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 삼성그룹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20일 새벽 정회 후 입장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스1)
[뉴스웍스=채윤정 기자] 삼성전자 노사가 사후조정 회의에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은 노조가 요구한 적자 사업부 성과급 규모가 '회사 경영 대원칙'에 어긋났기 때문이다. 파업에 따른 손실이 최대 100조원에 이를 수 있지만, 원칙이 무너지면 정상화가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작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사 간 2차 사후조정이 결렬로 끝났다. 다수 노조인 초기업노조는 예정대로 21일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18일부터 시작된 사후조정 회의에서 노사 간 이견이 상당 부분 좁혀졌고, 정부와 노사 모두 추가 대화 가능성을 열어놓은 만큼 파업 직전 극적 타결될 가능성은 존재한다.
만일 막판 타결이 무산될 경우, 정부가 삼성전자 파업을 막기 위해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최소 18조원에서 최대 100조원의 피해가 발생하는 데다, 생산 중단으로 고객사가 경쟁사로 이탈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협력사 납품 물량이 끊기면서 비정규직·파견·용역 노동자들의 휴업·감원 압박도 불가피하다.
박수근 중앙노동위원장이 20일 정부세종청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열린 2차 사후조정 3일 차 회의 종료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성과 없는 곳에 보상 없다" 원칙 충돌…비메모리 조합원 유치도 노조의 숙제
삼성전자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성과급 재원 배분 방식과 영업이익 대비 성과급 비율이 맞물려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라며 "노조가 배분 비율을 낮추는 대신 영업이익 비율을 높여달라고 요구했는데, 여기서 조율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메모리 우수 인력이 파운드리·시스템LSI로 배치됐는데 성과가 없다고 보상을 안 주면 우수 인재가 해당 분야로 가려 하지 않는다"며 "비메모리 직원들에게 공통 OPI는 제공해 왔고 성과급의 50%까지 지급해 왔다. 그러나 수억원의 특별성과급을 주는 것은 부적절하다. 흑자 전환 시 특별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것이 사측 방침"이라고 말했다.
사측은 영업이익의 9~10%를 특별성과금으로 지급하겠다고 제안했지만 노조는 15%를 요구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측 안대로 9~10%에 OPI를 더하면 11~12%가 되며, 이는 SK하이닉스보다 많은 수준이다.
초기업노조 요구의 배경에는 노조 구조가 자리하고 있다. 초기업노조는 DS(반도체)부문 직원의 80%가 가입해 있다. 과반수 노조 선언 당시 7만6000명이던 조합원은 DX(디지털경험) 부문 조합원들의 탈퇴가 이어지면서 19일 오후 5시 기준 7만965명으로 줄었다. 5035명이 탈퇴한 것이다. 초기업노조는 과반수 노조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비메모리 사업부 직원들을 추가 유치해야 하는 상황이다.
20일 경기 평택시 고덕동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모습. (사진=뉴스1)
◆정부 긴급조정권 발동 기대감 고조…노동부 "당사자 간 대화 우선"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잇따라 "파업으로 막대한 피해가 우려된다면 긴급조정을 포함한 모든 수단을 고려할 것"이라고 밝히면서 긴급조정권 발동이 주목되고 있다. 사 측은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일반적으로 회사에 유리한 결과가 나오는 만큼, 정부 중재를 내심 기대하는 분위기다.
이날 홍경의 고용노동부 대변인은 "아직 파업까지 시간이 남아 있고, 당사자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이 대원칙"이라며 "마지막까지 노사 자율 교섭으로 해결되도록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언급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총리 대국민 담화에 노동부·산업부 장관이 동석했다는 것만으로도 긴급조정권 발동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분석했다. 긴급조정권이 발동되면 모든 쟁의행위가 30일간 금지되고 강제조정 절차에 들어가지만, 그 기간에도 협상은 계속 가능하다.
이종호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사용하는 선례를 남기면 내년 협상에서도 사용 여지를 남기게 된다"며 "일단 노사가 협상으로 풀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노조도 이를 알고 협상 결렬을 선언한 만큼 협상에 돌입해 어떻게든 빠른 합의에 이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 평택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사진제공=삼성전자)
◆파업 돌입 시 피해 복구 쉽지 않아…고객 문의 이미 '빗발'
파업이 강행되면 금전적 손실을 넘어 신뢰성 훼손까지 이어져 복구에 막대한 비용이 들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종환 상명대 교수는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HBM을 공급하면서 다른 빅테크 기업까지 물량을 확대해야 하는 상황인데, 생산 중단으로 공급을 제대로 못 하면 경쟁 업체에 물량을 뺏기게 된다"며 "피해는 막대하고 고객 유치도 어렵게 된다.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하루 속히 중단하고 고객에게 안정적인 공급 확신을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은 파업으로 경제성장률이 최대 0.5%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은 관계자는 "파업이 현실화하면 생산 감소 규모는 30조원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으로, 부가가치 기준으로는 약 15조원"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국내 최대 법인세·배당소득세 납부 기업인 삼성전자의 실적이 흔들리면 전방위적인 세수 감소로도 이어질 수 있다.
앞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은 파업 중 설비 고장 시 엔지니어 외에 수리를 대체할 수 없다면서, 생산라인 전체가 멈출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번 파업 참여 인원은 최대 5만명으로 예상돼 파급력이 2년 전을 크게 웃돈다. 당시 조합원 3만2000명 중 참여율은 15%, 참가자는 4800명 수준이었다. 올해 참여 인원은 그 10배를 넘어서는 규모다.
삼성전자에는 이미 고객사들로부터 메모리를 제때 공급받을 수 있느냐는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고객사들이 중국·대만 메모리 업체로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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