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은행이 여행원 채용 시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결혼 퇴직각서' 받아
1975년 11월 조흥은행의 '강경자'가 결혼 특별휴가 신청서 내고 퇴직 없이 결혼 '쾌거'
'커리어 우먼'이 사회 전면에 부상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이코노텔링그래픽팀.
현대사를 다룬 책을 읽다 보면 '어, 이런 일이!' 싶어 당황스러울 때가 종종 있다. 우리가 눈 뜨고 살아온 세월 속에,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들이 벌어졌음을 알게 되어서다. 한국 여성사에 초점을 맞춘 '역사 속 여자, 00하다' 시리즈 중 한 권인 『여자, 생존 전쟁을 치르다』(이아리·권혁은 지음, 푸른역사)에서도 그런 대목을 만났다.
책에 실린 '여자, 회사에 가다'란 논문을 따라가 보자. 여공 등 육체노동이 아닌 사무직에 종사하는 이른바 '커리어 우먼'이 사회 전면에 부상한 것은 1990년대부터였다. 이때부터 TV드라마에 커리어 우먼이 본격적으로 등장했단다. 1988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의 덕이 컸다. 이전엔 기업의 신입사원 모집 공고에 "응시 자격: 병역 필 또는 면제자"라 못박아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은 아예 응시 자격이 없었다. 드물게 여성을 뽑는 경우에도 "용모 단정, 미혼 여성"이란 단서를 붙였으니 대졸 여성의 취업은 말 그대로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힘들었다.
이 법 제정으로 이런 '관행'이 금지되었지만 고학력 여성의 취업은 여전히 하늘의 별 따기였다. 삼성, 현대 같은 대기업들이 호황에 힘입어 해마다 2,000명 이상의 신입사원을 모집했지만 그중 여성은 각각 100명뿐이었으니 말이다. 이건 1984년 11월 5일 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에 따른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여대생의 증가를 사회적 골칫거리로 여기는 세태마저 있었다. 1983년 12월 12일 자 『동아일보』에는 "여학생들은 졸업 후 사회에 진출하는 비율이 남학생에 비해 훨씬 낮고 사회활동 기간도 짧기 때문에 투자의 효율성 면에서 문제가 있다"란 전국국립대총장협의회의 목소리가 실렸으니 알 만하지 않은가.
그렇게 어렵게 취업 문턱을 넘어선 여성들이라 해도 기존의 성차별과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 했다. 그중 특히 문제가 되었던 것은 여성은 결혼하면 의무적으로 퇴직하도록 했던 '결혼 퇴직제도'였다. 이는 여행원이 전체 직원의 3분의 1이 넘는 대표적 여성 친화적 직장이었던 은행도 예외가 아니었다. 대부분의 은행이 여행원 채용 시 헌법과 근로기준법에 위배되는 '결혼 퇴직각서'를 당연히 받았고, 이는 실제 여행원들에게 족쇄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법적인 근거가 없는 이 '각서' 관행은 국책은행에서 더 위세를 부렸는데 산업은행의 경우 각서 제출을 아예 은행 규칙으로 정했을 정도였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은행 중 은행이라 할 한국은행이었다. 결혼 퇴직각서에 더해 아예 서른 살이 되면 퇴직한다는 각서를 요구했다니 말이다.
책에는 1970년 중반 각 은행 노조의 여성부장들이 이를 깨기 위해 벌인 '투쟁'이 나오는데 이런 관행은 1975년 11월 조흥은행의 강경자가 결혼 특별휴가 신청서를 내고 퇴직 없이 결혼하는 '쾌거'를 이룬 것을 계기로 점차 사라졌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이야기 같은 이런 '사실'을 알게 되면, 역사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된다. 우리가 어떤 경로를 어떻게 지나 오늘에 이르렀는지 알면 뭐가 달라도 달라지지 않을까 해서다.
이코노텔링 김성희 편집고문 커리커처.
고려대학교에서 행정학을 전공하고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로 정년퇴직한 후 북 칼럼니스트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엔 고려대학교 언론학부 초빙교수로 강단에 선 이후 2014년까지 7년 간 숙명여자대학교 미디어학부 겸임교수로 미디어 글쓰기를 강의했다. 네이버, 프레시안, 국민은행 인문학사이트, 아시아경제신문, 중앙일보 온라인판 등에 서평, 칼럼을 연재했다. '맛있는 책 읽기' '취재수첩보다 생생한 신문기사 쓰기' '1면으로 보는 근현대사:1884~1945' 등을 썼다.
김성희 이코노텔링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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