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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데이터만 보고 기업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까

AI가 트래픽을 생성하고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 보편적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치명적인... 경쟁사가 더 싼 가격이나 더 좋은 AI 모델을 들고 나오면 유저는 즉시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데이터만 보고 기업의 가치를 측정할 수 있을까

지난 몇 년간 벤처투자 시장은 '지표의 마법'에 빠져 있었습니다. MAU(월간 활성 사용자), GMV(총 거래액) 같은 정량적 수치가 우상향한다면, 그 이면의 부실함은 무시되었습니다.

벤처투자 시장의 변곡점, '데이터 만능주의'가 남긴 상흔

하지만 PitchBook의 2025년 벤처 시장 결산 리포트에 따르면, 2022~2023년 정량 지표만으로 고평가를 받았던 스타트업 중 38%가 지난 1년 내 '다운 라운드‘를 겪거나 청산되었습니다.

단순히 "지표가 좋다"는 것은 "지금까지 마케팅 비용을 잘 썼다"는 뜻일 뿐, "앞으로도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답은 되지 못합니다. AI가 트래픽을 생성하고 조작할 수 있는 시대에, 보편적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것은 투자자에게 치명적인 리스크가 됩니다.

데이터를 넘어 다각도에서 뜯어보는 가치 측정법

데이터는 같아도 그 가치를 다르게 만드는 것은 '비즈니스의 깊이'입니다. 단순히 매출 사이클을 넘어 다음과 같은 다각도의 평가 뷰가 필요합니다.

◇워크플로우 고착도: 기능이 아닌 ’습관‘을 점유했는가?=

단순히 "기능이 좋다"는 데이터는 쉽게 무너집니다. 경쟁사가 더 싼 가격이나 더 좋은 AI 모델을 들고 나오면 유저는 즉시 이탈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워크플로우 고착도'는 해당 서비스가 사용자의 업무 흐름 속에 얼마나 깊숙이 박혀 있는지를 측정합니다. 예를 들어, 의사가 진료 후 차트를 작성할 때 AI가 자동으로 시스템에 입력해 주는 서비스(Abridge 등)는 단순한 기록 도구가 아니라 '의료 행정 시스템'의 일부가 됩니다. 이를 평가할 때는 단순히 접속 시간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해당 툴이 없었을 때 업무 프로세스가 얼마나 중단되는가'를 정성적으로 시뮬레이션합니다.

2026년 현재, API 연동 개수나 데이터 마이그레이션의 난이도는 단순한 기술적 허들이 아니라, 고객이 떠나지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경제적 해자로 작용합니다.

비전통적 선행 지표=

매출보다 앞서 나타나는 지표들 전통적인 재무제표는 '과거의 성적표'입니다. 반면, 비전통적 선행 지표는 미래의 매출을 예견하는 '예고편'과 같습니다.

특히 2026년처럼 AI 기술이 쏟아지는 시기에는 개발자 커뮤니티(GitHub, Hugging Face)에서의 활동성이나 X(구 트위터)에서의 실질적인 활용 사례 공유가 훨씬 정확한 지표가 됩니다. 예를 들어, 기업용 소프트웨어인데도 불구하고 개발자들이 자발적으로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있다면, 이는 6~12개월 뒤 대기업의 정식 계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신호입니다. 우리는 이를 '유기적 전파 속도'라고 부르며, 마케팅 비용을 태우지 않고도 업계 권위자들이 해당 서비스를 자신의 업무에 인용하는 횟수를 정성적으로 추적해 기업의 잠재력을 평가합니다.

AI 유닛 이코노믹스=

과거의 소프트웨어(SaaS) 사업은 초기 개발비는 많이 들지만, 일단 만들어두면 100명에게 파나 1만 명에게 파나 추가로 드는 비용(한계비용)이 거의 '0'에 수렴했습니다. 덕분에 규모의 경제가 실현되면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구조였죠.

하지만 AI 시대는 다릅니다. 사용자가 AI에게 질문을 던지거나 작업을 시킬 때마다 막대한 GPU 연산 비용이 실시간으로 발생합니다. 따라서 단순히 매출 성장을 볼 것이 아니라, '지능 한 단위당 생산성'을 뜯어봐야 합니다. 이를 수식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미지=AI

왜 ’수익성 없는 성장‘의 늪에 빠지게 될까요? 전통적 사업은 매출이 2배 늘 때 비용은 1.2배만 늘지만, AI 서비스는 매출이 2배 늘 때 API 비용이나 GPU 서버비도 정직하게 2배 가깝게 늘어납니다. 즉, 덩치는 커지는데 마진율은 제자리걸음인 상황이 반복됩니다.

만약 이 기업이 고객의 아주 '깊고 치명적인 불편함'을 해결해주지 못하고 단순히 재미있거나 편리한 수준에 머문다면, 고객에게 높은 구독료를 청구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자면 고객에게는 1만 원을 받는데, AI가 그 답을 찾아내기 위해 8천 원어치의 토큰(API 비용)을 써야 한다면 어떻게 되는 걸까요? 여기에 마케팅비와 인건비까지 더해지는 순간, 이 기업은 팔면 팔수록 적자가 커지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상태가 됩니다.

결국 데이터상으로 매출 그래프가 우상향하더라도, 투자자들은 이 기업이 스스로 비용을 통제할 수 있는 자체 모델이 있는지, 아니면 비용을 압도할 만큼 비싸게 팔 수 있는 '독보적인 해결책'을 가졌는지를 냉정하게 따져봐야 합니다.

오픈클로와 휴메인 AI 핀…2026년 사례로 살펴보기

BEST CASE: 오픈클로(OpenClaw)=

오픈클로는 2026년 초 비즈니스 업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사례였습니다. 당시 이 회사는 매출이 0원이었기 때문입니다. 전통적인 회계 장부만 보는 투자자라면 "수익 모델이 없다"며 거절했을 프로젝트였죠.

우리는 스마트폰에서 배달을 시키고, 메일을 쓰고, 일정을 잡기 위해 수십 개의 앱을 일일이 클릭합니다. 오픈클로는 "내가 직접 앱을 켤 필요 없이, AI 에이전트가 내 컴퓨터와 폰의 모든 권한을 갖고 대신 업무를 수행하게 하라"는 '에이전트 경제'의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매출 데이터 대신 투자자들이 주목한 것은 깃허브 별 16만 개와 X의 파급력이었습니다. 이는 전 세계 까다로운 개발자들이 "이 기술은 진짜다"라고 보증한 정성적 지표였습니다.

투자자들은 현재의 매출표가 아닌, 전 세계 전문가들의 '정성적 열광'이라는 맥락을 읽었습니다. 그 결과 오픈클로는 매출 없이도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았고, 창업자는 OpenAI에 핵심 인재로 합류하며 비즈니스적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BAD CASE: 휴메인 AI 핀(Humane AI Pin)=

반면, 2025년 말 가장 기대를 모았던 휴메인 AI 핀은 '데이터의 배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이들은 출시 전부터 수천억 원의 투자를 유치했고, 사전 예약 데이터만으로도 시장을 장악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투자자들은 '유명 창업자', '수만 건의 사전 예약', '거대 VC의 투자 참여'라는 화려한 정량적 수치에 매몰되었습니다. 예약 판매가 잘 되니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 믿은 것이죠.

하지만 실제 제품이 배송되자 상황은 반전되었습니다. 사용자들은 "스마트폰을 꺼내는 것보다 AI 핀에 말을 거는 게 더 느리고 답답하다"는 '정성적 불만'을 쏟아냈습니다. 기기가 뜨거워지는 발열 문제와 부정확한 응답은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고통'을 줬습니다.

매출 데이터상으로는 '완판'이었지만, 실제 사용자의 삶 속에서는 '불편함의 해소'가 아닌 '불편함의 가중'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결국 반품률이 40%를 넘어서며 기업 가치는 폭락했고, 데이터만 보고 뛰어든 투자자들은 회수가 불가능한 큰 손실을 보았습니다.

전략의 상품화 시대…'맥락'이 유일한 해자가 된다

이제 단순히 "AI를 도입해 효율을 높였다"는 말은 차별점이 되지 못합니다. 모든 기업이 같은 모델을 쓰고, 똑같은 정량적 KPI를 설정해 누구나 비슷한 답을 내놓는 시대에, 숫자로만 기업을 평가하는 것은 결국 평균적인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습니다.

"진짜 핵심은 무엇인가?"

우리가 지금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데이터가 가리키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시대가 변하면 가치를 평가하는 잣대도 달라져야 합니다. 2026년의 투자 시장에서 진짜 '좋은 기업'을 가려내는 핵심 동력은 다음 두 가지로 요약됩니다.

데이터가 아닌 '의도'에 대한 질문=

"이 수치를 만들기 위해 어떤 불편함을 건드렸는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야 합니다. 데이터는 '현상'을 말하지만, 창업자의 '맥락'은 '생존 가능성'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공감에서 시작되는 창의적 파괴=

AI는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가장 그럴싸한 답'을 내놓지만, 인간은 데이터에도 없는 '불편한 진실'을 포착합니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사용자들의 미묘한 짜증과 결핍을 비즈니스로 치환하는 능력, 그것은 오직 인간의 창의적 사고와 깊이 있는 공감에서만 나옵니다.

결국, 다시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AI 에이전트가 모든 정량적 업무를 대신하는 시대일수록, 역설적으로 기업 평가의 무게중심은 다시 인간으로 회귀합니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숫자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도 않습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데이터 시트 너머에 있는 창업자의 집요한 문제의식, 그리고 고객이 느끼는 불편함의 깊이를 체감하려는 노력이 동반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짜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중기이코노미

이창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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