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김해서 쌀·양파·감 재배하는 권승룡 씨
서른 살 ‘행복’ 찾아 진례면으로 귀농
아버지와 벼농사 방식 달라 싸우기도
농기센터 청년창업농 모임서 정보 공유
땅 임차 늘려 쌀농사 규모화·직거래 확대
김해 청년 농부 권승룡(39) 씨가 지난 10일 진례면에서 벼농사를 짓는 논을 보여주고 있다. /이수경 기자
김해시 진례면 약 26만 4460㎡(8만 평) 논에서 무럭무럭 자란 벼가 노랗게 물들었다. 지난 10일 만난 청년 농부 권승룡(39) 씨 얼굴 가득 미소가 번진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승룡 씨는 서른 살에 김해 진례로 귀농했다. 진례에 친할머니가 계시고, 친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유산으로 남겨준 땅도 있어서다.
부산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일 도매상에서 영업을 하던 승룡 씨는 소매상 대상 영업 마케팅이 쉽지 않았다. 점점 사람을 만날수록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흥미를 잃어갔다. 힘겨워하는 아들에게 아버지는 귀농을 권했다. “농사는 너만 열심히 하면 굶어죽지는 않는다”고 하면서.
승룡 씨는 9년 전인 2017년 진례로 왔다. 아버지가 할아버지 땅에서 쌀농사를 짓고 있어 처음에는 아버지와 같이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버지 쌀농사 방식을 보고 있자니 옛날 방식이라 힘만 들고 수익은 적었다. 쌀농사를 수월하게 지을 방안을 찾아내야 했다. 농사 규모를 늘리고, 판로를 만들고자 직거래를 했다. 공판장에만 팔아서는 수익이 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승룡 씨와 아버지는 벼 키우는 방식을 놓고 농사를 짓니 안 짓니 할 정도로 엄청 많이 싸웠다. 아버지는 예전 할아버지가 농사 짓던 방식에 따라 시기에 맞춰 벼를 심고 농법을 써야 한다고 고집했다. 하지만 승룡 씨는 온도 변화에 따라 작물을 봐가면서 벼 키우는 방식을 달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아버지는 승룡 씨에게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라”며 져줬다. 아버지가 공무원 은퇴 후인 2024년부터 승룡 씨는 아버지와 별개로 노지 농사를 지어왔다. 해마다 쌀과 양파(이모작) 농사를 지어 수확한다. 감(태추) 농사도 조금 짓고 있다.
권승룡 씨가 귀농 초기에 구입한 중고 농기계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수경 기자
승룡 씨에게 농사 짓는 안목을 키워준 것은 김해시 농업기술센터 내 청년창업농 모임이다. 청년창업농은 전체 회원이 140명 정도인데, 정회원 40명이 연 10만 원 회비를 내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편이다. 청년창업농 모임에서 교육은 물론 판로, 유통, 포장 등 다양한 농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
현재 승룡 씨는 땅 8만 평에 쌀 6만 평, 양파 2만 평 농사를 짓고 있다. 귀농하고 처음에는 1만 평에 벼농사를 지었는데, 2024년부터 땅을 매년 조금씩 임차해 8만 평으로 늘렸다. 연 임대료는 3.3㎡(평)당 1000원이니 8만 평 임대료는 연 8000만 원이다.
쌀농사를 규모화한 덕분에 수익은 제법 늘어났다고 승룡 씨는 말했다. 연 매출액은 쌀농사 3억 2000만 원, 양파 3억 5000만 원 정도다. 초기 비용으로 대출해 구입한 중고 농기계(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값을 빼면 총 매출액 50%는 순수익이다. 태추는 1000평 정도 지으면 연 4000만 원 정도 수익이 난다.
30대 직업 농부인데 힘들지 않을까. “정신이 힘든 것보다 몸이 힘든 건 괜찮고, 출퇴근이 자유롭고 내가 열심히 한 만큼 결과가 나오니까 보람 있습니다. 옛 직장 연봉이 현재 월급 수준이니까 수익이 나쁘지 않죠. 행복합니다.”
승룡 씨는 올여름 유난히 힘들었다. 노지 농사 성공 여부는 80%가 날씨에 달렸다. 그런데 올해 여름 폭염과 가뭄으로 걱정이 태산 같았다. 정부가 가뭄이 극심했던 진례면에 소방차를 보내 벼논에 물을 대주기도 했지만, 이후에 비가 안 왔더라면 올해 쌀 수확을 기대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올여름에 진짜 9년간 지었던 노지 농사 대신 딸기, 토마토, 블루베리 같은 시설 농사를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폭염과 가뭄 대비책이 필요합니다.”
김해시 청년창업농 10명 중 6~7명이 노지 농사를 지으며, 나머지 3~4명은 시설 농사를 짓고 있다. 시설 농사를 지으려면 평당 30만~40만 원 비용이 드는 반면 노지 농사는 평당 4000원 정도 든다. 또 노지 농사는 규모화할 수 있지만 시설 농사는 1000~2000평이 가장 큰 규모다.
그렇다 보니 부모 땅이 있는 청년들은 노지 농사를 짓는 편이다. 시설 농사에 쉽게 뛰어들었다가 비용 때문에 못 견디고 포기하는 청년도 50%다. 밖에서 보기에는 쉬워 보일 수도 있는 귀농이 현실과 다름을 방증한다.
권승룡 씨가 올해 폭염으로 햇볕데임 증상이 많이 나타나 피해를 본 단감(태추)을 보여주고 있다. /이수경 기자
농사를 지어 수확해도 판로가 튼튼하지 않아 유통이 안 되면 수익이 적게 마련이다. 승룡 씨는 쌀 1만 5000평 수확량(3만㎏)은 직거래하고, 6만 5000평 수확량은 미곡종합처리장(RPC)로 유통한다. 양파는 밭떼기(수확하기 전 밭에 자라는 상태 그대로 통째로 사고파는 거래)로 판매한다. 단감 태추는 모두 직거래한다. 태추는 올해 폭염으로 햇볕데임 증상이 많이 나타나 피해를 봤지만 피해 기준에 적용되지 않아 보상을 받지는 못하는 상태다.
승룡 씨는 직거래할 때 “니가 수확한 쌀 먹으니까 딴 거 못 먹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가장 보람이 있다. 나누는 것도 좋아해서 농사 초창기에는 집집마다 돌면서 수확한 쌀을 맛보라며 나눠주기도 했다.
승룡 씨는 현재 살고 있는 김해 장유에서 매일 진례면 논과 농장으로 출근해 일하다가 오후 9시에 퇴근한다. 1년 중 넉 달이 가장 농삿일이 힘든 시기다. 5~6월 벼를 심을 때, 벼를 수확한 후 양파밭을 만들 때인 11~12월은 오전 7시~새벽 2시에 계속 일해야 한다.
승룡 씨는 청년창업농에게 여러 가지 지원을 해주기는 하지만 정부 지원사업이 시설 농사 쪽에 치우쳐 있다고 했다. 또 농기계를 구입할 때 최대 3000만 원을 지원해주는데 지원금을 좀 더 높여주길 바랐다. 쌀농사를 짓다가 콩 재배를 할 수가 있으나, 김해는 창원과 달리 RPC에서 콩 수매를 해주지 않아 불합리하다고도 지적했다. 농어촌공사가 공공임대한 땅에서 콩 농사를 지을 수 있지만 판로가 없는 점도 아쉬워했다.
특히 승룡 씨는 “지주로부터 땅을 임차했을 때 지주가 계약서를 써주지 않는 게 관행이 돼버렸다”며 “그러다 보니 직불금이 나와도 지주가 받고, 피해보상금이 나와도 지주가 받는 구조”라고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래도 2020년 아내와 결혼해 여섯 살 아들을 둔 승룡 씨는 해맑다. “힘들지 않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도 농업의 미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이수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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