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산업비즈부장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 카드를 꺼내 들었다. 회사 측이 1인당 평균 5.4억 원의 성과급을 약속했음에도 노조는 40조원 규모의 추가 요구를 내밀며 파업을 으름장으로 내세웠다. 회사가 반도체 부문에서만 30조원의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에서도 협상 테이블은 요지부동이다. 현대차 노조 역시 삼성을 ‘벤치마킹’이라도 하듯 더 높은 성과급 요구안을 들고나왔다. 한국을 대표하는 두 기업이 동시에 노조 리스크에 흔들리는 풍경, 이것이 지금 한국 산업 현장의 민낯이다.
1인당 5억 원이 넘는 성과급은 대다수 직장인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럼에도 노조가 이를 거부하고 파업을 선택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회사가 번 만큼 더 가져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논리는 몇 가지 결정적인 함정을 안고 있다.
첫째, 기업의 이익은 현재의 노동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수십 년에 걸친 투자와 기술 축적, 주주 자본, 협력사 생태계가 함께 빚어낸 결과물이다. 노조가 요구하는 ‘성과의 몫’이 노동자에게만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기업 생태계의 복잡성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이다.
둘째, 삼성전자가 반도체 경기 침체로 막대한 손실을 기록한 시기에도 성과급 요구의 수위는 낮아지지 않았다. 이익이 날 때는 더 달라, 손실이 날 때도 더 달라는 구조라면 이는 이미 ‘성과급’이 아니라 ‘고정 프리미엄’에 가깝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이러한 요구가 한국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킨다는 점이다. 삼성전자, 현대차 정규직 노조원이 수억 원의 성과급을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이, 납품단가 인하 압박에 시달리는 협력업체 직원들과 고용 불안에 떠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강력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과도한 보상을 확보할수록, 그 기업에 들어가지 못한 나머지 노동자들과의 격차는 벌어진다. 노동운동이 소수 기득권의 울타리를 치는 수단으로 전락하는 순간, 연대의 정신은 사라진다.
노조 리스크는 숫자로도 분명히 드러난다. 파업 한 번에 수조 원의 생산 차질이 발생하고, 해외 바이어들의 신뢰는 흔들린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는 반도체·자동차 산업에서 내부 갈등에 에너지를 소진하는 것은 사치다. TSMC, 토요타가 질주하는 동안 한국 대표 기업들이 사내 협상 테이블에서 발목을 잡히고 있다면, 그 손실은 결국 국가 경쟁력의 훼손으로 이어진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삼성도 했으니 우리도’라는 식의 요구 경쟁이 산업 전반으로 번지는 현상이다. 현대차 노조가 삼성을 겨냥해 “더 세게 불렀다”고 공언하는 상황은 성과급이 이미 노동의 대가가 아닌 협상력 게임의 전리품이 됐음을 보여준다.
한국 노동운동은 권위주의 시대의 억압에 맞서 싸워온 정당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역사적 정당성이 오늘날에도 일부 노조의 과도한 요구를 묵인하게 만드는 면죄부로 작용한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지금의 대기업 노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다. 막강한 교섭력과 법적 보호 아래 이미 충분한 권리를 확보한 집단이다.
성숙한 노동운동은 요구의 크기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무게로 평가받아야 한다. 5억을 줘도 파업을 택하는 노조, 회사의 손실 규모를 협박 수단으로 활용하는 전술, 동종업계 요구액 경쟁. 이 모든 것이 한국 노동운동이 스스로 신뢰를 갉아먹는 방식이다.
기업이 흔들리면 일자리가 줄고, 일자리가 줄면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 것은 노조 밖의 노동자들이다. 지금 노조가 지켜야 할 것은 조합원의 성과급 한 푼이 아니라, 한국 산업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는 토대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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