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심당 본점 내부. 사진=성심당 홈페이지.
‘노잼도시’는 대전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2017년 ‘어쩌면 좋아!! 지인이 노잼의 도시 대전에 온다!’는 제목의 이미지가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하면서 붙기 시작한 이 수식어는 대전을 ‘재미 없는 도시’로 규정한 표현이다. 이후 여러 방송 프로그램이 ‘노잼도시’ 대전을 다룬 콘텐츠를 만들었고, 언론보도와 유튜브 채널은 물론 지자체까지 이 표현을 활용하면서 ‘대전은 노잼도시’라는 이미지는 빠르게 굳어졌다.
그러나 언론보도 속 ‘노잼도시’라는 말은 구체적 설명 없이 관습적으로 사용돼온 측면이 있다. 동시에 ‘노잼’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며 대전을 변화가 필요한 도시로 그려왔다. 즉 ‘노잼’이라는 표현은 실체 없이 되풀이되면서도, 역설적으로 새로운 지역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계기로 작동한 셈이다.
▲ 2017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그림(왼쪽), 2019년 대전시에서 만든 포스터 갈무리.
지난 6월 한국언론정보학보 통권 제137호 실린 논문 ‘노잼도시 담론이 촉발한 지역성 형성의 다원화에 관한 탐색적 연구: 대전 성심당 사례를 중심으로’(양선희 대전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전공 부교수)는 언론이 ‘노잼도시’라는 표현을 사용해온 방식과 그 과정에서 대전의 지역성이 어떻게 구현돼왔는지에 주목했다. 연구진은 지역성을 고정된 속성이 아닌 계속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보고 전국적 인지도를 가진 대전의 로컬기업 성심당이 대전의 지역성을 재구성하는 핵심 매개로 작동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관습적 수식어로 사용돼온 ‘노잼도시 대전’
연구진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뉴스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를 통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노잼도시’와 ‘대전’을 키워드로 보도된 중앙일간지 기사 111건, 지역일간지 기사 246건 등 총 357건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노잼도시 대전’ 관련 보도의 다수는 대전 지역일간지(235건)에서 나왔다. 지역 스스로 ‘노잼도시 대전’을 적극 의제화했다는 뜻으로, 외부의 일방적 규정이 아니라 지역 내부에서 반복적으로 재생산해왔음을 보여준다. 다만 이는 대전 지역일간지가 그만큼 해당 이슈에 대한 문제의식과 관심을 갖고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기사 유형은 스트레이트 기사가 전체의 59.7%로 가장 높았다. 이에 대해 연구진은 “‘노잼’이라는 표현이 해석이나 평가의 대상이라기보다 설명 없이 객관적 사실 전달 형태의 보도를 통해 반복적으로 사용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다만 지역일간지는 스트레이트 기사의 비중이 중앙일간지보다 낮았고, 칼럼·기고와 기획기사의 비중은 높았다. ‘노잼도시 대전’ 담론을 지역 내부의 쟁점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기사의 메시지는 정보 전달 유형이 65%으로 가장 높았는데, 지역일간지의 경우 관찰과 소개에만 집중한 중앙일간지의 보도에서 나아가 현상을 해석하고 대응 방향을 제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프레임 분석에서는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는 프레임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연구진은 “‘노잼’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고 정책, 행사, 콘텐츠 전략 등 다양한 시도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노잼은 지속적으로 관리, 개선돼야 할 문제이며, 지역은 다양한 시도를 통해 변화 중인 공간으로 제시됐다”고 했다.
▲ 유튜브 채널 14F 2020년 '노잼 도시 대전에서 유잼 쥐어짜기' 영상 썸네일 갈무리.
다수 기사에서 ‘노잼’은 문제를 진단하거나 대안을 찾기보다는 관습적인 수식어로서 반복 사용됐다. 연구진은 “이러한 보도 양상은 대전을 설명하고 해석하는 지역 담론의 축적을 어렵게 하고 지역성을 추상적 이미지로 만드는 배경으로 작용한다”며 “과제·해결방안 제시 보도 역시 ‘노잼’에서 벗어나 ‘꿀잼’, ‘유잼’, ‘빅잼’, ‘심쿵’ 도시로 변화하고 있거나 변화할 것이라는 메시지가 지배적이었다”고 짚었다.
대전을 침체된 공간으로 고정하기보다는 전환의 공간으로 그리고자 한 보도 경향을 보면, ‘노잼도시’라는 표현이 결국 변화를 이끄는 장치로서 기능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연구진은 “노잼도시는 비판과 성찰의 대상이라기보다 정책적 개입과 기획을 통화 관리되고 극복돼야 할 대상으로 구성됐다”며 “노잼도시가 대전을 설명하는 개념이라기보다 변화 담론을 작동시키기 위한 언어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성심당이 만들어낸 새로운 지역성
연구진은 이 과정에서 대전의 로컬기업 성심당이 지역성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방식에 주목했다. 성심당은 공공 정책의 산물이 아니라 지역에 기반한 민간 기업으로서, 일상적 소비와 경험을 통해 대전의 지역성을 만들어왔다. 언론보도에서도 성심당은 단순한 상업 공간을 넘어 도시를 대표하는 공간이자 경험의 중심으로 다뤄왔고, 대전은 ‘성심당의 도시’로 표현됐다.
▲ 성심당 본점 외부. 사진=성심당 홈페이지.
연구진은 “성심당은 대전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추상적 수식어가 아니라 대전을 방문하고 체험할 이유를 제공하는 구체적 장소이자 경험의 매개로 기능한다”며 “이는 노잼도시 담론이 추상적이고 공허한 언어로 반복되는 양상과 대비되며, 로컬기업 즉 민간 행위자가 감각적 경험과 실천을 통해 지역성을 실질적으로 구성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성심당을 통해 대전이 정책적으로 관리돼야 할 대상에서 일상적 매력과 감정적 유대를 만든 장소로 자리매김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년간 대전에서 내비게이션으로 가장 많이 검색된 장소는 대전시 중구에 위치한 성심당 본관이었다. 대전관광공사의 2023년 대전관광객 실태조사를 보면 대전 여행 중 방문했거나 방문 예정인 장소로 응답자의 약 60%가 성심당을 꼽았다. 성심당은 ‘대전에서만 만날 수 있다’는 원칙 아래 대전 이외의 지역에 매장을 두지 않고 있어 골목 상권을 살린 대표적 기업으로도 평가받는다.
연구진은 “빵을 매개로 형성된 감각적·정서적 경험은 지역민들에게는 자부심을, 외부 방문객들에게는 새로운 도시 이미지를 형성한다. 로컬기업 성심당이 만드는 지역성은 일상과 경험, 감정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도시를 설명하기보다는 경험하도록 하고 있다”며 “성심당 사례는 로컬기업이 담론적 공백을 메우는 핵심 행위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성심당은 공공기관의 정책과도 결합하면서 ‘노잼도시’ 극복의 상징이자 다양한 정책적 시도에 활용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역 공공기관과 성심당을 포함한 민간 기업의 협업으로 기획된 ‘대전 빵 축제’다. 성심당은 2024년에는 한국조폐공사와 광복 80주념 기념 ‘광복빵’을 출시했고, 대전선거관리위원회와 총선 캠페인으로 ‘선거빵’을 선보였다. 연구진은 “민간 영역의 로컬기업이 단순한 경제 주체를 넘어 지역성 형성의 주체로 기능하고 있다”며 “전통적으로 ‘과학도시’라는 제도적 상징을 중심으로 구성돼 온 대전의 도시 정체성이 최근에는 성심당이라는 경험적·감각적 브랜드를 통해 재구성되고 있다”고 짚었다.
▲ 사진=성심당 홈페이지.
성심당 이외의 다양한 주체와 공간을 통해 지역성을 확장하고자 하는 보도도 있다. 대전이 ‘기-승-전-성심당’ 혹은 ‘성심광역시’로 환원될 수 있는지 문제를 제기하며, 성심당 외의 자원과 경험으로 새로운 대전을 소개하려는 시도다. 연구진은 “그러나 성심당 중심 서사를 벗어나 지역성 형성의 다원화를 탐색하는 비성심당형의 출발점마저도 성심당이라는 점은 역설적”이라며 “지역성의 확장을 지향하는 담론 역시 성심당의 상징적 영향력에 대한 인식과 성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이는 로컬 브랜드가 지역성을 응집하는 동시에 다원적 지역성 형성을 촉발하는 핵심 역할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했다.
논문은 지역성이 하나의 상징으로 고정되기보다, 주변과 상호작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될 수 있음을 대전과 성심당의 사례로 보여줬다. 연구진은 “로컬 브랜드는 지역성을 대표하는 상징에 머물지 않고 다원적 지역성 형성을 촉발하는 중심적 매개로 기능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며 “향후 지역 브랜딩 전략이 공공 중심의 단선적 접근을 넘어 민간 상징 자원과의 관계 설정과 확산 구조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연구진은 성심당을 중심으로 한 ‘빵의 도시’ 이미지가 대전의 다른 역사적·사회적 정체성을 가리거나 특정 계층만을 대변하는 정체성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연구진은 “장소 브랜딩을 바탕으로 한 성공적 지역성 형성은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해 다원적·포용적 관점에서 공유된 서사를 만드는 ‘참여형 거버넌스’를 전제로 할 때 지속가능하고 대전다운 지역성 형성이 가능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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