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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김택근의 묵언]닥치고 민심에 복종하라

이재명 대통령의 언어에서 신뢰가 빠져나가고 있다.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부동산 정상화는 계곡정비보다 쉽다”는 대통령의 호언은 결국 속이 빈 것이었다. 부동산 정책은 후퇴를 거듭하고, 입법을 앞둔 세제개편안은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김택근의 묵언]닥치고 민심에 복종하라

이재명 대통령의 언어에서 신뢰가 빠져나가고 있다. 말의 무게가 가벼워지고 있다. “부동산 정상화는 계곡정비보다 쉽다”는 대통령의 호언은 결국 속이 빈 것이었다. 부동산 정책은 후퇴를 거듭하고, 입법을 앞둔 세제개편안은 누더기가 되어버렸다. 부동산 잡으려다 정권을 잡아먹힌 문재인 정부가 어른거린다. 집이 재산의 전부인 도시민을 상대로 집값을 안정시키는 것은 난제 중의 난제다. 집값은 폭등해도 문제지만 폭락해도 엄청난 부작용을 초래한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집값을 정비의 대상으로 보고 포클레인(강경책)을 동원하려 했다.

내란범 윤석열과 비교되는 화려한 언변으로 만기친람했던 이재명의 ‘유능함’은 선도가 많이 떨어졌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대통령의 말에서 활력이 줄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정책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 주가를 띄우면 주식 없는 국민들에게는 박탈감이 생겨난다. 반도체가 마법처럼 뱉어낸 이익금을 삼전닉스 왕국에 속한 사람끼리 나눠먹으면 성 밖에 있는 젊은이들은 상실감에 가슴을 친다. 이런 양면을 살피지 않는 정책은 결국 민심이반을 불러온다.

민심이 떠나가고 있다. 국정운영에 대한 지지도가 급락하고 있다. 40% 유지도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당대회 결과도 심상치 않다. 민주당 내의 권력투쟁 불길이 언제 청와대로 옮겨붙을지 알 수 없다. 대통령이 낙점한 김민석은 완승을 거두지 못했고, 당원들이 이재명을 떠나고 있음은 분명해졌다. 그럼에도 대통령에 묶여 있는 이재명은 참전할 수 없다. 법으로 정한 숙명이다. 이재명은 전당대회가 끝나기 무섭게 신임 당대표와 패장을 불러서 그들의 손을 잡고 파안대소했다. 누가 봐도 그 웃음은 과도했다. 만찬이 끝난 후 대통령 이재명은 쓸쓸했을 것이다. 민심이 떠나면 모두가 떠나간다. 이제 이재명이 기댈 곳은 민심뿐이다.

진보정당에서 대통령 4명을 배출했지만, 문재인과 이재명은 현직 대통령이 탄핵을 당해 손쉽게 대권을 움켜쥐었다. 사실상 국민들이 쥐여준 것이었다. 그래서 더욱 민심을 받들어야 했고,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야 했다. 하지만 문재인은 실패했다. 이제 약자의 설움을 가장 잘 알고 있다는 소년공 출신 ‘굽은 팔’ 이재명은 해내야 한다. 스스로도 국민주권정부라 명명하고 동분서주하며 나라 안팎에 쌓인 내란의 부유물을 치웠다. 그럼에도 이재명 정부 초기에 이상신호가 감지되고 있음은 충격이다. 어디가 문제인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인사만큼은 제대로 했어야 한다. 하지만 대통령 이재명은 사적 인연과 연고를 따진 보은인사를 단행했다. 전임 정부와 다를 게 없었다. 갈수록 이해할 수 없는 인사가 계속됐다. 최근 한성숙을 국무총리로 발탁한 것은 최악이었다. 아무리 총리의 위상이 추락했어도 돈 많은 자가 총리가 되는 것은 부적절하다. 250억원을 가진 자라면 어느 정권도 아예 총리 후보로 내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또 충분히 투기를 의심할 만한 다주택 소유자였다. ‘250억’이 쪽방촌을 방문하여 약한 자들의 가난을 품어주고 같이 울어줄 수 있겠는가. ‘다주택 이력자’가 부동산 대책회의를 주재한다면 정책의 진정성을 누가 믿겠는가.

이재명 정부가 곧 개각을 단행하며 반전을 노리고 있다고 한다. 기대를 접었지만 그래도 일말의 기대를 해본다. 이재명 정부의 갈 길이 구만리나 남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민심이 떠나자 편가르기로 지지자를 모은 문재인 정권이 떠오른다. 이재명 정권도 지지도가 속락하면 편을 가를지 모른다는 불길한 생각이 든다. 한번 돌아선 민심은 되돌리기 어렵다. 초심으로 민심을 헤아려야 한다. 국민들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박탈하는 데 반대했지만 정부 여당은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역행했다. 또 민심은 용산공원을 훼손하지 말라 명령하고 있음에도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주택을 지으려 한다. 그래서 국민들은 정부 여당을 더 이상 공정과 상식이 지배하는 민주주의 집단으로 보지 않는다.

요즘 ‘대체불가’라는 말이 불쑥 튀어나와 아무나 입에 올리고 있다. 국정 방향을 가리키는 정부의 구호인지, 슬로건인지 알 수 없다. 대체 무엇을 대체할 수 없다는 것인가. 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의 슬로건으로는 없어 보인다. 성숙한 사회는 자랑을 하지 않는다. 대체불가는 남이 인정해주는 것이다. 겸손해야 한다. 상가마다 ‘임대문의’가 줄줄이 붙어있는 ‘공실공화국’에서 대체불가를 외치면 누가 답하겠는가.

김택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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