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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대구논단] 거안사위(居安思危)

코스피가 마침내 9,000선을 돌파했다. 올해 초에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숫자다. 그러나 올해 4,30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는 반년 만에 천 단위 앞자리를 다섯 번이나 바꾸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대구논단] 거안사위(居安思危)

이석형 객원논설위원·행정학박사

코스피가 마침내 9,000선을 돌파했다. 올해 초에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웠던 숫자다. 그러나 올해 4,30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는 반년 만에 천 단위 앞자리를 다섯 번이나 바꾸며 거침없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일부 증권사와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올해 안에 코스피가 1만 선을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내놓고 있다.

코스피 9,000은 분명 우리 경제와 자본시장에 있어 의미 있는 성과다. 인공지능(AI) 산업의 폭발적 성장과 함께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중심으로 한 국내 반도체 산업은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불안했던 대외 환경 역시 어느 정도 진정되면서 증시에 우호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시장이 뜨거워질수록 냉정함이 요구된다. 지금 코스피의 화려한 숫자는 우리에게 희망과 함께 경고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현재 주가 상승의 상당 부분이 소수 반도체 대형주에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차지하는 시가총액 비중은 이미 코스피 전체의 절반을 넘어섰다. 시장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상당수 종목이 하락하고 있다. 어떤 날에는 지수는 상승했지만, 오히려 하락 종목 수가 상승 종목 수를 압도하기도 한다. 이는 시장 전체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다기보다 일부 초대형 종목이 지수를 끌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마치 거대한 나무 몇 그루가 숲 전체를 가리고 있는 것과 같다. 투자자들이 체감하는 현실과 지수의 움직임이 괴리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한 최근 증시 활황의 이면에 자리한 자금 흐름 또한 살펴봐야 한다. 정부의 강도 높은 부동산 억제 정책과 금융 규제 강화 속에서 시중의 막대한 유동성 자금이 상대적으로, 주식시장으로 유입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동산 시장의 투자 매력이 낮아지자, 갈 곳을 찾지 못한 자금이 주식시장으로 몰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는 증시를 바라보며 ‘나만 돈을 벌지 못하고 있다’라는 불안감, 즉 포모(FOMO) 심리 확산으로 개인 투자자들은 뒤처질 수 없다는 생각에 예금과 적금은 물론 보유 자산을 현금화하고 심지어 신용융자와 레버리지 투자까지 동원하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이는 실제로 올해 증시 수급을 살펴보면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규모 차익 실현에 나선 방면 개인 투자자들이 그 물량을 적극적으로 받아내고 있는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강세장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별다른 문제로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시장을 떠받치는 주체가 점점 더 위험에 취약한 개인 투자자들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게 볼 문제가 아니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환율이다.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매도한 뒤 자금을 달러로 환전하면서 원·달러 환율은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환율은 미국의 금리 정책, 무역수지, 글로벌 경기 전망 등 복합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지만, 주식시장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상황에서도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인다는 사실은 우리 경제가 마냥 낙관적 상황에 놓여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현재 반도체 산업을 호황으로 이끄는 인공지능 혁명이 앞으로도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은 높다. 그러나 산업의 역사는 영원한 호황도, 영원한 성장도 없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증명해 왔다. 2000년대 초 정보기술 버블도,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부동산 호황도 당시에는 끝없이 이어질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국 시장은 조정을 거쳤고, 낙관론이 극에 달했던 순간이 오히려 위험의 시작점이 되곤 했다.

따라서 만약 글로벌 경기 둔화나 기술 변화, 공급 과잉 등의 이유로 반도체 업황이 예상보다 빠르게 식는다면 현재의 시장 구조는 큰 충격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레버리지 상품과 신용거래를 통해 시장에 참여한 개인 투자자들은 순식간에 막대한 손실을 입을 위험이 있다. 최근 단일 종목 레버리지 ETF에 천문학적 자금이 몰리는 현상 역시 이러한 위험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따라서 정부는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특정 자산시장으로 과도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은 장기적으로 경제 체질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코스피의 비약적 상승을 정권의 치적으로 홍보에 주력하기보다, 우리 경제가 지속 가능하도록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전력해야 한다. 투자자들도 마찬가지다. 시장이 좋을 때일수록 위험을 생각해야 한다. 수익을 추구하는 것만큼 손실 가능성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시장은 늘 상승과 하락을 반복하며 순환해 왔다. 오늘의 승자가 내일의 패자가 될 수 있고, 오늘의 주도 산업이 내일의 쇠퇴 산업이 될 수도 있다. 영원히 오르는 자산도, 영원히 번영하는 산업도 없다. 코스피 9,000의 환호 뒤에서 들려오는 거안사위(居安思危)의 경고음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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