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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노동시장 초유연화와 기본직업안전보건 [세상읽기]

현대 스트레스 이론의 틀을 마련한 셀리에는 193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서 추위, 외상, 과도한 운동, 여러 약물 등 서로 성격이 다른 자극이 인체에서 공통된 비특이적 생체 반응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이한주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이 지난달 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일의미래: AI와 공존하는 새로운 노동시장 정책포럼’에서 ‘AI와 기본사회, 그리고 노동의 미래’를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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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아 | 한양대 교수(직업환경의학)

현대 스트레스 이론의 틀을 마련한 셀리에는 1936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서 추위, 외상, 과도한 운동, 여러 약물 등 서로 성격이 다른 자극이 인체에서 공통된 비특이적 생체 반응을 일으킨다고 밝혔다. 이는 이후 외부의 요구에 대한 신체의 비특이적 반응과 시간에 따른 적응 과정을 설명하는 ‘일반적응증후군’으로 발전하였고, 셀리에는 이를 스트레스라는 개념으로 체계화했다. 이후 셀리에는 스트레스는 적응의 과정이기 때문에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고 적절한 스트레스가 주어지고 적응이 이루어진다면 유스트레스(eustress)로 볼 수 있고, 과도하거나 장기간의 스트레스가 주어지는 상황에서 적응에 실패하면 디스트레스(distress)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셀리에의 생리적 스트레스 이론은 심리적 스트레스 이론으로까지 발전하게 된다.

스트레스를 적응의 문제로 본다면, 피하기 어려운 다양한 외부 자극에 성공적으로 적응할 수 있느냐는 신체적·심리적 영향의 방향과 크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외부의 자극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스트레스 요인의 강도, 지속 기간, 예측 가능성과 같은 특성이 중요하다. 한편, 이러한 자극에 대한 통제 가능성이나 개인적·사회적 자원이 함께 작용하여 적응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이를 성공적으로 통제해 가면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그 과정에서 심리적·신체적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면 적응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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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노동시장은 액화되어 녹아내린다고 할 정도의 초유연화(hyperflexibility)를 그 특성으로 한다. 하나의 직업을 가지고 사업장에 고용되어 하나의 일을 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다. 이제 사람들은 나를 고용한 사업주가 누군지도 모르고, 동시에 직업을 여러개 가지기도 하며, 다양한 장소에서 일한다. 앞으로 내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계속 이렇게 사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이런 상황에서 내다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계획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다.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지금, 현재 나의 필요뿐이다. 지금 먹을 수 있는 것을 먹고, 소비할 수 있는 것을 소비한다.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고 아무것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람들은 적응의 과정을 포기하고 그냥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살아간다. 20·30대 쉬었음 청년이 70만명에 달하고, 사람이 부족한 사업장은 이주노동자들이 공백을 메꾸고 있다.

이제 불안정 노동은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의 고용 형태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노동의 불안정성은 일자리 자체의 지속성과 안정성 이외에도, 소득의 안정성, 사회적 안전망, 사회적 구성원으로서의 발언권과 대표성을 모두 포괄하는 다차원적 개념이다. 정규직이라고 불안하지 않은 건 아니다. 초유연화된 노동시장에서 적응하기를 멈추고 물 위에 떠 있는 나뭇잎처럼 흔들리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과 통제 가능성이며, 적응 과정에 쓸 수 있는 개인적·사회적 자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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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노동자들의 적응을 도와주기 위해서는, 어느 순간 흘러넘쳐 버리거나 가라앉아 버릴 수 있는 노동자들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기본 정책도 필요하다. 건강은 적응을 위한 기초 자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기본직업안전보건 서비스’ 구축을 고민해야 한다. 예측하지 못한 곳에서 죽고, 다치는 이주노동자와 비공식 노동자, 불안정 노동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위험의 외주화와 이주화가 보편화된 상황에 과거의 노동시장을 전제로 한 안전보건 서비스는 노동시장 초유연화의 시대에 적응하기 어렵다. 문제가 터지는 곳을 따라다니며 재발 방지만을 외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부의 지원 사업이나 시범 사업을 넘어서 현재의 노동시장을 전제로 한 최소한의 수준을 정의하고 이를 위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건강검진이나 위험성 평가, 일차 의료와 응급처치, 교육과 같은 단편적 사업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포괄할 수 있는 다양한 예방사업의 구성과 재편, 원인의 파악과 예방의 실행, 근거 마련과 자료의 정리, 평가와 계획, 치료와 재활의 체계를 재설계해야 한다. 또한 이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고 기획, 평가할 수 있는 전달체계도 함께 구축해야 한다. 노동시장 불안정성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자원을 제공하기 위한 기본사회는 ‘기본직업안전보건’ 없이는 완성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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