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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대가야의 숨결이 깃든 고령

봄비가 듣기 시작하는 5월의 초입. 남편과 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니 앞차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라 시야를 방해했다. 하늘은 잿빛이고 산에는 안개가 끼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궂은 날씨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보니 안쓰러울 정도였다.

대가야의 숨결이 깃든 고령

정정화 소설가

봄비가 듣기 시작하는 5월의 초입. 남편과 대가야의 도읍지인 고령으로 출발했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니 앞차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라 시야를 방해했다. 하늘은 잿빛이고 산에는 안개가 끼어 음산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궂은 날씨에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보니 안쓰러울 정도였다. 앞 유리를 두드리는 빗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들려 마음이 불편했다.

얼마쯤 갔을까. 차는 터널 속으로 들어갔다. 빗소리가 안 들리니 마음이 차분해졌다. 평소에 터널 안은 풍경을 볼 수 없어 좋아하지 않았는데, 비 오는 날에는 미끄럽지도 않고 안전하게 느껴졌다. 날씨에 따라 그대로인 사물도 달라 보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다. 터널이 아닌 구간에는 이팝나무의 푸른색 이파리와 하얀 꽃이 어우러져 마음을 밝혀 주었다. 고령은 초행길이라 가슴이 설렜다.

두 시간 정도를 달려 고령 대가야 박물관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대가야 역사관으로 들어섰다. 후기 가야의 새로운 중심이었던 대가야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다. 대가야는 서기 42년부터 562년까지 약 520년 동안 이어진 고대국가로, 592년 9월 신라에 의해 멸망했다. 조선보다 더 긴 역사를 가졌다는 점이 놀라웠다.

대가야 토기는 주로 회청색으로 항아리, 뚜껑 접시 등 다양한 형태로 생활 용기와 의례용 제기로 사용했다. 섬세한 문양과 균형미가 돋보이며 부드러운 곡선으로 예술성을 띠고 있다. 음식물이 담긴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속에는 닭, 꿩 등의 조류와 대구, 참돔, 고둥 등의 생선과 해산물의 흔적이 확인되었다. 이는 당시 식생활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특히, '철의 왕국'으로 불릴 만큼 철기 문화가 발전되었는데 덩이쇠, 투구, 갑옷, 말갖춤 등에 철이 사용되었다. 말에게도 철로 된 갑옷을 입힌 것을 보면 말을 중요하게 여겼음을 짐작할 수 있다. 덩이쇠는 최고 교역물이자 화폐로 사용했다. 대가야의 철은 삼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등에 수출하는 교역 물품이었다.

장신구는 금이나 금동으로 화려하게 만들어 신분이나 지위를 상징했다. 금관과 귀걸이는 디자인이나 제작 기법에서 독특한 특징은 지닌다. 세공된 장신구들이 지금 끼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았다. 대가야는 가야국 중 유일하게 금관과 금동관이 여러 개 출토되었다. 유리구슬과 곱은옥으로 만든 목걸이와 금이나 은제 팔찌도 많았다. 이는 실용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것으로,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어 의미가 깊다.

대가야는 신화를 만들어 왕실의 신성성과 정당성을 강조했다. 건국 신화를 상징하는 흙방울이 무덤에서 발견되기도 했다. 대가야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삼국시대가 아니라 사국시대라 해야 할 만큼 우리나라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배웠다. 이어 왕릉전시관으로 향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왕릉 모양의 둥근 지붕으로 지어진 건물이 나왔다. 이곳은 국내 최초로 확인된, 순장 무덤인 지산리 제44호분의 내부를 재현해 놓았다. 왕이 묻힌 으뜸돌방과 껴묻거리와 딸린 두 기를 중심으로 40여 명이 순장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 32기의 순장 돌덧널이 있는 최대 규모의 순장 무덤이다. 순장된 사람들은 10대에서 60대에 이르는 남자와 여자로, 남편과 아내, 아버지와 딸, 형제자매가 함께 순장되기도 했다. 역할은 왕의 저승 생활을 위한 시종과 호위무사, 창고지기, 마부, 일반 백성 등 다양했다. 이를 통해 죽은 뒤에도 생시의 삶이 이어진다는 내세관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죽은 왕을 위해 여러 명의 산목숨이 희생됐다는 점에서 안타까웠다.

지산동 고분군. 이곳은 2023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오르막을 가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쳐서 걷기에 좋았다. 어디선가 아카시아꽃 향이 날아왔다. 길가에 소나무들은 송화를 가득 머금고 있었는데, 비에 젖어 날리지는 않았다. 능선 위로 펼쳐진 지배층의 고분이 푸른 곡선으로 이어졌다. 왕릉전시관에서 본 44호분 실물을 보고 싶어 계속 올라갔다. 길가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운치 있게 서 있는 곳을 지나 얼마 안 가니 커다란 왕릉이 나타났다. 드디어 44호분에 도착한 것이다. 그 왕릉 안에 조금 전 전시관에서 본 것들이 묻혀 있었다니 대단하다 싶었다. 1,500년을 훌쩍 넘어서 눈앞에 나타난 역사의 흔적이 지금의 우리와 연결돼 있다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했다.

내려오는 길에 소나무에 매달아 놓은 그네를 탔다. 그네를 타면 왜 즐거워지는지 바로 동심으로 돌아갔다. 야, 하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카시아꽃 향이 몸에 밸 듯 고분 위를 떠돌았다. 대가야의 역사와 문화에 흠뻑 젖은 하루, 한차례 말발굽 소리가 지나간 자리에 그윽한 우륵의 가야금 곡조가 둥기둥, 귓가에 울려 퍼진다. 정정화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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