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노정태 칼럼] 환율보다 더 지켜야 하는 것은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유국'이라는 말로 농담처럼 우쭐대는 분위기도 있지만, 석유와 달리 반도체는 24시간씩 7일 근무를 해야 만들어지는 공업 생산품이다. 반도체를 팔아 석유를 사오려면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신...

[노정태 칼럼] 환율보다 더 지켜야 하는 것은

"달러 유동성이 양호한 만큼 환율 관련 대외 리스크는 크지 않다."

지난달 31일 신현송 신임 한국은행 총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단 첫 출근길에 기자들을 만나 한 말이다. 그날 원-달러 환율은 1519.9원으로 출발해 1530원에 근접하고 있었다. 환율 급등으로 인해 우리 경제가 겪게 될 위기에 대한 공포가 한창 고조되고 있었던 것이다.

신 후보자의 입장은 단호했다. 환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하나만을 놓고 우리 경제의 위기를 논하는 것은 옳지 않다. 오히려 그런 과도한 공포가 더 위험할 수 있다. "현재 환율 레벨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그는, "달러 유동성 상황이 양호한 만큼 환율과 금융불안을 직접 연결할 필요는 없다"며, 국민들이 불안해하며 동요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한국은행 총재는 '대한민국 경제 총사령관'이다. 말 한 마디에 시장이 흔들리고 주가가 요동치며 경제를 넘어 국민의 생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직책이다. 최대한 신중한 표현을 써야 할 수밖에 없다.

원론적으로 보면 신 후보자의 입장이 옳다. 환율은 경제 그 자체가 아니다. 한국 원화와 다른 나라의 돈, 특히 기축통화인 미국 달러가 교환되는 비율일 뿐이다. 요컨대 환율은 '지표'이자 '증상'이지 '원인'이 아니다. 그러니 환율을 유심히 보고 챙겨야 하는 것은 맞지만, 환율을 낮추겠다며 무리수를 두어서는 안 된다. "달러 유동성 지표가 양호해, 예전처럼 환율과 금융 불안정을 직결시킬 필요가 없다"는 신 후보자의 말은 그런 취지인 것이다.

환율 그 자체가 아니라면 무엇을 보아야 할까. 신 후보자는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이 우리 경제의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보았다. 우리는 석유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 중동에서 생산되는 석유에 경제의 모든 부분이 의존하고 있는 나라이므로, 그 또한 정확한 진단이다. 이 전쟁이 쉽게 끝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긴 고난의 시간을 겪지 않을 수 없다.

환율은 중요한 지표다. 하지만 환율에만 집착해서는 우리 경제의 현황을 온전히 파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표는 지표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일까. 중동 전쟁만 끝나면 모든 상황이 정상으로, 최선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을까.

안타깝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다. 현 정부는 우리 경제에 중동전쟁보다 더 크고 본질적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인가? '근로 의지', 더 나아가 '자본주의 정신'의 파괴가 바로 그 문제다. 2026년 현재, 대한민국은 '일해서 돈 버는 사람들의 나라'에서 점점 더 멀어져가고 있다. 이 문제는 다른 그 어떤 문제보다 훨씬 크고 심각하며 본질적이다.

국가데이터처(구 통계청)가 발표한 2025년 11월 고용동향을 펼쳐보자. 구직 활동도 일도 하지 않는 사람들, 이른바 '쉬었음' 인구가 254만3천명으로 전년 대비 12만4천명 늘었다. 특히 30대의 현황이 심각하다. 31만4천명이 그저 '쉬었음' 상태에 있다. 한창 일해야 할 젊은이들이 일하지도 않고 일자리를 찾지도 않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천편일률적이다. 고용 창출 효과가 큰 제조업과 건설업 경기를 되살리기 위한 적극적인 시도는 눈에 띄지 않는다. 대신 포퓰리즘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힘든 '돈 뿌리기'가 주된 카드로 계속 등장한다.

그 패턴은 중동전쟁으로 유가가 폭등하여 화물 배달 등 생계형 운전자들이 곤란한 처지에 놓인 지금도 마찬가지다. 핀셋 지원 대신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유류지원금을 제공하겠다는 추경안이 제시된 상태다. 이렇게 통화량을 무턱대고 늘리면 환율은 더 오를 수밖에 없고, 환율이 오르면 한국 돈의 가치는 가만히 있어도 낮아진다. 원유는 결국 달러로 사와야 하니 기름값은 더욱 비싸질 수밖에 없다. 언 발에 오줌 누는 꼴이요, 목 마른데 소금물을 들이키는 격이다.

물론 우리 경제가 튼튼하다면 환율에 대해 어느 정도 대범한 입장을 취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원칙을 적용하자면, 우리는 경제의 내실에 더 큰 관심을 기울여야지, 주가지수 같은 숫자에 집착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경제 운영은 정 반대다. 본인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야당 시절에는 환율 때문에 나라 망한다고 비판하던 그가, 막상 대통령이 되고 나자 환율을 못 본 척 한다. 대신 주가지수라는 언제 오르고 내려도 이상하지 않은 숫자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이는 여당인 민주당 또한 마찬가지다. 코스피가 명백한 버블의 징후를 보이며 솟아오를 때, 그것을 적절히 제어하기는 커녕,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업적이라고 홍보하기 바빴다.

이런 나라에서 누가 열심히 일을 하려고 할까? 문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 대한민국은,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자연 조건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산유국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반도체 산유국'이라는 말로 농담처럼 우쭐대는 분위기도 있지만, 석유와 달리 반도체는 24시간씩 7일 근무를 해야 만들어지는 공업 생산품이다. 반도체를 팔아 석유를 사오려면 우리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신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면서도 다소 실망하게 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지난달 31일, 마침 정부도 '전쟁 추경안'을 제시했다.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는 "중동 상황으로 인한 취약부문 어려움이 계속 가중되고 있어 정책적 완화가 필요하다"며 "지금까지 발표된 바를 놓고 볼 때 물가 압력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아직 취임하지 않았으니 정부와 청와대의 눈치를 보는 것이라고 믿고 싶게 하는 발언이 아닐 수 없다.

환율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는 없다. 환율을 지키기 위해 경제의 토대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 모두 맞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반드시, 대한민국을 오늘의 경제 강국으로 만든 핵심적인 자원을 지켜야 한다. 국민의 근로 의지와 건전한 경쟁심,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픈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의지가 있다면 잿더미 속에서도 살아날 수 있다. 환율은 포기해도 근로의지만은 지켜내야 한다.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