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찾아서 - 물리학자 장회익 경계를 넘어] 6화 과학학 부르짖은 선구자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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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 사회에도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가 필요한데, 그런 대표적 인물이 과학사·과학철학을 연구한 고 송상용(1937~2024) 한림대 사학과 교수다. 그는 나를 전공의 울타리 밖으로 끌어내어 좀 더 넓은 학문 사회로 이어주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그를 알게 된 것은 1959년 무렵 서울대 철학과 김준섭(1913~1998) 교수의 과학철학 강의를 함께 듣던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 무렵 송 교수는 화학과를 졸업하고 철학과에 편입해 철학 공부를 시작했는데, 그때 이미 사람 보는 눈이 출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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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다시 그를 만난 것은 1971년 서울대학교 물리학과 조교수로 부임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시기였다. 당시 그는 전파과학사에서 발행한 현대과학신서 문고판을 기획하고 직접 저자들을 섭외하고 있었는데, 내게 찾아와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이작 뉴턴, 마이클 패러데이 전기 가운데 하나를 골라 번역해 보라고 권했다. 이것이 내가 제러미 번스틴의 ‘아인슈타인’ 전기를 번역하게 된 계기이며, 이것이 인연이 되어 연구실 밖의 세계로 조금씩 내딛게 되었다.
전기 번역본이 나온 뒤 얼마 되지 않아 아인슈타인 탄생 백주년(1979년) 기념행사로 대중 강연회가 열렸다. 이때 송 교수는 ‘사회비평가 아인슈타인’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해 달라는 청탁을 해왔다. 나로서는 첫 대중 강연이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에게 꽤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당시 박정희 독재에 대한 반감이 끓어오르고 있었지만 누구도 대놓고 비판하기는 어려웠는데, 아인슈타인이라는 범접할 수 없는 세계적 인물의 사례를 빌어 비판의 정당성을 고취하니 많은 이들이 내심 크게 호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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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 얼마 뒤 어느 서점에 진열된 월간지 ‘씨알의 소리’(발행인 함석헌) 표지에 내 이름과 함께 ‘사회비평가 아인슈타인’이란 글 제목이 적혀 있었다. 알고 보니 당시 해직의 고초를 겪던 고려대 화학과 김용준(1927~2019) 교수가 그 강연을 녹취하여 잡지에 게재한 것이었다. 혹시나 내게 피해가 갈까 염려해서 알리지도 않고 글을 실어 버렸다고 했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김용준 교수가 추천한 주간지의 고정 칼럼들을 한동안 쓰게 되었고, 양심적 지식인들의 글이 실리던 ‘씨알의 소리’와도 인연을 맺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결국 송 교수가 나를 바깥세상으로 끌어낸 셈이다.
한편 송 교수는 여러 대학에 강사로 출입했고, 서울대에 오면 내 방에 자주 들렀다. 그는 ‘과학학’(Science Studies)이라는 학문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면서 대학에 ‘과학학과’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펼쳤다. 나도 내심 크게 공감했으나 대학에서는 전혀 먹혀들어갈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인 1984년 무렵, 서울대 화학과에 있으면서 주로 과학사 강의를 하던 김영식 교수가 ‘과학사 협동과정’ 설립을 추진하고 다녔다. 마침 내가 자연과학대학 교무담당 학장보 직책에 있었기에 여기에 힘을 보태면서 과학철학도 함께 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안했다. 이렇게 하여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란 긴 명칭의 정규 과정이 자연과학대학 대학원 안에 만들어졌는데, 서울대 최초의 협동과정이다. 나는 송 교수가 제안한 ‘과학학’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당시로서는 그 정도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고, 이후 과정의 운영과 교육에 송 교수의 도움을 크게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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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교수는 국내뿐 아니라 국외 출입도 잦았고 또 여러 분야 학자들과의 교류도 넓었다. 그는 1987년 유고슬라비아 두브로브니크에서 연례행사로 열리는 국제 과학철학 모임에 다녀왔는데, 이듬해 행사 한국인 참석자로 나와 이화여대 철학과에 재직 중이던 소흥렬 교수(1937~2019)를 추천해 놓고 왔다. 1988년 모임의 주제는 ‘과학적 설명’, ‘생물학의 철학’ 두가지로 지정되어 있었다.
송 교수는 귀국하자마자 소흥렬 교수와 나를 부르더니, 소 교수에게는 ‘과학적 설명’ 영역에서, 그리고 내게는 ‘생물학의 철학’ 영역에서 각각 논문을 발표하라고 꼭 짚어 권유했다. 소 교수야 본래 분석철학을 한 분이니 그 영역 발표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일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물리학자로서 생명에 관한 내 관심을 외부로 내보인 일이 거의 없었는데, 송 교수가 어떻게 낌새를 알아챘는지 ‘생물학의 철학’ 논문을 내놓도록 일을 꾸며 놓은 것이다.
이것이 소 교수와 내가 1988년 4월4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두브로브니크 국제 과학철학 모임에 참석하게 된 계기이다. 나는 물리학에서 박사학위를 받던 1969년 무렵부터, 유전자의 디엔에이(DNA) 구조 발견 이래 새롭게 등장한 분자생물학에 매료됐다. 이후 1977년에 와서는 근본적으로는 ‘낱생명’ 단위에서는 생명의 이해가 불가능하며 오직 지금 내가 말하는 ‘온생명’을 단위로 해야 헤아릴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고 있었다. 하지만 1987년 여름 송 교수가 이러한 제의를 하기까지는 차분히 앉아 논문으로 엮어낼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이것을 ‘온생명’이라 부르지만 그때까지는 적절한 용어조차 찾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 논문을 작성하는 일을 계기로 온생명 개념을 영어로 ‘글로벌 라이프’(global life)라 부르기로 하고 여기에 대비되는 낱생명을 ‘인디비주얼 라이프’(individual life)라고 해서 결국 ‘유니츠 오브 라이프: 글로벌 앤드 인디비주얼’(Units of life: global and individual)이란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했다. 이것이 내 생애 최초의 온생명 관련 논문이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하자면 송 교수는 내 ‘온생명 이론’ 탄생의 산파 구실을 톡톡히 해준 사람이다.
이 일이 있고 난 2년 뒤(1990년), 나는 두브로브니크에서 발표한 논문의 국역본을 비롯해 그때까지 쓴 내 논문 가운데 대중이 읽을 만한 글 12편을 묶어 첫 단독 저서 ‘과학과 메타과학’을 출간했다. 책이 나오자마자 그다음 날인가 전혀 뜻하지 않게 송 교수가 쓴 서평이 동아일보 지면에 크게 실렸다. 지금 그 서평의 내용은 거의 생각이 나지 않으나 한가지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그가 나를 일러 “괴짜 물리학자”라고 했다는 점이다. 그때나 이후의 내 행적으로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 호칭임은 틀림없다. 다만 ‘순진한 물리학자’ 장회익을 ‘괴짜 물리학자’ 장회익으로 끌어낸 장본인이 바로 그 자신이라는 생각까지 했는지는 분명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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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가지 송 교수와 관련하여 잊을 수 없는 일은 그가 한국 과학철학회를 만드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점이다. 1990년대 후반 아직 과학철학자라 불릴 사람들이 열 손가락에 겨우 꼽힐까 말까 한 시기에 창립회원만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을 모아 과학철학회를 꾸려낸 것이다. 이는 나 같은 사람은 도저히 꿈도 꾸지 못할 작업이었다. 이 모든 일을 다 만들어 놓은 그는 내게 창립총회에 참석만 해달라고 했다. 갔더니 난데없이 내게 초대 회장을 하라는 것이었다. 당연히 송 교수가 해야 할 일이라고 극구 사양을 했으나, 이미 다 짜놓은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2022년 3월 그간 ‘과학학’ 분야에서 많은 인재를 배출해왔던 서울대 대학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이 서울대 대학원 ‘과학학과’로 재발족했다. 이로써 50여년 전부터 과학학과의 필요성을 제창하며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던 송 교수의 오랜 바람이 성취된 셈이다. 아쉽게도 그는 자신의 노력이 어떠한 결실을 더 볼 것인지 충분히 지켜보지 못하고 2년 전 영영 눈을 감아 버렸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송 교수는 일생 많은 곳을 누비고 다녔지만, 운전을 하지도 차를 가지지도 않았다. 철저히 도보와 대중교통에만 의존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내가 충남 아산에 은거한 이래 내가 사는 곳까지 직접 찾아주는 성의를 베풀었다. 그는 환경주의나 생태주의를 유난스레 내세우진 않았지만, 그 누구 못지않게 친환경적인 삶을 살았다.
장회익
| 1938년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에서 30여년 교수로 일하다 퇴임하고, 지금은 충남 아산에서 살고 있다. 자유로운 사색을 통해 통합적 학문의 모습을 그려보는 ‘소요거사’로 지낸다. 물리학 말고도 과학이론의 구조와 성격, 생명의 이해, 동서 학문의 비교 연구, 온전한 앎의 성격 등에 관심이 있다. 저서로는 ‘과학과 메타과학’, ‘삶과 온생명’, ‘생명을 어떻게 이해할까?’, ‘공부도둑’(‘공부 이야기’), ‘장회익의 자연철학 강의’, ‘양자역학을 어떻게 이해할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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