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선형 산업부 차장
매일일보 = 권선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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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인공지능(AI)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기를 맞아 유례없는 속도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대한민국 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전자 노사 관계를 바라보는 시장의 시선에는 깊은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최근 지속되고 있는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과 갈등의 기류는 단지 한 기업의 내부 현안을 넘어 대한민국 수출 전선과 경제 생태계 전반에 불안감을 드리우고 있다. 동시에 한편으로는 극적인 타결을 바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현재 반도체 산업은 엔비디아의 블랙웰 라인업 확대와 차세대 HBM 시장 선점, TSMC를 중심으로 한 첨단 패키징 캐파 경쟁 등으로 일분일초를 다투는 긴박한 처지에 놓여 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한 통합 솔루션 역량이 기업의 생사를 가르는 기준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미래 주도권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과 생산 라인의 안정이 무엇보다 담보되어야 할 조건으로 꼽힌다. 이러한 중차대한 기로에서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거나 극단적인 대치로 이어지는 것은 국가 경제 전체에 치명적인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키우는 대목이다.
역사적으로 노사가 시장의 대전환기를 읽지 못하고 대립에만 몰두하다가 공멸한 사례는 적지 않다. 과거 영국 자동차 산업의 자존심이었던 로버(Rover) 그룹은 기술 투자와 체질 개선이 시급한 시기마다 반복된 격렬한 노사 분규로 결국 파산과 매각의 길을 걸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국내에서도 한때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 경쟁력을 자랑했으나 해마다 되풀이되는 대립적 노사관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끝내 침체기를 겪거나 외국 자본에 주도권을 넘겨줘야 했던 뼈아픈 전례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아무리 독보적인 기술력을 가진 기업이라 할지라도 내부 갈등이 장기화되면 글로벌 경쟁력을 순식간에 상실할 수 있다는 냉혹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삼성전자 노사 양측의 주장에는 나름의 명분과 경제적 논리가 있다. 노동조합이 요구하는 정당한 보상과 투명한 성과급 기준 마련은 임직원들의 사기 진작과 인재 확보 측면에서 경영진이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으로 보인다. 반면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과 막대한 설비 투자 부담 속에서 재무 건전성을 유지하며 장기적 생존을 도모해야 하는 사측의 고충 역시 외면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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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 문제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가 아닌 과거 실패한 기업들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서로의 현실을 인정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노사가 상대를 타도나 굴복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하면 글로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어서다. 서로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공방만 반복한다면 그 피해는 대외 신인도 하락과 수주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기 쉽다. 반도체 공급망의 미세한 균열도 글로벌 빅테크 고객사들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리스크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고물가·고환율 등 거시경제적 부담이 큰 상황에서 국내 최대 기업의 생산 거점에 불확실성이 가중된다면 이는 산업 전반의 투자 심리 위축과 수출 둔화로 확산될 우려가 큰 상황이다.
사측은 구성원들이 납득하고 신뢰할 수 있는 소통 체계를 먼저 제안하고 진정성 있는 상생 방안을 전향적으로 모색해 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노조 또한 글로벌 테크 전쟁에서 핵심 제조업이 처한 냉혹한 현실을 바라보며 지속 가능한 동반 성장의 로드맵을 함께 그리는 성숙함을 보여줘야 할 때다. 완벽한 계획보다 빠른 실행이 중요한 AI 전환 시대에 내부 갈등으로 발이 묶이는 우(愚)를 범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한결 같은 바람이다.
과거 삼성전자가 위기를 극복하고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집단지성과 강한 결속력이었다. 지금의 갈등을 소모적인 정쟁으로 확산시킬 것인지 아니면 대전환기를 돌파하는 상생의 계기로 삼을 것인지 여부는 노사 지도부의 선택에 달려 있다. 파국이 아닌 타협을, 독점이 아닌 나눔을 선택하는 지혜를 발휘해 불안감을 털어내고 대한민국 반도체의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주역으로 함께 남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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