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혁
도시사회학 연구자
무섭게 발전하는 AI 기술
시대에도, 복제될 수 없는
인간다움의 가치는 계속될 것
저 멀리서 누군가 달려오더니 옆구르기를 하고, 이어 고난도의 백텀블링을 한 뒤 정확하게 착지한다. 유연성과 평형감각, 예술성까지 무엇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동작이다. 기계체조냐고? 맞긴 맞다. 말 그대로 진짜 ‘기계(機械)’가 하는 체조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그룹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가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의 구동 영상을 공개했다. 그동안 휴머노이드 로봇은 인간의 신체 구조를 제대로 모방하지 못해 어딘가 어색하고 불안한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아틀라스는 오히려 사람보다 더 민첩하고 안정적인 동작을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영화 속에서만 상상하던 인간형 로봇이 현실로 다가온 장면이었다.
무쇠 팔다리에 AI 두뇌를 탑재한 아틀라스처럼 현실 세계에서 직접 행동할 수 있는 AI를 ‘피지컬 AI’라고 부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 직장인 27%가 AI에 의해 일자리를 뺏길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더 나아가 이제 튼튼한 몸까지 갖게 된 AI는 단순히 인간을 돕는 도구를 넘어 인간의 활동 자체를 대체하는 단계로 향하고 있다. 실제로 아틀라스는 산업 현장에서 학습을 거쳐 점차 더 복잡한 공정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업무지구나 공장에서 인간보다 로봇이 더 많이 보이는 날이 올 것 같다.
이런 흐름 속에서 우리 인간이 하는 일은 점점 비효율적인 것처럼 느껴진다. 육체의 한계로 인해 지칠 수밖에 없고, 때로는 실수하며, 그날의 감정에 휘둘리는 게 우리 인간이다. 반면에 로봇은 지치지도 않고, 정확하게 움직이며, 무엇보다 연중무휴 가혹하게 일을 시켜도 고용노동부에서 뭐라고 하지 않으니 참 효율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연봉 3000만원의 신입사원을 뽑는 것보다 3000만원짜리 로봇을 도입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사회가 우리 앞에 와 있다.
긍정적으로 보면 기본소득 같은 사회 제도가 뒷받침될 때 우리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나 더 나은 삶의 질을 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뭔가 인간의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의 표현을 빌리자면, 인간의 활동에 깃들어 있는 ‘아우라’가 점점 빛을 잃어가는 느낌이다. 벤야민은 아우라를 ‘공간과 시간의 독특한 짜임으로 인해 가까이 있어도 멀게 느껴지는 일회적인 현상’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지금 여기’에만 존재하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에서는 장인의 손으로 만든 작품에 배인 아우라를 느끼기 어렵다. 이런 맥락에서 로봇이 우리가 하던 일들을 대신해 반복할수록 그 안에 깃든 아우라는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때에도 대체될 수 없는 것은 분명히 있다. 할머니의 손맛처럼 말이다.
가까운 미래에는 AI로 우리의 미각세포를 정밀하게 분석해 완벽한 요리를 해줄 ‘셰프 로봇’이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식탁을 차리며 축적된 할머니의 손맛을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떤 재료든 ‘적당히’로 퉁쳐지고,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 미묘하게 달라지는 맛 속에는 할머니 인생만큼의 아우라가 담겨 있다. 이렇듯 첨단기술의 시대에도 끝까지 그 빛을 잃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한 전문지식이나 정교한 동작이 아니라 할머니 손맛 같은 불완전한 ‘인간다움’일지도 모른다.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첨단기술은 앞으로도 효율성과 완벽함을 추구하며 우리의 세상을 빠르게 변화시킬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일수록 복제될 수 없는 인간다움의 가치는 더 또렷해지지 않을까? 엄마 손을 꼭 잡고 길을 걷는 아이를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기술이 우리의 많은 것을 대신할 미래에도 저 아이에게 딱 ‘적당한’ 엄마의 온기만큼은 결코 대체될 수 없겠지? 아직 남아 있는 이 세상의 아우라를 눈에 가득 담아야겠다.
김신혁
도시사회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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