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옥 시인
거리를 걷다 보면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점점 희미해진다. 쇼윈도에 걸린 옷이 진짜 가죽인지 인조 가죽인지, 길을 스치는 여인의 머리칼이 자연스러운 것인지 가발인지, 눈으로만은 좀처럼 가늠하기 어렵다. 인조 가죽은 소가죽보다 더 부드럽고, 가발은 생머리처럼 자연스럽다. 한 끼 식사조차 그렇다. ‘진짜 맛’을 내세운 음식이 정작은 모조 향과 첨가물의 조합일 때가 많다.
한 번은 내 앞을 지나던 여자가 바람에 날린 가발을 황급히 주워 달아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짧은 순간, 그녀의 민낯은 그대로 드러났다. 그러나 더 불편했던 것은 그 빈 머리칼을 향해 쏟아지던 사람들의 시선이었다. 아무도 웃지 않았지만, 공기만은 묘하게 굳어 있었다. 가발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진짜를 마주하는 데 서툰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이 그때 선명해졌다.
조금만 더 걸어가면 불편함은 커진다. 따뜻한 미소가 진심이 아닌 계산일 수도 있고, 다정한 약속은 쉽게 증발한다. 뉴스 화면 속 얼굴은 합성일 때가 많고, 온라인에서는 가짜 계정이 진짜 사람처럼 말한다. 쇼핑몰의 상품평조차 누군가의 경험이 아니라 돈으로 산 문장일 수 있다. 이렇게 모조가 진짜보다 설득력을 얻는 순간, 사회는 하나의 ‘왕국’처럼 굳어진다. 그 안에서는 오히려 꾸밈없는 목소리가 낯선 소음처럼 취급된다.
마트에서 ‘천연’이라 적힌 과자가 놓여 있지만, 성분표를 들여다보면 화학첨가물이 빼곡하다. 과일 그림이 가득한 음료 속 과즙은 몇 퍼센트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주스’라 부른다. 이런 장면들이 모여 모조 왕국의 일상이 된다.
더 무서운 건 군중의 움직임이다. 누군가 허공을 가리키며 걸어가면, 이유를 묻지 않은 채 그 방향으로 몰려간다. 모두가 같은 환상을 향해 걷는다. 모조가 진짜보다 편안해지는 순간, 왕국은 더욱 견고해진다. 그곳에서는 진실이 아니라 안도가 환영받는다.
정치와 사회도 그렇다. 화려한 공약, 연출된 악수, 카메라를 의식한 포옹. 사람들은 그것이 연기임을 알면서도 잠시 안심한다. 갈등이 가려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마다 모조 왕국은 한 층 더 높아진다.
그 왕국 속에서 나는 누구인가. 진짜를 의심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안전을 위해 모조에 순응하는 사람인가. 필요 없는 웃음을 짓고, 불편한 말을 삼키며 하루를 넘기고 있지는 않은가. 진심을 말하면 유난스러운 사람이 되는 세상에서, 나 또한 조용히 질서에 편입되고 있는 건 아닐까.
진짜와 가짜의 경계는 늘 모호하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가 모조에 너무 쉽게 관대해진다는 사실이다. 믿고 싶은 말이면 가짜 뉴스도 진실처럼 받아들이고,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든다면 거짓 미소도 괜찮다고 넘긴다. 그렇게 안도할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더 깊이 속인다. 모조 왕국은 강요로만 세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무심한 동의로 확장된다.
그럼에도 세상은 완전히 모조로 덮이지 않는다. 누군가의 진심 어린 눈빛, 꾸밈없는 목소리, 가짜로 흉내 낼 수 없는 눈물은 여전히 남아 있다. 오래된 친구와 나누는 허물없는 대화, 아이의 웃음, 이웃이 건네는 인사 속에서 나는 아직 진짜를 만난다. 크지 않은 순간들이지만, 그 작음이 오히려 오래 남는다.
오늘도 거리를 걷는다. 수많은 모조가 스쳐 간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사람의 얼굴을 본다. 꾸밈없는 시선 하나, 주저 없이 내민 손길 하나. 그 진실들이 모조의 왕국을 흔들 돌멩이가 되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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