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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 개혁, 왜 항상 실패하는가 [왜냐면]

최근에는 국회가 주도했던 ‘인공지능 시대 산업구조 대전환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합의문까지 마련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추진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식...

노동시장 개혁, 왜 항상 실패하는가 [왜냐면]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청와대 본관에서 열린 경제사회노동위원회 1기 출범 기념 ‘대통령과 함께하는 노동정책 토론회’에서 전문가 발제를 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이철승 |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노동시장 유연화는 2000년대 이후 대부분의 진보와 보수 정부가 추진했던 과제다. 이재명 정부 또한 ‘노동 존중’이라는 프레임과 함께 이 과제를 전면에 내걸었다. 지난 정부 대부분이 추진했던 과제가 또다시 의제로 올라왔다는 것은, 지난 정부 대부분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국회가 주도했던 ‘인공지능 시대 산업구조 대전환을 위한 노사정 대화’가 합의문까지 마련했지만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추진했음에도 성공하지 못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먼저 일본식 승진 사다리와 기업 복지, 연공제로 특화된 내부 노동시장 모델, 즉 정규직 중심 장기 고용을 기반으로 기업 특유의 숙련 형성을 해 온 한국의 대기업들에게 유연화는 불경기와 구조 조정기를 제외하고는 굳이 필요한 과업이 아니었다. 또한, 과거 보수 정부들은 고용, 노동시간, 임금 제도 개편을 모두 정책 목표로 걸었으나,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혔다. 노조는 고용 유연화에는 ‘해고는 죽음이다’로, 노동시간 유연화에는 ‘52시간제’로, 임금 제도 유연화에는 ‘연공급제 사수’로 맞섰다. 세가지 유연화 모두 노조의 저항에 막혀 별다른 진전이 없는 실정이다.

왜 노동시장 유연화를 포함한 빅딜은 이루어지지 않을까. 해고 자유화는 주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를 대상으로 요구하지만, 이들에게 제시되는 대가는 불확실하다. 재교육이나 전직 지원과 같은 보완책이 제시되지만, 한국 노동시장에서는 그것이 안정적인 재취업으로 이어진다는 신뢰가 부족하다. 대기업 정규직 입장에서 현직 사수 외에는 모두 열등한 교환일 뿐이다. 노조 입장에서는 유연화 합의 거부와 현 상황 고수가 합리적 선택일 수 있는 것이다.

반대로 중소기업 노동시장에서는 해고가 사실상 관행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고용 안정성과 사회적 보호가 필요한 상황이지만, 낮은 조직률과 협상력으로 인해 이를 교환 조건으로 제시할 주체가 부재하다. 그 결과, 한쪽에서는 거래가 거부되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래 자체가 형성되지 않는다.

한국에서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 반복적으로 실패하는 이유는 결국 단순한 이해관계 충돌이 아니라, 교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구조에 있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는 확실한 손실에 비해 보상이 불확실한 빅딜을 거부할 수밖에 없고, 중소기업 노동자는 내줄 것은 없고 받을 것만 있는데 이조차 개혁을 요구할 조직적 기반 자체가 없다. 결국 유연화는 정책 의제로는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집단과도 거래될 수 없는 상태로 남는다.

문제는 인공지능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산업 대전환이 코앞에 닥쳤건만 분절된 노동시장에서 교환이 성립하지 않는 유연화 의제를 두고 시간을 허비할 일이 아니다.

빅딜이 가능하지 않다면, 대기업 정규직에 대한 유연화 노력은 포기하는 것이 낫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이 집단의 참여를 전제로 한 개혁은 현실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 대신, 그 시간과 노력으로 다음 세 그룹의 취업, 재취업, 창업 지원을 위한 시스템을 만들자. 대기업에서 명예퇴직당하는 40대 후반과 50대의 조직화되지 않은, 이름만 정규직인 화이트칼라들, 언제 계약이 중단될지 모르는 비정규직과 파견직, 특수고용직, 하청 및 중소기업 노동자들, 경력직만 뽑는 노동시장에서 아직 경력이 없는 20대와 30대 초반 청년들이 그들이다.

이들을 위해 고용보험을 일정 조건하에서 해고를 입증하지 않더라도 취업 준비자와 명퇴자가 재교육을 위해 쓸 수 있도록 유연한 기준을 마련하자. 다음으로 숙련을 데이터베이스화해 매칭 시스템을 구축하자. 개인의 숙련 이력과 재교육 과정을 반영하고, 기업은 필요한 숙련을 기준으로 인력을 찾고 개인은 재교육을 통해 숙련을 업데이트하며 이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떤 직업과 직종도 인공지능의 도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어떤 노동자도 숙련의 급격한 도태를 피하기 어렵다. 인공지능에 의해 구동되는 거대한 ‘1인 자영업자 네트워크 경제’가 출현하는 이 대전환기에, 모든 숙련 보유자를 잠재적 창업 예비군으로 전환하고 이를 사회보험과 결합하여 새로운 혁신 경제의 마중물로 삼는 방안을 사회적 연대를 통해 모색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노동시장은 그들 스스로의 선택으로 남겨두자. 우리는 더 이상 그들의 선택이나 참여를 기다릴 여유가 없다. 인공지능 시대의 한국 사회는 대기업 중심 구조에 의존하지 않고도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국가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역할을 수행하도록 존재한다. 신속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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