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표
지난 금요일 저의 휴일은 투표소에서 시작했습니다. 각지에서 춘천으로 놀러 온 수십년지기 친구들과 사전투표장 앞에 섰죠. 평소라면 “요즘 춘천에서 뜨는 곳 어디냐” “어디 갈까”, “뭐 먹을까”가 먼저였을 텐데, 이날만큼은 “일단 찍고 가자”가 먼저였습니다. 물론 여기서 ‘찍자’라는 말은 두 가지 뜻이었죠. 하나는 투표용지에 도장을 찍는 일, 다른 하나는 투표소 앞에서 인증사진 찍는 일이었습니다. 강원지사를 서울시장을 대구시장을 각각 먼저 찍었습니다.
요즘은 사진을 남겨야 민주주의도 조금 더 실감이 나는 것 같아 인증사진도 찍었습니다. 손등에 도장을 찍고, 투표소 간판 앞에서 깔깔거린 것을 찍고, SNS에 올린 뒤에야 비로소 ‘나 오늘 시민 노릇 좀 했다’라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를 가볍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세상에는 가벼운 척해야 겨우 무거운 일을 해낼 수 있는 순간들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표도 그런 일 중이 하나입니다. 친구들과 웃으며 가도,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길에 쓱 들러도, 그 한 표가 지닌 무게까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친구들은 주말 동안 맛있는 것을 먹고, 밀린 이야기를 나누고, 별것 아닌 농담에 미친 듯이 크게 웃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투표하고 난 뒤여서인지 무언가 조금 달랐습니다. 놀고 있으면서도 어딘가 마음 한편이 으쓱해졌습니다. 적어도 불평할 자격 하나쯤은 챙겨둔 기분이랄까요.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세상을 고르는 줄 앞에는 한 번 서봐야 하는 거니까요.
정치는 늘 시끄럽고, 후보들은 저마다 세상을 구할 듯 말합니다. 선거철만 되면 골목과 시장은 갑자기 소중해지고, 시민은 갑자기 위대해지는 듯 보입니다. 선거가 끝나면 그 말들이 얼마나 오래 버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투표해야 합니다. 말은 그들의 몫일지 몰라도, 선택은 우리의 몫이기 때문이죠.
이번 주 수요일 본투표를 앞둔 분들은 절대 한 표를 놓치지 않았으면 합니다. 투표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닙니다. 잠깐 시간을 내어 내가 사는 사회에 작은 표시를 남기는 일입니다. 인증사진은 하루쯤 지나면 SNS 피드 아래로 밀려나겠지만, 한 표가 만든 결과는 훨씬 오래 우리 곁에 남을 겁니다. 그러니 이번에는 꼭 찍으시죠. 사진도 좋지만, 무엇보다 먼저 한 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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