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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돈으로 죽음을 정복하려는…실리콘 밸리의 억만장자들[북스&]

미국의 억만장자 기업가 브라이언 존슨은 2024년 장수 시술을 받기 위해 온두라스의 프로스페라라는 도시를 찾았다. 그는 이곳의 장수 클리닉에서 2만 5000달러를 내고 회사 측이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돈으로 죽음을 정복하려는…실리콘 밸리의 억만장자들[북스&]

불멸의 설계자들. 사진 제공=미래의창

미국의 억만장자 기업가 브라이언 존슨은 2024년 장수 시술을 받기 위해 온두라스의 프로스페라라는 도시를 찾았다. 그는 이곳의 장수 클리닉에서 2만 5000달러를 내고 회사 측이 노화를 늦출 수 있다고 주장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온두라스의 특별경제구역에 위치한 프로스페라에서는 미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지 않은 노화 치료제도 자유롭게 맞을 수 있다. “죽음을 선택 사항으로 만드세요”라는 슬로건을 내건 이 도시는 페이팔과 팔란티어 공동 창업자 피터 틸, 오픈AI 공동 창업자 샘 올트먼 등의 투자를 받아 설립됐다.

학자이자 기자인 저자는 인간의 오랜 꿈인 ‘영생’이 어떻게 실리콘밸리의 거대한 프로젝트로 변했는지를 집요하게 추적한다. 책에는 낯익은 거물 기업가와 투자자가 대거 등장한다. 이들은 실리콘밸리가 파괴적 혁신을 통해 여러 기술적 난제를 극복해온 것처럼 오랫동안 인간의 한계로 여겨져 온 ‘죽음’마저 정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또 생명 연장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기꺼이 천문학적인 투자금을 쏟아붓는다. 이 때문에 테크 거물들에게 영생 사업은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부를 축적할 수단이기도 하다.

실제로 올트먼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인간의 건강 수명을 10년 연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기업 레트로 바이오사이언시스에 1억 8000만 달러(약 2653억 원)를 투자했다. 그는 이 회사만을 위한 오픈AI 머신러닝 모델도 제공했다. 구글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는 인간 노화 연구 기업 칼리코를 출범시키며 15억 달러를 투자했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도 유명 투자자 유리 밀너와 함께 세포 재활성화를 연구하는 기업에 30억 달러를 투자했고, 이더리움 공동 창업자 비탈릭 부테린은 수명 연장 연구에 수백만 달러 상당의 암호화폐를 기부했다.

저자가 만난 빅테크 억만장자들은 인간의 영생은 기술 발전에 따른 당연한 수순이라고 확신한다. 인간의 몸도 일종의 기계인 만큼 생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컴퓨터 코드로 재설계해 고장난 곳을 고치면 생명 연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믿음에 힘을 실은 것은 AI의 발전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AI 모델 알파폴드는 생화학 분야에서 50년간 풀지 못했던 난제들을 해결하며 신약 설계의 새 시대를 열었다. 여기에 인간처럼 직접 학습하는 범용인공지능(AGI)이 등장하면 노화 치료법 연구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해 올트먼은 “이제 우리는 모든 질병을 치료하고 가족과 훨씬 많은 시간을 누리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저자는 ‘영생 프로젝트’가 불러올 미래를 긍정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실리콘밸리가 약속하는 유토피아는 일부 ‘초부유층’에게만 한정된 이상향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노화를 되돌리겠다며 아들의 혈장을 뽑아 자신에게 주입한 억만장자 브라이언 존슨의 사례를 예로 들었다. 존슨은 자신의 혈장을 아버지에게 주입하기도 했다. 같은 순간 미국의 빈민들은 30~70달러를 받고 자신의 혈장을 팔고 있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저자는 영생 산업이 번성할수록 ‘부의 불평등’이 ‘수명의 불평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학자들도 실리콘밸리 불멸주의자들의 주장이 현실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훨씬 더 필요할 것으로 본다. 유전학자로 미 국립노화연구소(NIA)에서 노화생물학부 부국장을 지낸 펠리페 시에라는 “꼬마선충의 수명을 40% 늘리는 것이 가능하다고 쳐도 그 방법을 쥐에게 적용하면 수명은 15% 정도 늘어날 테고 인간에게 시도하면 3%가 최선일 것”이라며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성과이고 인간 수명을 40% 늘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죽음을 극복하려는 시도보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라는 게 저자의 판단이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영생을 얻는 데 실패하고 인간은 죽더라도 위대한 업적은 오래 살아남는다는 진실을 깨닫는다는 내용의 길가메시 서사시를 소환한다. 그러면서 “길가메시가 도시 성벽의 토대에 새겼듯, 결국 우리를 불멸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무엇을 했는가이다”라고 말한다. 오늘날 신화가 아닌 비즈니스로 변질된 영생 추구에 던지는 저자의 날카로운 경고다. 368쪽, 2만 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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