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약사생활]
(4) 진정한 대학 생활의 시작
인천in이 약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필자는 30년 넘게 약사로 일하고 있는 유영필 씨다. 약사가 되려면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약과 관련한 흥미롭고 유용한 정보, 약이 우리 몸에서 작용하는 원리, 약을 둘러싼 유통과 사회 제도, 이익만 추구하려는 과거 일부 대형 약국의 숨겨진 상술이나 약사가 아닌 무자격자의 문제, 의약분업과 한의학과 약학의 관계 등 약과 관련한 모든 내용을 다루어 본다.
대학교 2학년 때에는 1학년과는 달리 교양과목은 얼마 없고 전공과목인 유기화학, 무기화학, 생약학, 해부학 등을 공부했는데, 이상하게도 생약학은 재미는 있었는데 성적은 유기화학이 제일 좋았다. 결국은 생약학으로 석사 과정을 밟은 것을 보면 사람은 자기가 재미있어하는 것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유기화학은 생명체의 주요성분이며 탄소 중심의 분자로 이루어진 탄수화물, 단백질, 지질 등을 포함하는 유기물(organic compounds)을 공부하는 것이고 무기화학은 지각과 환경에서 자연적으로 존재하며 생명체의 생리 작용을 돕지만 직접 구성하지 않는 무기물(inorganic compounds) 즉 물, 산소, 염화나트륨, 금속 및 광물 등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의약품 성분이 유기든 무기든 화학제품이기에 약대에서는 중요한 과목이었고 약국에 있으면서도 약 성분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버드나무에서 유래된 살리실산(salicylic acid)은 유기화합물인데 효능에 국소 진통, 각질 용해, 여드름 치료 효과가 있어서 맨소래담, 파스, 티눈 제거제, 여드름 치료제인 애크린 겔 등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살리실산을 내복할 때는 독성이 있어 오심, 구토, 청력손실, 이명, 설사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그래서 아세틸기를 붙여 독성을 감소시켜서 해열 진통제로 쓰이고 있는 아스피린이 있다.
해부학은 다른 것은 기억에는 없고 뼈 이름을 외워야만 했었다. 마치 생약학 공부를 위해 학명을 외워야 했듯이 인체의 장기나 조직을 영어로 외워야만 했었다. 인체의 골격을 이루는 206개의 뼈를 낯선 영어 단어로 외우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예를 들어 등뼈로 알고 있는 척추는 Vertebra, 어깨뼈로 알려진 견갑골은 Scapula, 넓적다리뼈로 알려진 대퇴골은 Femur 등 너무도 외우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4학년 때 약물학뿐만 아니라 다수의 과목을 배울 때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1학년 때와 달라진 것이 있었는데 선배들의 시험 정보가 필수였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는 모르나, 나는 선배들의 정보가 없었으면 아마도 권총(F학점)을 찼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2학년 때 필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린 어느 날 소양댐으로 동기하고 놀러 갔었는데 그곳에서 향어를 처음 먹어보게 되었다. 그 후로 쫄깃한 회와 매운탕에 푹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수협에서 운영하는 듯한 향어 횟집이 있었는데 그곳에 필자는 동기는 물론이고 하숙집 사람들과 수시로 찾아갔었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83학번 선배님들과 향어 횟집으로 갔었는데 우리는 회를 주문하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중 음식이 나왔다. 다들 장 그릇에 와사비와 간장을 넣어 장을 만들고 있었는데 선배님 중 재인이 형이 아무 말 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어 무슨 일인가 하고 궁금해하고 있는데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다들 열심히 장을 만드느라 정신을 판 사이 재인이 형이 와사비가 파란색으로 동그랗게 마치 경단 떡처럼 생겨서 회를 먹기 전에 먹는 떡으로 생각하고 한입에 넣을 줄 누가 알았겠냐 구요~~! 아니 그것을 왜 드시냐고요~~! 우리는 엄청나게 웃어댔다.
회를 처음 드셨던 재인이 형은 회를 먹기 전에 떡이 보여서 아무 생각 없이 드셨다고 하셨다. 실제로 고향이 춘천이신 재인이 형은 회는 처음 먹는 거라고 하시며 눈물을 닦던 모습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또렷이 남아있다.
유재인 형은 지금 시흥에서 약국을 하셔서 약 5년 전부터 두 달에 한 번씩 총 6명이 선후배 모임을 하고 있다. 선배님도 그때의 상황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셨다. 아마도 그때의 기억은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약초 채집을 위해 설악산, 오대산 등 말로만 듣던 산을 다니는 모습이 너무도 좋아 보였다. 그래서 생약 반에 들어갔고 나중에는 생약을 전공해서 석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실제로 단순히 등산을 목적으로 다니는 것이 아니라 약초 채집이었기에 산 정상이 목적은 아니었다. 그래도 많은 산을 다닐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산에서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부담이 되었으나 몇 번 다니다 보니 요령이 생기면서 생소한 약초들의 이름들이 눈과 귀에 익어가면서 조금씩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갈증에 좋다고 알려진 칡부터 기관지에 좋다는 마가목 그리고 간에 좋은 헛개나무, 참 두릅보다 진한 향이 특징인 개 두릅의 엄나무 순 등 많은 약초의 모습이 신기했었다. 그러다가 2박 3일의 생약 반 선배님들과 약초 채집 갔을 때는 밤에 많은 대화도 하면서 고스톱도 치며 놀던 추억이 그립다. 다른 반은 어땠는지는 모르나 생약 반 선배님들은 정말 의리 하나로 똘똘 뭉친 분들이었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시는 느낌이었다. 선배님들에게서 받은 정을 필자도 후배들에게 나눠주려고 했으나 받은 것만큼은 주지 못한 듯해서 마음은 편치 않다.
소양댐 선착장
가을에는 같이 방을 쓰고 있는 친구 형길이와 뜬금없이 여행을 떠났다. 필자인 내가 마음도 심란하기도 하고 나름 산과 캠핑에서 자신감이 생겼기에 배낭과 텐트를 짊어지고 석유 버너, 쌀, 꽁치 통조림, 밑반찬 등을 챙겨서 소양댐으로 향하였다. 버스를 타고 양구로 갈 수 있었으나 소양호 위를 배로 달려 보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어떨지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버스로 가면 춘천에서 2시간 걸렸고 배로 가면 1시간이 채 안 걸렸었다. 이때 배를 타고 양구로 갔던 게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때 이후로 단 한 번도 배 타고 양구나 인제를 가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양구 선착장에 내려 버스를 타고 후곡약수터로 향하였다. 철분, 불소 등 무기물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면서 탄산이 있어 짜릿한 느낌을 주는 약수터는 강원도 양양에 있는 오색약수터와 같은 곳이었다. 우리는 물을 맛본 후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걸 왜 먹지? 하는 표정을 지은 후 계곡에 텐트를 치고 가지고 간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밤을 지새웠다.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텐트에 의지해서 하룻밤을 보낸 추억은 나에게는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쏟아지는 별빛, 고요하다 못해 섬뜩함과 적막함을 느끼는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나의 머리에는 사진처럼 선명히 남아있다.
아침 일찍 눈을 떠보니 햇살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밤새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리는 느낌이었다. 몸이 풀린 우리는 주변을 돌아보는데 뿌리의 모습이 까마귀 머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 오두(烏頭)를 가지고 있는 세잎돌쩌귀를 보게 되었다. 사실 세잎돌쩌귀인지 그늘 돌쩌귀인지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채집 다니면서 교수님께 들은 바로는 우리가 흔히 독약으로 알고 있는 부자라고 하셨다.
나중에 찾아보니 투구꽃, 진범, 참줄바꽃 등에도 오두가 있다고 한다. 특히 투구꽃의 꽃말이 “나를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하는데 말도 참 기가 막히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교수님 말씀은 살고 싶지 않으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입히지 말고 조용히 산에 와서 오두를 입에 넣고 씹으라고 하셨다. 물론 웃으면서 장난삼아 말씀하셨는데 나의 머리에는 콱 박혀서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부자는 독약으로만 알고 있는데 심장 강화, 체온 상승, 진통 효과가 탁월한 훌륭한 약재다. 잘 쓰면 약 잘 못 쓰면 독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다.
투구꽃과 오두, 부자.(출처 네이버) - 오두 옆에 붙어있는 것이 부자(뿌리 왼쪽)
다음 목적지인 설악산 캠핑 장까지 가려면 든든히 먹어야 했기에 아침 식사를 충분히 하고 주변을 천천히 만끽한 후 신남으로 출발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양구에서 속초까지 가는 버스가 없었던 시절이었기에 신남으로 나와서 속초행 버스를 이용해야만 했었다. 그런데 신남까지 가는 버스를 타러 가던 중에 어떤 아저씨께 여기서 신남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여쭸더니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 걸린다고 해서 예상보다 너무 오래 걸리는 듯해서 조금 일찍 나올 걸 하며 후회를 했었다. 하지만 버스를 탄 지 약 40분 만에 신남에 도착했었다. 우리는 뭐지? 하며 속았다는 생각을 하면서 웃었던 기억이 있다. 뜻밖의 시간을 얻은 듯한 느낌으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었다.
한계령 산세(출처 네이버)
신남에서 버스를 타고 속초를 가던 중 한계령을 넘을 때의 위대한 경관이 나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어 주었다. 구불거리는 고갯길을 내려와 오색에 다다르니 한옥 마을인 듯한 곳에 있는 집의 굴뚝에서 피어나오는 연기가 도시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시골 고향 감성을 자극했다.
탁 트인 동해를 보며 어느덧 설악산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캠핑 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텐트를 친 후 다음날 계획을 세우고 설악산의 맑은 산소를 마시며 경관을 즐겼다.
다음날은 계획한 대로 비룡폭포와 금강굴을 다녀왔는데 특히 금강굴은 정말 엄청난 느낌을 받았다. 거의 직각에 가까운 절벽을 오를 때에는 오금이 저렸었다. 오르다가 아래를 내려다보면 손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던 기억이 있다.
형길이와의 이때의 여행은 평생을 살아오면서 아무리 어려운 일에 맞닥뜨려도 이겨내는 힘을 얻은 듯했다. 서로 위로와 격려하며 미래를 생각했었던 그때의 여행은 나에게는 잊을 수가 없었다.
유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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