은 한 달 평균 1억 5000만 원 정도의 적자가 났다. 그는“5억 원을 12개월로 나누면 한 달 약 4000만 원인데, 이 4000만 원은 의사 선생님 한 분 인건비 정도밖에 안 됩니다”라고 말했다. 홍 원장은 지원 규모가 사업 초기부터 13년 동안 큰 변화 없이 유지됐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홍 원장이 폐업 결정을 몇 년간 미룬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형편이 어려운 산모들이었다. 제일병원을 찾는 산모 가운데는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가정과 다문화가정도 적지 않았다고 홍 원장은 말했다. 임신 기간에는 여러 차례 검진을 받아야 한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이주여성은 배우자가 함께 병원을 오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두번째는 병원 직원들이었다.
“적자가 많이 나고 참 힘들어도 지금까지 버틴 이유는 두가지 정도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은 대도시로 가면됩니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창원이나 부산, 대구로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아이 낳을 때까지 15번, 20번씩 가야 합니다. 말이 잘 안 통하면 부부가 같이 가야 하고요. 그동안 일을 못 해서 버는 돈, 오가는 경비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또 하나는 우리 병원 직원들이죠. 될 수 있으면 오래 끌어줘야 하지 않겠나 싶었습니다.”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겁니다”
폐업 결정을 내리기까지 몇 년이 걸렸다. 그러나 더 끌고 가다가는 오히려 직원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정을 내린 뒤 홍 원장은 직원들을 한자리에 모았다.
“내가 산부인과 의사로서는 성공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병원 원장으로서 성공했다고는 못 하겠다. 원장이면 돈도 많이 벌어서 직원들에게 잘해줘야 하는데, 그건 못한 것 같아 아쉽다.”
경영난 끝에 임금마저 지급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가고 싶지는 않았다고 했다.
“직원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마지막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로 좋은 얼굴로 볼 수 있을 때 그만두는 게 맞다고 봤습니다.”
홍 원장은 수익을 위해 치료에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비급여 진료를 권하지 않았다.
“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험도 안 되고 돈은 되는 그런 진료를 굳이 하지 않았어요. 우리 의사들에게도 그런 걸 하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니 경영이 어려워진 건 결국 내 탓이죠.”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도 똑같이 할 겁니다. 그렇게 해서 병원이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죠. 내 양심까지 팔아가면서 환자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병원 밖의 시간
병원 문을 닫으면 두 의사는 우선 쉬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좀 홀가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겁기도 합니다. 일에 매여 있던 몸이 풀리니까 자유로워진다는 점에서는 좋은데, 앞날을 생각하면 과연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죠. 그래도 그만큼 보람도 있었습니다. 산부인과 의사가 된 건 절대 후회하지 않아요.”
홍 원장은 텃밭을 가꾸고 여행도 다니며 그동안 미뤄둔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30대 초반 병원을 연 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병원에 나오지 않은 날이 거의 없었다.
“물론 섭섭하죠. 그래도 이제 내가 내 발로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것도 좀 하고, 여행도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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