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핵융합 개척자, 세계로 날개 펴다
핵융합 분야 TSMC 비전, 제조강국 한국이 밑천
제조 이어 운영체계와 자율운전 분야도 도전
"과학기술로 돈 벌어 투자 이상 세금 내야 연구 지속가능"
"지식인은 사회 약자 버팀목 돼야" 과학하는 이유
이경수 박사는 핵융합 연구에 평생을 바쳐온 과학자다. 그는 '연구비는 결국 국민 세금이며 그 이상을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KSTAR 구축과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참여를 이끌며 한국을 핵융합 선도 그룹으로 끌어올린 그는, 이제 과학이 인류에 기여하는 동시에 국가 부를 창출해야 한다는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최근 최근 이탈리아에서 450억원 규모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사진=대덕넷DB]
"그동안 연구비로 쓴 돈이 2조원 정도 됩니다. 그 이상인 5조, 10조원을 세금으로 내야죠."
세금은 다들 안내고 싶어한다. 그러면서도 세금인 국비는 공돈으로 생각하고 적극 달려드는게 인지상정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상식에 반하는 과학기술인이 있다. 새로운 유형이고 어찌보면 별종이다.
우리나라가 1인당 GNP 3만 달러 국가가 됐고, K-POP 등도 세계적이 되며 우리를 선진국이라고 우리도 자부하고, 세계도 인정한다. 하지만 좀 깊이 들여다보면 께름직한 대목이 있다. 우리 부의 원천은 제조다.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전통산업에 이어 30여년전부터는 반도체가 중요 먹거리이다. 이를 자세히 보면 원천기술이 우리 것인 분야는 전무하다. 우리가 끝단에 약간의 기여를 한 부분은 있지만 중요한 부분은 외산이다.
주로 서양에서 나온 원천 기술들을 받아다가 한국 사람들의 근면함과 명석함으로 싸고 빠르게 만들어 경쟁력을 갖게 된 것이다. 우리도 열심히 살아왔지만 남의 덕에 여기까지 온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런만큼 이제는 우리도 인류에 대한 '기여'를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떳떳하지 않겠는가?
현재 우리나라 과학기술에서 인류에 기여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분야가 핵융합이다. 선진국들도 "과연 될까?"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우리도 과감하게 질렀다. AI 시대를 맞이하며 결국 에너지가 해답이라는 판단 아래 핵융합이 지금은 각광을 받고 있다. 하지만 30년전에는 '사기'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현실 가능성이 낮았다.
핵융합 연구자는 늘 30년, 50년후를 이야기하기에 당대에는 책임질 일이 없는 만큼 편할 것이라는 짓궂은 농담도 들을 정도였다. 특히 기초원천 기술이 취약한 한국이 시작하는 것은 내부에서는 시기상조에, 외부에서는 자격미달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 시기에 국내에서는 핵융합을 연구과제로 만들고, 과학강국들로부터는 팀원으로 받아들이는 쾌거를 일으킨 사람이 있다. 바로 이경수 박사다. 그의 일생은 핵융합으로 점철된다. 석박사 학위가 그렇고 사회 생활 입문이 핵융합 연구였다. 그의 학업과 사회생활 시작하던 시기인 1985년 미국과 소련 정상에 의해 '과학을 통한 평화'가 제창됐다. 1988년에는 미 · 소에 EU와 일본이 가세하며 국제핵융합 장치인 ITER가 시작됐다.
이 박사는 한국에 1991년 귀국했고, 첫 사업으로 플라즈마 연구장치인 한빛 프로젝트 총괄 책임자를 맡는다. 이어 1995년 KSTAR(한국형 초전도 핵융합 연구장치)를 기획한다. 10명에 9명은 안된다고 하던 과제였다. 초기 3년은 설계를 했고, 이후 6년간은 핵심 부품 개발 및 제작을 했으며, 2004년부터 조립을 시작해 2007년 완공한다.
한국이 착착 기술력을 보여주자 ITER에서도 관심을 가지며 2003년 팀 합류를 허가했다. 우리나라 국력이 커진 지금이야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 일상으로 여겨지지만 20여년전에는 큰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과학기술분야에서는. 이 박사 개인은 핵융합 선발국으로부터 본인들도 불가능한 것을 가능케한 사람이라며 국제적으로도 인정을 받았다. 그 결과 2015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을 ITER 넘버 2인 사무차장으로 재직하며 국제 협력을 총괄한다.
과학자이자 정책가, 사업가로 변신한 그는 '세금 쓰는 연구'를 넘어 '세금 버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한국 과학기술계에 던지고 있다. [사진=대덕넷DB]
핵융합 분야에서는 최고수 반열에 오른 다음 그는 다른 행보를 한다. 정계에 입문한 것. 2020년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전문가 영입 사례로 민주당에 들어가 비례 대표 후보가 된다. 여러 정치 상황상 국회의원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일을 한다. 국가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시야를 갖게 된 것. 당시 이해찬 대표로부터 미래 대한민국 청사진을 그려달라는 주문을 받는다. '새로운 국가' 프로젝트란 이름의 공부를 1년반 동안 매주 오전 6시반부터 9시까지 주관했다. 각계의 내로라하는 전문가들과 공부하며 4차 산업혁명 시기 대한민국의 생존 밑그림을 그렸다.
이어 전문가로 과학기술혁신본부장을 맡아 과학계 활성화에 진력한다. 문재인 정부가 끝나며 시민으로 돌아온 그가 시작한 것이 세금 벌기 프로젝트이다.
"핵융합 연구소와 ITER 프로젝트에 세금이 쓰인 것을 보니 약 2조원이었습니다. 지금부터 할 일은 최소 2조원을 환원하고, 잘되면 그 배가 넘는 5조, 10조원을 세금으로 내는 것"이라고 자신의 사명을 만들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인에이블 퓨전'이란 회사이다. 핵융합실증로인 KSTAR를 만들고, ITER사업을 총괄하면서 알게 된 것이 우리나라의 강한 제조역량. 다른 나라는 엄두도 못내는 거대장치를 0.1mm이하의 정밀도로 해낼 수 있는 나라는 우리가 유일했다. 핵융합이란 미래 에너지를 만드는 장치를 우리가 만들어주면 인류에도 기여하고, 국부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2023년 3월에 회사를 출범시켰다. 당시만 해도 핵융합은 부각되기 전이었다. 예상 시기만 좀 댕겨졌을 뿐 여전히 불확실한 에너지원으로 여겨지던 때였다. 그러다가 분위기가 급변한 것은 2025년 11월 美 제네시스 미션과 AI 발전. 제네시스 미션에서 에너지 문제의 유력한 해결방안으로 핵융합이 손꼽혔다. 때마침 AI가 발전하며 핵융합로 설계 난제가 해결되며 목표연도가 2030년도로 확정되는 등 핵융합이 가시권에 들어왔다.
미국 빅테크는 물론 큰 손들이 핵융합에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다. 우수한 인력들이 모이고, 난제들이 해결되며 실현 가능한 프로젝트로 받아들여졌다. 핵융합이 각광받을 수록 주목되는 나라는 한국이다. 거대장치를 정밀하게 적정가격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국가이기 때문.
인에이블이 지향하는 바는 반도체의 TCMC와 같은 '제조 오마카세'. 설계도만 가져오면 아무리 복잡한 것도 최적의 제품으로 만들어 주는 것. KSTAR를 만든 국내 기업들과 협업해 장치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에이블은 제조기업들을 최고의 상태로 조합하고, 주문자에게는 핵융합 설계 등을 도와주는 것.
그 결과가 지난 월요일(현지 시각)에 이탈리아의 과학도시인 프라스카티에서 사인한 450억원 규모의 계약이다. 핵융합 장치의 가장 핵심부품인 진공용기를 만드는 것. KSTAR를 만들어 봤고, ITER 사업 총괄을 하며 국제 경험을 갖고 있기에 가능한 사업이다. 이 사업을 초두로 추가 부품 주문도 예상하고 있다.
이날 계약을 하며 그는 그동안의 핵융합 인생을 회고하는 발언을 했다.
이 소장은 "35년간 핵융합 한 우물을 파왔고, 회사 구상부터 3.5년만에 첫 주문을 받았다"라며 "리더는 안보이는 비전을 제시하고 보여주는 것인데 핵융합이 에너지 해결책임을 실증하겠다"고 다짐했다.
계약서에 서명하고 지인들한테 낭보를 전했다. 그 때 쓴 표현이 '세금 버는 과학자'. 1박3일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들어온 그에게 좀 더 자세히 들어보았다.
"연구원이 쓰는 돈은 세금이다.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나이든 사람…약자들의 돈도 여기에 들어가 있다. 똑똑한 사람은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다. 연구 자체도 의미가 있지만 100가지 연구 중에 몇 개는 전체 투자액 보다도 많은 세금으로 환원돼야 한다. 그래야 연구 생태계도 유지되고 국가도 지속가능하다. 아울러 세금 낸 사회 약자들을 조금이라도 잘 살게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은 분명 투자 효과가 있다. 대한민국이 오늘날 제조강국이 되는데 산업현장 못잖게 역할한 것이 출연연들이다. 표준을 만들었고, 외국 기술을 대체하는 국산 기술을 개발했으며, 원자력으로 에너지 자립에 기여했고, TDX CDMA 등 IT 강국의 기초를 놓았고, 로켓과 인공위성으로 우주 진출에도 이바지했다. 간접 효과는 분명 막대했다. 하지만 직접 돈을 버는 것은 미미한 것도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연구비는 비용으로 여겨졌고, 투자 이미지는 희미했다. 연구도 사업화 수준인 TRL 7단계 이상이 아니라 기초와 응용의 경계인 TRL 5단계 전후에 머물렀다. 세금을 쓰는데는 익숙했지만 이를 환원해 곡창을 살찌우는 것은 남의 일로 간주됐다.
이런 인식에 이 박사가 파문을 일으킨 것이다.
"핵융합은 누구도 실현가능성에 의심을 가진 가장 어려운 기술이다. 그런데 이 기술을 갖고도 돈을 벌 수 있다. 다른 기술도 충분히 돈을 벌 수 있다고 본다. 돈 버는 것이 목적이 되면 안된다. 하지만 세금을 쓰는데 그치지 않고 어려운 사람들의 생활을 개선시키는데 과학이 역할해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은 연구자 본인에게도 도움이 되리라고 믿는다."
이 박사는 연구자이면서 정치인이다. 그런데 표를 먹고 사는 정치꾼이 아니라 국가 미래 비전을 보며 국부창출과 국민 생활 개선을 고민하는 정치가이다. 그런 그가 이재명 정부 들어서며 과학정책의 최고 의사결정권자 중의 한 명인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을 맡았다.
사업가로, 정치인으로, 과학자로 여러 얼굴을 지닌 가운데 국리민복이란 그의 초심은 일관되는 듯하다. 오랜 기간 옆에서 보아왔지만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은 못 보았다.
최근 보낸 사진 한 장이 인상적이었다. 대통령 3대 자문위원회의 민간인 수장들이 한 자리에 있었다. 국민경제자문회의 김성식 부의장, 국가인공지능위원회 임문영 부위원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이경수 부의장 등이었다. 여기에 기본소득을 주관하는 기본사회위원회의 강남훈 부위원장 등이 함께해 대통령께 전방위 자문을 하겠다고 밝힌다.
앞으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래 일이라 모르겠다. 담합이 아니라 소통하며 국민을 위하는 결과를 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박사라면 할 수 있겠다는 기대도 조금이지만 생긴다. 세금 버는 과학자란 새로운 유형의 과학기술인은 신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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