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찬 영남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오늘날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단어는 주로 ‘대중인기영합주의’라는 매우 부정적인 뉘앙스로 널리 쓰인다. 선거를 앞두고 표를 얻기 위해 무분별한 선심성 정책을 남발하거나, 합리적인 판단보다는 대중의 일시적인 분노와 감정에 호소하는 정치 행태를 비판할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바로 포퓰리즘이다. 하지만 역사의 페이지를 찬찬히 넘겨보면, 포퓰리즘은 본래 소수의 엘리트가 독점하던 권력과 부를 다수의 평범한 대중에게 돌려주려 했던 긍정적이고 혁명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정치와 경영이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포퓰리즘이 어떻게 세상을 바꾸었는지 살펴보면, 이 단어가 가진 놀라운 반전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정치적 관점에서 포퓰리즘의 기원을 살펴보자. 현대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미국의 건국 초기 정치는 엄밀히 말해 대중 민주주의라기보다는 소수 엘리트들의 ‘과두정(Oligarchy)’에 가까웠다. 조지 워싱턴부터 존 퀸시 애덤스에 이르는 초기 6명의 대통령은 모두 버지니아와 매사추세츠 출신의 대지주이자 최고 수준의 교육을 받은 명문가 지식인들이었다. 이들 ‘건국의 아버지들’은 일반 대중의 정치적 판단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않았다. 대중의 뜻이 권력에 직접 반영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이 대통령을 직접 뽑지 못하게 하는 선거인단 제도를 만들었고, 인구 비례와 상관없이 각 주당 2명씩의 상원의원을 배정해 하원의 결정을 견제하도록 제도를 설계했던 것이다.
이러한 견고한 귀족적 엘리트주의에 균열을 내고 진정한 의미의 ‘대중 민주주의’ 시대를 연 인물이 바로 미국의 7대 대통령 앤드루 잭슨이다. 변방의 가난한 스코틀랜드계 아일랜드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정규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그는 기존의 엘리트 정치인들과는 완벽하게 대척점에 서 있는 인물이었다. 1824년 대선에서 일반 투표와 선거인단 투표 모두 1위를 차지하고도 과반수를 넘지 못해, 결국 동부 엘리트 정치인들(존 퀸시 애덤스와 헨리 클레이)의 ‘부패한 거래’로 인해 하원 투표에서 패배하는 수모를 겪는다. 이에 잭슨은 워싱턴의 엘리트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이익만을 챙기며 보통 사람들을 억압하고 있다고 맹렬히 비판하며 ‘반(反)엘리트주의’를 내세웠다.
그는 재산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지던 투표권을 세금을 내지 않는 무일푼의 일반 백성들에게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이를 통해 다수의 평민들을 정치의 주역으로 끌어들였다. 소수 귀족들의 손에 있던 권력을 일반 민중에게 나누어준 잭슨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포퓰리즘’이었으며, 이는 일부 기득권의 권력을 해체하고 정치 참여를 절대 다수로 확장시킨 민주주의의 결정적 전환점이었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정신은 정치 무대를 넘어 경제와 경영의 영역에서도 놀라운 혁신을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피터 드러커가 “마지막 포퓰리스트이자 아마도 가장 위대한 포퓰리스트”라고 극찬한 헨리 포드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었을 무렵, 그것은 오직 극소수의 부유층만이 누릴 수 있는 ‘귀족들의 장난감’이자 사치품이었다. 포드의 초기 동업자들 역시 부유층을 위한 고급 자동차를 생산하여 높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경영의 당연한 상식으로 여겼다.
하지만 포드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1896년 미국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꿈꾸었던 “산업 생산이 평범한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정치적 이상을 경영 현장에 그대로 적용했다. 그는 소수의 귀족이 아닌 대중을 위한 저렴하고 실용적인 자동차인 ‘모델 T’를 세상에 내놓으며 시장 접근의 문턱을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포드는 독점 자본가나 거대 은행가의 이윤 창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중을 위한 대량 생산이 훨씬 더 가치 있고 결국에는 가장 수익성 높은 방식임을 입증해 보였다.
더 나아가 포드는 자신이 만든 산업 제품을 공장 노동자들이 직접 살 수 있도록 구매력을 높여주어야 한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1914년 ‘하루 5달러’라는 파격적인 최저 임금 정책을 도입하여 노동자들이 중산층 수준의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노동자들을 고된 육체노동에서 해방시켜, 공장 밖에서는 독립적인 시민으로서 공동체 생활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포드는 19세기 정치 개혁가들이 환호할 만한 쾌적한 공장을 만들었으며, 정치인들이 말로만 외치던 제퍼슨식 이상향과 포퓰리즘의 꿈을 산업 현장에서 경제적 풍요를 통해 완벽하게 실현해 냈다.
우리는 흔히 포퓰리즘을 공동체의 이익을 해치고 대중의 눈과 귀를 가리는 위험한 선동 정치로만 치부한다. 하지만 앤드루 잭슨이 이룩한 정치적 대중화와 헨리 포드가 증명한 경영적 대중화의 사례는 우리에게 포퓰리즘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정치든 경영이든 ‘포퓰리즘’ 자체가 무조건적으로 악(惡)인 것은 아니다.
결국 포퓰리즘이라는 칼은 누구의 손에서, 어떤 목적과 방식으로 쓰이느냐에 따라 그 결과가 180도 달라지는 양날의 검이다. 정치 영역에서 대중의 폭넓은 참여를 이끌어내는 긍정적 원동력이 될 수도 있고, 경영의 영역에서는 ‘귀족의 전유물’을 ‘대중의 필수품’으로 탈바꿈시켜 인류의 생활 수준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리는 ‘경영의 대중화’로 꽃피울 수도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여러 도전에 직면한 오늘날, 우리는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를 덮어놓고 배척할 것이 아니라, 그 기저에 깔려있는 ‘다수의 대중을 향한 헌신과 포용성’이라는 본질적 가치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긍정적인 발전 동력으로 승화시킬 것인지 깊이 고민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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