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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뉴스룸에서] 월가에 퍼지는 바퀴벌레들

김철오 국제부 차장‘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실적 발표에서 서브프라임(저신용자) 자동차 담보대출 업체 트라이컬러홀딩스 파산에 따른 자사 손실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봤다면 아마도 더 있을 것이다.”

김철오 국제부 차장‘월가의 황제’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10월 실적 발표에서 서브프라임(저신용자) 자동차 담보대출 업체 트라이컬러홀딩스 파산에 따른 자사 손실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봤다면 아마도 더 있을 것이다.” 이후 금융가에서 부실 대출 위험 신호가 목격될 때마다 ‘바퀴벌레’라는 말이 나왔다. 바퀴벌레는 사람을 보면 재빠르게 움직여 숨기 마련이지만, 세상의 시선이 이란에 쏠린 지금 금융가의 바퀴벌레는 자신의 존재를 들켜도 달아나지 않고 이곳저곳에 알을 낳으며 개체 수를 늘리고 있다. 바퀴벌레가 가장 많이 몰려든 곳은 미국 사모 대출 시장이다. 대출받은 기업이 현금을 대신해 채권이나 주식으로 먼저 이자를 갚는 ‘PIK(Payment in kind)’ 방식의 상환에서 가장 강한 경고음이 울린다. 금융업계에서 대출 계약서를 쓸 때 PIK 조항을 삽입하는 것만으로는 위험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대출받은 기업이 경영난에 빠져 PIK 방식으로 이자 상환에 나섰다면 ‘나쁜 PIK’로 분류돼 위험 신호로 간주된다. 채무불이행(디폴트)은 아니지만 그 전조로 여겨지기 때문이다.미국 투자은행 링컨인터내셔널이 사모 대출 운용사 225곳의 고객사 7000곳을 조사한 결과, 나쁜 PIK 비율은 전체 대출의 6.4%로 증가해 2021년(2.5%) 대비 2.5배로 늘어났다. 특히 소프트웨어 업계의 나쁜 PIK 비율은 31%나 됐다. 그전까지 소프트웨어 기업은 성장성이 높다는 이유로 사모 대출 자금을 원활하게 조달했지만, 최근에는 인공지능(AI)에 밀려 기업 가치가 낮아지거나 수익성이 실제로 악화돼 나쁜 PIK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사스포칼립스’(서비스형 소프트웨어의 종말)가 기우에 그치지 않고 소프트웨어 기업의 자금줄을 조이기 시작했다.미국 대체투자 운용사 클리프워터는 지난 11일 고객 서한에서 “주력 사모펀드의 1분기 환매 요청이 총지분의 14%에 달해 환매 한도를 7%로 설정했다”고 밝혔다. 고객의 환매 요청이 쇄도했지만 절반만 이행할 수 있다고 통보한 것이다. JP모건도 같은 날 소프트웨어 기업에 돈을 빌려준 사모펀드의 담보자산 가치를 하향 조정하고 대출 한도를 줄였다. 앞서 지난달에는 정보기술(IT) 분야 투자를 늘리던 미국 사모펀드 블루아울캐피털이 자사 펀드 3개 중 하나의 환매를 영구 중단해 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다.사모 대출 자금이 동결되면 미국에서 연 매출 10억 달러 미만 중견·중소기업의 연쇄적인 자금 경색을 일으킬 수 있다. 중견·중소기업들의 총대출 규모에서 사모펀드 같은 비은행권 비중은 70%에 이른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대출 규제가 강화된 탓이다. 이후 미국에서 사모 대출은 고수익 채권(1조4000억 달러)과 맞먹는 1조3000억 달러짜리 시장으로 성장했다. 이런 시장에 신용 위기가 발생하면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이먼 CEO는 지난 2일 뉴욕에서 열린 JP모건 투자자 설명회에서 “현재 벌어지는 일들이 2005년과 2006년, 2007년에 목격된 것과 똑같다”며 “시장에서 누군가는 과도한 투자를 안이하게 판단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고 경고했다. 2008년 9월 월가 4대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를 쓰러뜨린 글로벌 금융위기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담보증권(MBS)의 부실 증가를 외면하고 신용 위험을 방치한 결과였다. 월가에 퍼지는 바퀴벌레를 잡으려면 이란에서 전운이 걷혀야 할 텐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겐 아직 그럴 여력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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