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설.칼럼
칼럼
대통령의 ‘빨간펜’, 과유불급만 아니라면… [저널리즘책무실]
이종규
2026-06-15 20:52
펼침
기사를 읽어드립니다
Your browser does not support the
audio
element.
0:00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청와대에서 열린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광고
이종규 | 저널리즘책무실장
지난 8일 열린 이재명 대통령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 대통령이 양손 손가락을 굽혀 따옴표 모양을 만드는 모습을 꼽겠다. 이 대통령은 언론 관련 질문에 답하던 도중, 때아닌 ‘따옴표 저널리즘 과외’를 선보였다. 따옴표 손짓은 이 과정에서 나왔다.
“작은따옴표와 큰따옴표는 차이가 있지 않나. 큰따옴표는 명확하게 인용을 하는 건데, 그걸 해석을 해가지고 인용이라고 제목에 붙이고, 무책임하게 누군가의 주장을 팩트인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것도 저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사실이 아닌 발언을 큰따옴표로 인용해 보도한다면) 허위 보도인가? 진실 보도인가? 이거는 허위 보도다. 누군가 말했다는 것은 사실일 수 있지만 대법원 판례에 의하면 누군가 말했다가 중요 팩트가 아니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이 중요 팩트다. 누가 말했다고 따옴표 쳐서 보도한다고 책임이 면해지는 게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심하게 그걸 한다.”
광고
이 대통령의 발언을 다소 장황하게 인용한 이유는, ‘따옴표 저널리즘’의 폐해를 정확하게 짚고 있어서다. 미디어 전문가의 지적이라 해도 손색이 없다. 누군가의 주장을 아무런 검증이나 비판 없이 큰따옴표를 씌워 전하는 ‘따옴표 저널리즘’은 한국 언론의 고질병 중 하나로 꼽힌다. 더욱이 따옴표의 화자는 대부분 익명의 ‘관계자’다. 이 대통령 말마따나 ‘고쳐야 할 비정상’, 맞다.
이 대통령이 언론을 대하는 태도는 좀 독특하다. “가짜 뉴스”, “왜곡 보도”라고 뭉뚱그려 말하지 않는다. 엑스(X·옛 트위터)에 특정 기사 링크를 수시로 올리며, 그 기사가 왜 문제인지 구체적으로 지적한다. 때로는 ‘빨간펜 선생님’ 같다. 기자 입장에선 한마디로 피곤한 스타일이다.
광고
광고
이 대통령이 엑스에서 언급한 기사들을 보노라면,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는 내가 보기에도 ‘반박 불가’인 경우가 더러 있다.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의도된 조작”까지는 아니지만 ‘왜 기사를 이렇게 썼을까’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적지 않다.
이렇게 대통령이 직접 ‘공개 저격’ 방식으로 개별 기사를 비판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언론에 압박으로 작용해 자유로운 비판이 위축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허위·왜곡 보도에 대해서는 누구나 반박할 수 있어야 한다. 정치권력이 개별 언론을 비공식적으로 접촉해 수정·삭제 압력을 넣는다면 오히려 그게 더 큰 문제다.
광고
더욱이 언론은 대통령의 비판에 재반박할 수단을 갖고 있다. 대통령의 지적이 사실과 다르다면 기사나 칼럼으로 조목조목 짚으면 된다. 반대로 지적이 맞다면 수정하는 게 당연하다. 대통령의 비판이 언론의 권력 감시를 위축시킬 것이라는 주장에도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본연의 역할을 쉽게 포기한다면 그걸 제대로 된 언론이라 할 수 있을까.
물론 이 대통령의 ‘빨간펜’이 과유불급으로 느껴질 때도 있다. 대장동 개발 및 이 대통령 측근 인사들의 금품 수수 의혹과 관련된 일련의 보도들로 동아일보가 2023년 받은 한국신문상 수상 취소를 요구한 것이 그 예다. 물론 의혹의 당사자로서 동아일보의 보도 중 ‘대장동 그분’ 기사의 사실 검증이 미진했던 점은 충분히 지적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기사 수정 요청에 그치지 않고 언론단체와 학회 등이 심사를 거쳐 결정한 수상을 취소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다소 지나치다. 자신의 ‘조폭 연루설’을 보도한 에스비에스(SBS) ‘그것이 알고 싶다’를 겨냥해 ‘테러’ ‘조작’ ‘작전’ 등의 거친 표현을 써가며 비난한 것을 두고도 “권력자가 제작진 개인을 특정해 비판하고, 제작 의도 자체를 단정하는 것은 매우 우려스럽다”(언론노조)는 지적이 나왔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 4월 발표한 ‘2026 세계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한국은 지난해(61위)보다 14계단 오른 47위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문제 있음’ 국가로 분류됐다. 정치적 압력으로부터의 독립과 자기검열 압박 등을 평가하는 정치·사회 지표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기자회는 한국 언론 상황에 대해 “포퓰리즘 정치 성향이 언론인에 대한 혐오를 부추기고 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력이 특정 기사에 대해 정정이나 반론 등 정당한 요청을 넘어 ‘화풀이’로 비칠 수 있는 과도한 비난을 쏟아낸다면 국제사회에서 한국 언론 자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 언론 자유 ‘문제 있음’은 날로 높아져가는 한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언론 대응에도 포용과 통합의 ‘큰 그릇’이 필요하다.
저널리즘책무실장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