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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대구논단] 망국의 수도권 집중 - 수도권 빨대에 구멍을 뚫어라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다 결국 서로의 햇빛과 양분을 빼앗고 함께 말라 죽는다. 갈등(葛藤)이라는 말은 이 자연의 이치에서 나왔다. 옛사람들은 칡과 등나무의 뒤엉킴에서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이 서로를 옥죄는 어리석음을 읽어냈다.

[대구논단] 망국의 수도권 집중 - 수도권 빨대에 구멍을 뚫어라

조덕호 대구대학교 명예교수 (사)지구촌정신문화포럼 대표

칡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오르다 결국 서로의 햇빛과 양분을 빼앗고 함께 말라 죽는다. 갈등(葛藤)이라는 말은 이 자연의 이치에서 나왔다. 옛사람들은 칡과 등나무의 뒤엉킴에서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이 서로를 옥죄는 어리석음을 읽어냈다.

지금 대한민국을 옥죄는 가장 굵은 넝쿨은 수도권과 지방의 불균형이다. 인구, 자본, 청년, 일자리, 대학과 병원이 수도권으로만 쏠리면서 지방은 소멸을 걱정하고, 그 갈등의 골이 임계점을 넘으면 나라 전체가 활력을 잃는 망국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그러나 이 해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억지로 막힌 것을 뚫고, 서로 연결하면 된다.

◇하나뿐인 빨대, 도로

문제는 지금까지 놓인 길이 오직 수도권만을 향해 열린 ‘빨대’라는 데 있다. 경희대 사회과학연구원의 한 논문은 고속도로나 고속철도가 새로 뚫릴 때 그 지역의 소득과 인구가 오히려 인근 대도시로 흡수되는 역설을 규명했다. 길을 놓았는데 지역은 더 야위어가는 것, 이것이 빨대 효과다.

해법은 이 하나뿐인 빨대의 옆면에 구멍을 여러 개 뚫는 것이다. 수도권으로 집중된 고속도로를 전국의 국도·지방도와 촘촘히 연결하면 흐름은 더 이상 한 방향으로만 몰리지 않는다. 억지로 내려가라 압박할 필요 없이, 길이 촘촘해지면 흐름은 저절로 분산된다. 국토연구원이 경부·중부 고속도로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에서, 국가산업단지의 58.6%, 지방산업단지의 61.6%가 나들목으로부터 10㎞ 이내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산업의 입지 자체가 나들목의 위치를 따라간다는 뜻이다. 대구, 문경, 청도 같은 도시를 고속도로가 그저 스쳐 가는 통로로 두는 대신 나들목과 지선을 늘려 원도심과 산업단지로 곧장 이어준다면, 수도권으로 순식간에 빠져나가던 흐름이 곳곳에서 지역 상권으로 스며들 것이다. 새 고속도로 없이도, 나들목이라는 접점을 늘리는 것만으로 지역은 숨통이 트인다.

◇닫힌 섬, 휴게소

이 빨대 구조는 도로망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속도로 위에 촘촘히 박힌 휴게소야말로 빨대 효과의 축소판이다. 지방을 몇 시간 관통하면서도 정작 그 지역에는 단 한 푼도 쓰지 않고, 고속도로 위에 떠 있는 섬 같은 휴게소에서만 소비하고 지나가는 구조다. 지역은 소음과 분진, 통행량은 다 떠안으면서도 그 경제적 온기는 조금도 나눠 받지 못한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가 한국도로공사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8월 기준 전국 고속도로 휴게소 208곳 중 연매출 상위 10곳의 매출은 2023년 약 2천471억 원으로, 2020년보다 21.5% 늘었다. 전체의 5%도 안 되는 초대형 휴게소가 수천억 원을 빨아들이는 동안, 원도심과 전통시장은 이 흐름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국도·지방도가 끊긴 것과 다르지 않은, 오히려 더 교묘한 빨대다.

장기적으로는 휴게소를 과감히 줄이고, 그 자리를 지역으로 향하는 나들목과 안내 체계로 대체해야 한다. 여행객이 고속도로 위 섬에 머무는 대신 인근 원도심과 전통시장, 지역 맛집과 잠잘 곳을 찾아 직접 내려가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다. 처음에는 화장실 한 번 들르는 것도 번거롭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작은 불편함이야말로 지역에 사람과 돈이 흘러들게 하는 소중한 ‘구멍’이다. 휴게소 매출은 소수 프랜차이즈에 집중되지만, 지역으로 내려간 소비는 식당, 농산물 직판장, 숙박업소, 전통시장, 택시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퍼진다. 나들목 하나, 이정표 하나로 하루 수십만 대의 통행량을 지역 경제로 바꿀 수 있다. 대규모 예산 없이도 지역 소멸을 늦출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즉각적인 처방이다.

◇연결이 곧 해법이다

수도권 집중과 지역 소멸이라는 망국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길은 결국 연결에 있다. 고속도로를 국도·지방도와 사통팔달로 잇고, 휴게소라는 닫힌 섬을 지역으로 향하는 열린 문으로 바꾸는 것. 거창한 신도시나 대형 국책사업이 아니라, 나들목 하나 더 놓고 이정표 하나 더 세우는 이 작은 연결이야말로 수도권과 지방, 지방과 지방의 갈등을 동시에 푸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길이 통하면 사람이 통하고, 사람이 통하면 마음이 통한다. 빨대에 구멍을 뚫는 일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실천이다. 그 작은 구멍 하나하나가 모여 대한민국이라는 나무를 다시 살리는 물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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