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와 에어컨에 쓰이는 기체 냉매를 고체로 바꾸려는 스타트업이 있다. 하버드대 연구진에서 출발한 파스칼(PASCAL)이 주인공이다. 이 회사의 기술 발전을 담당하는 서진영 최고기술책임자(CTO·사진)의 주도로 고체 냉매를 활용한 냉각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냉매 누출과 환경 문제를 줄이는 동시에 냉각 효율을 높이는 것이 목표다.
서진영 파스칼 CTO는 화학자다.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뒤 2018년 하버드대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고체의 열에너지 변화를 연구하던 중 고체 냉매에 주목했다. 그는 “처음에는 순수한 학문적 호기심에서 시작했다”며 “논문으로 끝나는 연구가 실제 제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화학 실험실에 고체 냉매의 작동 여부를 실험했지만, 처음 구상한 방식은 1년 만에 상용화가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새로운 기술 연구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시드 투자를 받은 서 CTO는 공동 창업자들과 함께 2023년 1월 법인을 세우고 같은 해 5월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하버드와 MIT 사이에 있는 엑셀러레이터인 엔진(The Engine)에서 파스칼 사무실을 열었다.
이 회사는 냉장고와 에어컨에 쓰이는 냉매를 기체에서 고체로 대체하고자 한다. 냉매는 압력에 따라 온도가 변하면서 열을 옮기는 물질이다. 서 CTO는 “기존 냉장고와 에어컨은 기체 냉매를 사용한다”며 “프로판처럼 인화성이 있는 냉매도 쓰이고 있어 안전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고체 냉매는 누출 위험을 줄일 수 있다”며 “기존 냉매보다 높은 효율을 구현하는 것도 목표”라고 덧붙였다.
몇몇 고체들은 역시 압력을 받아 큰 온도변화를 일으킨다. 파스칼은 이러한 고체를 냉매로 활용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화학·재료 연구팀과 엔지니어링팀이 함께 제품을 개발한다. 재료 개발부터 하드웨어 설계까지 한 번에 진행하는 구조다.
파스칼이 시도 중인 첫 제품은 냉장고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제작이 쉬운 냉장고 냉매 장치에서 기술력을 검증해야 다른 냉각기기로 확장할 수 있다. 핵심 부품은 고체 냉매를 담는 카트리지다. 카트리지를 모듈화해 제품에 맞게 적용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현재 유럽의 한 음료기업과 기술 검증도 진행하고 있다. 해당 기업은 매장에 음료 냉장고를 설치해 제품을 판매한다. 기존 냉장고에 파스칼의 시스템을 적용해 성능을 확인하는 단계다.
투자자들의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2024년 실리콘밸리 코슬라벤처스(Khosla Ventures) 등이 참여하며 800만 달러 시드 투자를 유치했다 최근에는 LB인베스트먼트, 사제파트너스 등 국내 투자자들로부터 약 650만 달러를 추가로 유치했다.
내년 초 시리즈A 투자 유치에 나설 예정이다. 냉장고에서 검증한 기술을 에어컨 등으로 넓히는 것이 목표다. 서 CTO는 “냉각에 대한 수요는 앞으로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라며 “고체 냉매를 실제 산업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술로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산업 현장의 냉각 수요도 커지고 있다”며 “한국의 소부장 업체들과의 협업도 준비 중”이라고 강조했다.
남준우 기자 njw082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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