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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란봉투법 시대, IT 본사·자회사 관계 '재정립' 기로…현장은 혼선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 공룡부터 넥슨, 넷마블 등 대형 게임사들은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100여 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운영한다. 주로 서비스 운영이나 품질보증, 고객센터 등 핵심 개발 외의 업무를 별도...

노란봉투법 시대, IT 본사·자회사 관계 '재정립' 기로…현장은 혼선

업계, '비용 절감' 대신 '책임 경영' 시험대

중소 스타트업은 인력 대신 'AI 자동화' 도입

정부, '집중점검기간' 현장 혼란 모니터링

노란봉투법 시행 첫날인 지난 10일 민주노총 투쟁 선포대회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참석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포인트데일리 이길주 기자]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지난 10일 전격 시행됐다. 핵심은 하청 직원이라도 원청 기업이 업무를 실질적으로 지휘한다면 그 원청이 직접 노조와 협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제조업의 숙제였던 이 법은 이제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린 판교와 구로의 IT 업계로 옮겨붙어 거센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 노동자 단체교섭권·쟁의행위 범위 확대

노란봉투법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과 쟁의행위 범위를 확대하고 파업으로 인한 기업의 손해배상 청구를 제한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의 명칭은 지난 2014년 쌍용차 사태 당시 파업 노동자들에게 부과된 47억원의 손해배상금을 돕기 위해 시민들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담아 전달한 것에서 유래했다.

가장 큰 변화는 사용자 개념의 확대다. 기존에는 직접 계약을 맺은 당사자만 사용자로 인정했으나, 이제는 근로조건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원청 기업도 사용자로 본다. 이로 인해 하청 노동자가 원청 기업을 상대로 직접 처우 개선을 요구할 수 있게 됐다.

◇자회사 갈등이 곧 본사 갈등으로

국내 주요 IT 대기업들은 흔히 '문어발식'이라 불리는 복잡한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네이버와 카카오 같은 플랫폼 공룡부터 넥슨, 넷마블 등 대형 게임사들은 적게는 수십 개에서 많게는 100여 개에 달하는 자회사를 운영한다.

주로 서비스 운영이나 품질보증, 고객센터 등 핵심 개발 외의 업무를 별도 법인으로 떼어내 관리해 왔다. 이전까지 본사는 자회사에서 노사 갈등이 터져도 경영권이 독립된 별개 회사의 일이라며 선을 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법 시행 직후 상황이 변했다. 지난 12일 카카오 노조가 자회사인 디케이테크인의 고용 불안 문제를 해결하라며 본사인 카카오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 대표적이다. 노조는 자회사의 인력 운용과 예산을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곳이 본사인 만큼, 카카오가 직접 협상 테이블에 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제 IT 대기업들은 자회사의 경영 사안이 곧 본사의 법적 의무로 이어지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속도가 생명인 IT 업계 시름

IT 업계가 가장 밤잠을 설치는 이유는 의사결정 속도의 저하다. IT 산업의 생존 전략은 시장 상황에 맞춰 서비스를 빠르게 내놓고, 성과가 없으면 과감히 정리하는 '린(Lean) 경영'에 있다. 이번 법 시행으로 적자 서비스를 종료하거나 그 과정에서 인력을 재배치하는 모든 결정이 노조와의 교섭 대상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최근 NHN에듀의 알림장 서비스 종료 사례는 이러한 우려를 현실로 보여준다. 노조는 서비스 종료를 '사실상의 구조조정'으로 규정하고 모회사의 고용 승계 책임을 묻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상의 판단을 내릴 때마다 노조와 협의해야 하고, 자칫 법적 분쟁으로 번져 서비스 혁신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 중이다.

◇라이더와 프리랜서도 사장과 대화

이번 변화는 정규직 직원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자로 불리는 배달 라이더와 프리랜서 개발자들의 지위도 요동치고 있다. 그동안 이들은 기업과 계약을 맺은 '개인 사업자'로 취급받아 노조법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다.

하지만 앞으로는 플랫폼 운영사가 배차 알고리즘이나 수수료율을 통해 이들의 업무 조건을 실질적으로 결정한다고 판단되면 이들 역시 당당한 교섭의 주체가 된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이러한 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두 가지 길 중 하나를 택할 것으로 본다. 자금력이 있는 대기업은 아예 외주를 줄이고 핵심 인력을 직접 고용해 통제권을 강화하는 방식을 택할 수 있다. 반면, 노무 관리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 스타트업이나 영세 업체들은 인력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AI와 자동화 도입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소외된 노동자 보듬는 안전망 될까

노란봉투법은 IT 업계에 '책임 경영'이라는 숙제를 던졌다. 하청이나 자회사를 그저 비용을 아끼는 수단으로만 보던 관행은 이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기업들은 이제 자신의 지배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 전수 조사를 하고 통합적인 인사 관리 체계를 다시 짜야 한다.

정부는 법 시행 초기 3개월을 '집중점검기간'으로 정하고 현장의 혼란을 살피고 있다. 노란봉투법이 혁신을 가로막는 '규제의 덫'이 될지 아니면 소외된 노동자를 보듬는 사회적 안전망이 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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