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서울 | 김현덕 기자] 배우 박은빈의 시간은 반짝 타오르기보다 묵묵히 차곡차곡 쌓였다. 다섯 살 어린 나이에 카메라 앞에 섰던 아이는 어느덧 30년의 내공을 품은 대배우로 성장했다.
박은빈은 1996년 아동복 모델로 연예계에 첫발을 디딘 후 ‘백야 3.98’을 통해 본격적인 연기 활동을 시작했다. ‘명성황후’ ‘상도’ ‘유리구두’ ‘무인시대’ 등 굵직한 대작 사극과 현대극에서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도맡으며 탄탄한 연기 기본기를 다졌다.
아역 출신 배우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성인 연기자로의 온전한 안착이다. 박은빈 역시 긴 시간 그 시험대를 통과했다. 억지로 아역의 꼬리표를 떼어내려 조급해하지 않았고, 단 한 번의 반짝 흥행에 기대어 자신을 소모하지도 않았다. 2012년 TV조선 ‘프로포즈 대작전’으로 첫 성인 주연을 맡은 뒤 ‘구암 허준’ ‘비밀의 문’ 등을 거치며 성실히 제 몫을 해냈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청춘시대’였다. 박은빈은 능청스럽고 엉뚱한 에너지를 지닌 송지원 역을 완벽히 소화하며, 그간 대중에게 각인됐던 단정하고 바른 모범생 이미지를 시원하게 깨부쉈다.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는 과감한 연기 변신이었다.
‘스토브리그’에서는 또 다른 얼굴을 꺼냈다. 프로야구단 최연소 운영팀장 이세영 역을 맡아 감정의 과잉 없이 단단하고 주체적인 직업인의 얼굴을 그려내며 극의 중심을 잡았다. 이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는 사건의 크기보다 미세한 감정의 파고에 집중하며 섬세한 결을 빚어냈다. ‘스토브리그’의 강단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서정성은 박은빈이 작품의 온도에 따라 스스로를 정밀하게 조율할 줄 아는 연기자임을 명확히 보여줬다.
‘연모’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과감한 도약이었다. 남장 여자 왕세자라는 파격적인 설정 속에서 정체를 숨긴 불안, 사랑 앞에서의 흔들림을 설득력 있게 담아냈다. 이 작품을 통해 박은빈은 안정감에 안주하는 연기자를 넘어, 장르 전체의 무게를 짊어지고 끌고 가는 독보적인 주연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신드롬을 일으킨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찾아왔다.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변호사 우영우를 과장하거나 소비하지 않고, 인물의 리듬과 세계를 신중하게 구축해 대중적 찬사를 이끌어냈다. 이후 ‘무인도의 디바’에서는 폭발적인 가창력과 꺾이지 않는 희망의 온도를 보여줬고, ‘하이퍼나이프’에서는 나락으로 떨어진 천재 외과의사의 날카로운 광기를 드러내며 스펙트럼을 넓혔다.
박은빈이 30년간 롱런할 수 있었던 비결은 굴곡 없는 성실함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는 결코 캐릭터를 쉽게 소비하지 않았다. 아역에서 성인으로 넘어갈 때도, 메가 히트작 이후 차기작을 고를 때도 자신이 얼마나 돋보일지보다 인물이 왜 그렇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진중한 태도가 필모그래피 전체에 신뢰를 불어넣었다.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은 박은빈은 팬 콘서트와 기념 앨범으로 대중을 찾는다. 9월 발매 예정인 앨범에는 그가 직접 작사에 참여한 곡도 수록된다. 연기와 작품을 향한 진심, 오랜 시간 곁을 지켜준 팬들을 향한 고마움을 음악에 담아 전한다는 점에서 그의 30주년은 큰 울림을 남길 전망이다. khd9987@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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