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몰리는 경기도에 돈이 없다. 대한민국 최대 인구와 첨단산업을 품은 경기도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40조 원이 넘는 예산을 운용하는 국내 최대 광역자치단체의 역설이다. 인구와 기업이 늘고 산업은 성장하는데 왜 재정은 팍팍해지는 걸까. 재정 상황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은 차치하더라도 그 원인만큼은 짚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추미애 경기도지사는 재정 비상 상황을 선언했다. 주요 원인으로 전임 도정의 지방채 발행과 기금 활용, 민생예산 미편성을 지목했다. 당초에는 7천700억 원 규모 감액을 예고했지만, 최종적으로 5천465억 원의 세출 구조조정을 담은 추가경정예산안을 제출했다. 그렇지만 이를 곧바로 재정 파탄의 징후로 단정할 일은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경기도 예산 대비 채무 비율은 12.86%로 몇몇 광역자치단체보다 낮다. 다만 세입을 지나치게 낙관하거나 기금과 빚에 기대 지출을 늘린 게 아닌지는 따져볼 문제다.
원인 규명을 위해서는 먼저 재정 운용의 책임과 재정구조의 한계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경기도는 부동산 거래에 민감한 취득세 의존도가 높아 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살림도 함께 흔들린다. 거래가 위축되면 세입은 곧바로 줄지만 복지·교통·소방 같은 필수 지출은 축소하기 어렵다. 또한 인구와 기업이 늘면 세수도 늘지만 도로·철도·안전시설 확충 비용은 그보다 빠르게 불어난다. 예산이 크다고 마음대로 쓸 수 있는 돈까지 넉넉한 건 아니라는 얘기다.
여기에 경기도가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수도권’이라는 이름표다. 정부는 수도권에 집중된 인구와 산업을 지방으로 분산하기 위해 비수도권 지원에 무게를 두고 있다. 나라 전체의 균형발전을 위해 필요한 정책이다. 하지만 경기도 전체를 서울과 비슷한 형편으로 바라보는 건 현실과 거리가 있다.
실제로 판교 첨단산업단지와 연천 접경마을은 같은 경기도지만 현실은 딴판이다. 과천과 가평의 재정 형편도 마찬가지다. 군사시설보호구역과 상수원보호구역 등 중첩 규제로 발전에 제약을 받는 지역도 적지 않다. 이미 가평과 연천, 동두천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됐고 포천, 여주 등도 인구감소와 고령화 문제에 직면해 있다. 전국 최대 인구를 가진 경기도 안에서도 성장과 쇠퇴가 공존하는 것이다.
산업 성장의 성과가 지방재정에 돌아오는 구조도 제대로 살펴야 한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첨단산업은 글로벌 경기에 힘입어 역대급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법인세는 고스란히 국세로 귀속된다. 법인지방소득세 역시 사업장 소재지 등에 따라 일선 시·군에 배분된다. 반면 산업단지와 신도시 확대에 필요한 광역교통망과 소방·환경시설 부담은 도의 몫이다. 성장의 성과는 도 재정으로 직결되지 않지만 성장에 필요한 기반시설 비용은 계속 늘어나는 것이다.
경기도가 정부의 보통교부세를 받지 않는 불교부단체라는 점도 짚어야 한다. 보통교부세는 지방자치단체 재정수요와 수입을 법정 기준에 따라 계산해 배분하는 재원이다. 경기도는 이 같은 기준에 따라 보통교부세를 받지 않는다. 물론 불교부 자체를 차별로 볼 수는 없다. 문제는 급증하는 광역행정 수요와 접경지역의 특수성, 중첩 규제에 따른 부담이 재정 배분 과정에 충분히 반영되고 있느냐다.
이제 수도권이라는 획일적 구분에서 벗어나 지역별 현실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이를 뒷받침할 수단도 충분하다. 공공데이터포털 등에 공개된 인구 이동과 산업 분포, 재정 여건과 교통·의료·교육 등 공공서비스 접근성 데이터를 결합하면 지역별 격차를 더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평균 수치에 가려진 지역의 실체 드러내고 필요한 곳에 재원을 공정하게 배분할 근거로 충분히 활용 가능하다.
따라서 경기도의 재정 비상 선언을 단순한 세수 부족이나 전·현직 도정의 책임 공방으로만 흘려보내선 안 된다. 경기도 스스로 건전하고 책임 있는 재정 운용에 힘써야 하겠지만, 동시에 인구와 산업이 성장해도 재정 압박이 커지는 구조, 같은 권역 안에서도 성장과 쇠퇴가 엇갈리는 현실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균형발전은 어느 지역에 속해 있느냐가 아니라 거기 사는 주민의 삶이 어떠하냐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민병수 디지털뉴스부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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