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정의선 174억·롯데 신동빈 149억…실적 따라 '희비' 교차
이재용 9년째 '무보수'·정기선 58% 급등…전문경영인도 '성과급'에 100억대 속출
사진=AI 생성 이미지
국내 주요 대기업 집단이 2025년도 사업보고서를 일제히 공시하면서 재계 총수와 전문경영인들의 '성적표'가 공개됐다. 지난해 글로벌 경기 침체와 지정학적 위기 속에서도 AI(인공지능), 방산, 자동차 등 전략 산업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둔 기업 총수들의 보수는 크게 뛴 반면, 업황 부진을 겪은 유통과 화학 계열 총수들은 '고통 분담' 차원에서 보수가 깎이는 등 실적에 따른 '철저한 보상' 기조가 한층 뚜렷해졌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재계 보수 총액 1위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차지했다. 김 회장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한화솔루션 등 주요 계열사로부터 총 248억4100만원의 보수를 수령했다. 전년 대비 약 77% 급증한 수치로, 'K-방산'의 기록적인 수출 행진과 에너지 신사업의 안착이 보수 산정의 핵심 근거가 됐다. 특히 양도제한조건부주식(RSU) 제도가 본격화되면서 미래 기업 가치 향상에 대한 보상 비중이 커진 점이 눈에 띈다.
이어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2위에 올랐다. 이 회장은 지주사 CJ에서 138억 2500만 원, CJ제일제당에서 39억 1800만 원 등 총 177억 4300만 원을 받았다. 식품과 바이오 부문의 견조한 실적이 바탕이 됐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174억6100만원을 받아 뒤를 이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기아로부터 받은 54억원의 보수다. 정 회장은 2020년 취임 이후 기아에서 무보수 경영을 이어왔으나, 지난해 기아가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함에 따라 '책임 경영' 강화 차원에서 처음으로 급여와 상여를 수령했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서의 보수까지 합산하면 정 회장의 연봉은 전년 대비 50% 이상 늘어났다.
LS그룹과 GS그룹 역시 주력 사업의 '슈퍼 사이클'에 힘입어 견조한 보수 체계를 유지했다. 구자은 LS그룹 회장은 지난해 약 68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글로벌 전력 인프라 수요 폭증으로 LS전선과 LS일렉트릭이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한 점이 반영됐다. 구자균 LS일렉트릭 회장은 72억원을 수령해 그룹 내 최고액을 기록했으며, 구자열 이사회 의장도 56억원을 받았다.
반면 '전통의 강자'였던 롯데와 LG는 상대적으로 쓴맛을 봤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총 149억9300만원을 수령해 전년 대비 보수가 16% 가량 줄었다. 롯데케미칼 등 화학 부문의 적자 지속과 유통 부문의 성장 정체로 인해 상여금이 대폭 삭감됐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롯데칠성과 롯데케미칼 등 일부 계열사에서 상여 없이 기본 급여만 받거나 보수 총액을 스스로 줄이며 책임 경영의 의지를 보였다.
구광모 LG그룹 회장 또한 71억2700만원을 받아 보수 규모가 다소 줄었다. LG전자가 호실적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지주사 보수 산정의 기준이 되는 계열사 전반의 수익성 지표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등의 영향으로 주춤했기 때문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SK하이닉스에서 47억5000만원, SK에서 35억원 등 총 82억5000만원을 받았다. 최 회장은 HBM(고대역폭메모리) 선점 성과를 인정받아 하이닉스 측 상여가 크게 늘었으나, 지주사 보수를 조절하며 균형을 맞췄다.
HD현대 정기선 수석부회장의 보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정 부회장은 지난해 조선 부문의 흑자 전환과 수주 호황에 힘입어 전년 대비 58% 급증한 약 23억원의 보수를 받았다. 정 회장 체제가 공고해지면서 실적 기반의 성과 보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전문경영인들 사이에서도 '실적=보상' 공식은 엄격히 적용됐다.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이 9년째 '무보수'를 고수한 가운데, 삼성전자의 전문경영인들은 성과급과 퇴직금을 합쳐 수십억원에서 백억원대의 보수를 챙겼다. 특히 지난해 별세한 한종희 전 부회장은 134억원을 수령해 전문경영인 중 1위에 올랐다.
직원들과의 연봉 격차도 화두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역대급 성과급에 힘입어 직원 평균 연봉 1억8500만 원을 기록, 삼성전자(1억5800만원)를 제치고 국내 기업 중 최고 수준에 올라섰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총수의 보수가 관행적으로 책정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이제는 주주들의 감시와 ESG 경영 확산으로 인해 실적과 연동되지 않은 고액 보수는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올해 보수 공시의 핵심 키워드는 'RSU(양도제한조건부주식) 도입 확대'와 '책임 경영의 시각화'다. 한화와 LS, HD현대 등 주요 그룹들은 당장의 현금 보상 대신 5~10년 뒤의 기업 가치와 연동된 주식 보상 비중을 늘리고 있다. 이는 총수가 단기 실적에 매몰되지 않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도록 유도하는 장치로 평가받는다.
또한 정의선 회장의 기아 보수 수령이나 정기선 부회장의 보수 급등은 세대교체 이후 경영 전면에 나선 총수들이 실적으로 본인의 몸값을 증명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단순히 지배력을 행사하는 수준을 넘어, 경영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받음으로써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취지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2025년 보수 현황은 한국 기업들이 '가족 경영'의 폐쇄성을 벗어나 성과 기반의 글로벌 스탠다드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다만 실적 부진 속에서도 고액 보수를 유지하거나 보수 산정 근거가 불투명한 일부 기업들에 대해서는 주총 시즌을 맞아 주주들의 날 선 비판이 이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박성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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