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찬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AI시대 ‘병목’이야기가 많이 회자된다. 처음에는 고성능 GPU라고 했다가, 그 다음은 메모리를 담당하는 반도체, 데이터센터와 에너지에 이르기까지 AI의 엄청난 성장을 발목 잡는 부분들이 곳곳에 존재한다. AI가 교육을 확 바꿔놓을 것이라는 점에는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구체적으로 무엇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필자는 AI시대 교육혁신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구시대적인 ‘대량생산방식의 교실교육’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예전 칼럼에서 19세기 산업혁명 시대, 대량 생산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교실’로 대변되는 대량생산식 교육이 독일에서 시작되었다고 언급했었다. 수십 명의 학생을 한 공간에 모아두고 일률적으로 지식을 주입하는 교실 시스템은 산업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가장 효율적인 모델이었다. 그러나 AI시대가 열리고 있는 지금까지도 학교 교육은 여전히 ‘교실’에서 교수자 1명이 다수의 학생을 가르치는 대량생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시대를 불문하고 교육 구조가 수백 년 동안 정체되어 있다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교실교육의 종말이 학교나 대학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일까? 결코 그렇지 않다. 한 교실에 다수의 학생을 모아두고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대량생산식 강의’ 방식의 종말을 의미한다. 지식을 단방향으로 주입하는 기능이 AI 기술로 완벽히 대체가능함에 따라, 학교와 대학은 새로운 고유의 핵심 가치를 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되었다.
초·중·고교의 새로운 역할과 관련하여, 넷플릭스의 회장, 리드 헤이스팅스는 학교의 주요 목적을 ① 시민 의식 함양, ② 경제적 기회 제공, ③ 사회화 및 사회정서적 학습의 세 가지 기둥이 있다고 설명한다. AI 튜터링은 단순 지식 전달에 매우 효과적이지만, 동료들과 함께 어울리며 사회성을 배우는 영역은 오프라인 학교와 인간 교사가 전담해야 할 고유 영역이다. 따라서 교사는 단순 지식 전달자에서 벗어나 학생들의 성장을 돕는 고차원적 멘토이자 코치로 역할이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의 새로운 역할도 마찬가지이다. 칸 아카데미의 설립자, 살만 칸에 따르면, 단순히 정적인 지식을 암기하고 일방향 강의를 들으며 학위를 따는 공간으로서의 대학 가치는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퍼스가 주는 인간적 교류와 삶의 경험은 여전히 고유한 가치로 남는다. 앞으로의 대학은 획일적 수강 체제에서 벗어나, 실제 프로젝트와 시뮬레이션을 통해 소통·협업·리더십과 같은 ‘지속 가능한 역량’을 함양하고, 개인의 적성과 진로를 끊임없는 시도와 실천으로 발견하여 고유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가장 우선시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AI를 통해 1대1 맞춤형 교육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다고 하는데 그 비용은 과연 누가 부담해야 할까? 기존에 인간 튜터를 1대1로 붙이는 방식은 칸 아카데미 추산 기준 학생 1인당 연간 약 1만 달러가 소요되어 부담이 컸지만, AI 소프트웨어를 활용하면 교육의 확장 및 인프라 공급 비용이 극적으로 저렴해진다. 이 초개인화 교육 인프라 구축과 비용은 다음과 같이 공공과 민간의 주요 주체가 분담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정부와 공공재원(국부펀드 모델)이다. AI 기술 도입으로 사회 전체의 생산성이 급증하면 초과세수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AI로 창출된 국가 세수를 바탕으로 ‘국부펀드(Sovereign Wealth Fund)’를 조성하여 공공 AI 교육 인프라 재원을 국가가 직접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우리 정부가 반도체 호황 등으로 발생한 추가 세수를 활용해 162조 원 규모의 미래대응기금을 조성한다고 하는데, 국가의 미래가 달려있는 인재양성을 위해 교육을 근본적으로 혁신하는데 많이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
둘째, 글로벌 기업 및 산업계(공동 투자 및 프로그램 설계)이다. 살만 칸이 구상하는 미래 교육 체제(Content Institute)처럼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맥킨지, 베인 등 주요 글로벌 기업들이 프로그램 설계에 직접 참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기업들은 현장에서 필요한 실무 역량과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교육 시스템을 함께 만들고 인프라 자원을 공유하며 투자하는 것이다.
수백년간 지속되어 온 ‘교실교육’의 사회적 관성은 견고해 보이지만, 균열은 이미 발밑에서 시작되었다. 대량생산 방식의 획일적 교실이 종말을 고하는 것은 단순한 제도의 소멸이 아니라, 모든 학습자가 자신만의 주도적인 ‘개인화된 학습 엔진’을 장착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는 참된 교육의 시작이다. 이제 우리는 제도와 관성이라는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끊임없이 적응하고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가는 주도적 인재를 길러내기 위한 진짜 미래 교육을 준비해야 한다.
박재찬 영남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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