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기영 유원대 교수
인구 감소와 고령화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대한민국 지방도시는 절박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외연적 확장과 팽창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했다. 인구가 줄어드는 사회에서 확장시대의 비대해진 도시 골격을 유지하는 것은 재정의 파산이자, 사회적 안전망의 붕괴를 가져온다.
이제 지방도시 재생은 화려한 랜드마크가 아니라, 도시 기능을 안으로 압축하고 생활서비스를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생존 전략으로서 ‘압축과 연결’로 전환돼야 한다. 흩어지면 소멸하고, 모여야 생존한다. 이것이 우리가 마주한 지방도시 재생의 엄중한 현실이다.
충북도의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청주라는 거점 도시로의 인구 쏠림과 신도심 팽창으로 인해 원도심의 공동화가 심각하다. 충주의 성내·충인동, 제천의 중앙로 일대 등 과거 지역 경제의 심장이었던 곳들은 이제 ‘공동화의 섬’이 됐다. 특히 괴산, 보은, 영동과 같은 군 단위 지역은 인구 소멸 위험 지수가 ‘위험’ 단계를 넘어 ‘고위험’으로 치닫고 있다.
충북 지방도시의 위기는 단순히 숫자의 감소가 아니라 ‘연결의 단절’에 있다. 외곽에 조성된 신규 산업단지와 주거지는 정작 기존 도시의 인프라와 단절돼 있으며,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으로 떠나고 남겨진 고령층은 대중교통 사각지대에서 고립되고 있다.
정부는 최근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과거의 중앙집권적 배분 방식에서 벗어나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파격적인 권한 이양을 추진하고 있다. 핵심은 기회발전특구, 교육자유특구, 도심융합특구, 문화특구로 대변되는 ‘4대 특구’ 전략이다. 이는 세제 혜택과 규제 특례를 패키지로 제공해 민간 자본과 인재를 지방으로 유인하는 전략이다.
특히 은퇴자나 귀농·귀촌 청년층이 지방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거, 상업, 복지 시설을 복합적으로 조성하는 ‘지역활력타운’ 조성 사업은 지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부는 지자체가 스스로 특화 모델을 제시하면 관계 부처가 협력해 맞춤형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정부의 정책 기조를 충북의 현실에 이식하기 위해서는 더욱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정책 대안이 필요하다.
첫째, ‘수직적·기능적 복합화’를 통한 거점 재생이다. 충주나 제천의 원도심 내 방치된 공공기관 부지나 낡은 상업 건물을 활용하여 ‘충북형 복합 거점’을 구축해야 한다. 저층부에는 보건소, 국공립 어린이집, 공유 오피스를 배치하고, 상층부에는 고령자 복지주택과 청년 창업 지원 주택을 결합하는 모델이다.
둘째, ‘15분 생활권’ 확립을 위한 모빌리티 혁신이다. 기존의 정기 버스 노선을 넘어, 호출형 수요응답버스(DRT)와 자율주행 셔틀을 주요 거점과 연결하는 ‘마이크로 모빌리티’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교통 허브에서 원도심까지 막힘없이 이어지는 보행·자전거 전용 도로를 확충해, 다양한 이동권이 보장되는 도시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셋째, ‘로컬 브랜딩’과 ‘디지털 노마드’ 유치 전략이다. 제천의 약초, 영동의 와인, 괴산의 유기농 자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로컬 비즈니스 생태계를 강화해야 한다. 정부의 기회발전특구 지정을 통해 IT 기업의 데이터 센터나 연구소를 충북에 유치하고, 지역 원도심의 유휴 공간을 ‘워케이션(Workation)’ 공간으로 활용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지방정부의 역할 또한 바뀌어야 한다. 행정이 직접 모든 사업을 주도하는 시대는 지났다. 지자체는 도시 구조의 큰 방향을 제시하고, 지역 기업과 사회적 경제 조직이 일상적인 운영과 투자의 주체가 되는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 규제를 과감히 혁파하여, 공공의 삶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활용되도록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인구 절벽의 시대에 지방도시가 살아남는 유일한 길은 ‘압축’과 ‘연결’에 있다. 흩어진 기능을 한데 모아 일상의 밀도를 높이는 것은 올바른 방향이다. 우리가 다시 걷고 싶고, 이웃의 얼굴을 마주하며 머물고 싶은 중심시가지를 재구성할 수 있을 때, 충북의 도시들 역시 인구 감소의 파고를 버텨낼 수 있다. 이제는 ‘확장’의 유혹을 뿌리치고, 내실 있는 ‘압축’을 통해 작지만 강한 지방도시의 미래를 만들어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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