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부터 ‘새 길을 여는 프런티어 기업인’ 시리즈 기사를 보도하면서 인상 깊은 기업인들을 만났다. 걸어온 길은 달라도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었다. 눈앞의 이익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긴 호흡으로 미래를 대비했다는 것이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창업 후 30여 년간 기존에 없던 혁신 기술을 붙들고 씨름했다. 갈륨 등 옛 3족 원소와 질소 등 5족 원소를 조합해 만든 3·5족 화합물 소재로, 최근 태양광과 반도체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실리콘을 대체할 차세대 소재로 평가받고 있어서다. 하지만 이런 혁신 기술도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나오기 전까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
30년 미래 대비하는 기업인
이성호 유니테크 회장은 창업 후 27년간 산업용 접착제산업 한 우물만 파고 있다. 독보적 기술을 확보하자 에너지저장장치(ESS), 우주항공 등 새로운 시장이 열렸다. 김상균 한중엔시에스 대표는 자동차 부품 사업의 성장이 둔화하자 ESS 분야로 주력 사업을 과감하게 바꿨다. 서동일 프린피아 대표는 수십 년째 뒷걸음치는 인쇄산업에서 ‘다품종 소량 인쇄’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이런 기업인을 보면 한국의 미래를 낙관하게 된다. 여론과 유행에 좌고우면하지 않으면서 신사업 투자 리스크를 기꺼이 떠안고 있다. 불확실한 미래 사업을 위해 손실을 장기간 감내했다. 황 회장은 혁신의 길을 묻는 말에 “앞으로 한 발자국을 내디딜 때 이 길이 천당으로 가는지, 지옥으로 가는지 알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런 길을 30년 뚝심 있게 밀고 가는 선택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각계의 리더를 만날 수 있는 것은 언론인에겐 일종의 특권이자 행복이다. 이런 기업인을 만나다가 관료 사회를 보면 생각이 복잡해진다. 과거 기업인과 관료는 한국 경제를 끌어가는 쌍두마차였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중화학 등 주요 산업의 성장 과정에서 머리를 맞대고 10년, 20년 뒤를 고민했다.
관료조직은 면피행정 급급
지금은 달라졌다. 기업인의 시간은 그대로인데 관료의 시계가 너무 짧아졌다. 부동산, 에너지, 노동 등 장기적 시각에서 봐야 할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도꼭지처럼 방향을 튼다. 기업이 당연히 가야 할 길이 낡은 규제로 가로막히는 일도 잦아졌다. 최근 제주도 경찰관의 실종 사건 허위 보고처럼 공직 윤리를 의심하게 하는 황당한 사례도 나온다. 고위 관료도 국가 경쟁력보다 인사와 임기 내 성과에 연연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나마 기업을 경험한 관료는 달라 보인다. 냉혹한 시장에서 성공과 실패, 이익과 손실을 경험하면 정부 정책과 제도가 기업에 미칠 영향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된다. 퇴임 후 행보를 고민할 이유도 적다. 한성숙 국무총리,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주목받는 것도 이런 민간 경험과 무관하지 않다. 엘리트 공무원의 기업행을 부정적으로만 볼 이유는 없는 것 같다.
조만간 개각이 단행된다고 한다. 앞으로 정부 고위직 인사는 공직 경력만 따져서는 안 된다. 민간에서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더 비중 있게 평가했으면 한다. 관료 조직의 인센티브 구조도 손봐야 할 때가 됐다. 바람직한 정책 수립보다 감사원 감사, 국회 질타를 피하는 조직이 되고 있다.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 관료가 살아남는 국가에선 미래가 없다. 관료의 시계도 다시 길게 돌려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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