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김만흠 칼럼] 퇴락한 한국 정치 생태계의 진풍경

전당대회를 앞둔 집권 여당의 권력 투쟁이 거의 전쟁 수준이다. 여권 내부에서 대통령과의 균열이 노골화하고 당 대표 경쟁은 여야 대립만큼 거칠고 적대적이다. 어느 한쪽을 응원하고 기대하기엔 이쪽저쪽 모두 한계를 안고 있다.

[김만흠 칼럼] 퇴락한 한국 정치 생태계의 진풍경

이재명 대통령(가운데) 주재로 지난 7월 23일 서울 여의도 KBS 별관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전당대회를 앞둔 집권 여당의 권력 투쟁이 거의 전쟁 수준이다. 여권 내부에서 대통령과의 균열이 노골화하고 당 대표 경쟁은 여야 대립만큼 거칠고 적대적이다. 어느 한쪽을 응원하고 기대하기엔 이쪽저쪽 모두 한계를 안고 있다. 논란을 부르고 있는 유시민 작가의 대통령을 향한 독설에 공감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통령의 국정 리더십에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최근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도가 말해 준다.

생산적 정당 정치의 핵심인 여야 경쟁 체제가 무너진 상태는 여전하다. 22대 국회는 당시 제1야당 더불어민주당이 단독으로 압도적인 과반을 차지한 여소야대로 시작했다. 다당 구조의 여소야대는 종종 있었지만 단일 야당이 과반을 넘긴 경우는 헌정사에서 처음이었다. 이를 토대로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을 압박했고, 탄핵 정국을 주도했다. 이재명 대통령 당선으로 여야가 바뀌면서 여대야소 정국이 됐다. 집권 여당에서 소수 야당이 된 국민의힘은 내란 정당 공세까지 받으며 더 무기력하게 추락했다.

지난 6·3 지방선거에서 여당의 오만에 대한 심판과 일부 패착에 따른 반사이익으로 소수 야당에도 약간의 힘이 실리는 듯했다. 그러나 여당을 견제하는 쟁점을 만들거나 대안적 기대를 담지 못한 채 여전히 경쟁 체제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이른바 참정권 운동에 의존하는 장동혁 대표의 리더십과 징계 문제를 비롯한 당 내 갈등은 국민의힘 자신도 정비하지 못한 소수로 가둬 놓고 있다.

집권 여당의 균열에 따른 상대적 기회를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비슷한 균열로 동행하고 있다. 민주당의 균열이 주목받는 폭발력을 가지고 있다면, 국민의힘은 소수 세력인 만큼 주목도가 떨어진 지리한 균열이라는 점이 다를 뿐이다. 여당과 평행하면서 더구나 초라한 동행으로는 대안 세력으로 기대받기 어렵다. 현 상태라면 상대의 자멸만을 기대하는 형세다.

◇ 여권 권력 투쟁의 숨은 코드, 사법리스크

이 대통령의 권력을 경고했던 유시민의 ‘어물전론’은 최근 민주당 상황에 그대로 적용된다. 민주당의 1당 패권 체제가 정당의 건강성을 잃게 만든 결과라는 것이다. 어느 정치인보다도 당에 대한 장악력이 강했던 이 대통령이다. 당 내 이견은 ‘개딸’에 의해 ‘수박’으로 낙인찍혀 응징을 당했다. 평론가들이 전체주의적 위험성을 경고할 정도였다. 그런데 아직 집권 초반기라 할 수 있는 시점에 장악력이 그렇게 강했던 대통령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고 여권 내부의 균열이 거칠게 일어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사법 리스크’라는 거대 변수가 숨은 코드로 작동하고 있다.

유 작가의 궤변들을 신뢰하지 않지만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명제를 비유한 그의 어물전론은 권력의 보편적 위험성에 대한 경고로도 유용하다. 민주당 독주의 명분이었던 내란 청산론은 거침없는 대통령 권력의 자원이기도 했다. 다만 민주당은 내란 청산 주장을 노골적으로 외화시켰고 대통령은 그 주도권을 자연스럽게 행사했다. 대통령의 만기친람형 리더십과 결합한 상태에서 대통령의 독주는 절대 권력 비판론을 부를 수 있다.

지난 1년 대통령의 만기친람 리더십은 대통령의 열정과 박식함으로 비추기도 했다. 생방송으로 공개된 국무회의, 지방순회 타운홀 미팅과 국민보고대회, 장시간의 기자회견 등이 그랬다. 국민과 직접 소통하는 대통령 리더십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차 반복되는 대통령의 훈시 무대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대통령이 주재하는 ‘극장식 포퓰리즘’의 전형이 돼 갔다.

◇ ‘극장식 포퓰리즘’의 문제

극장식 포퓰리즘의 전형은 지난 7월 23일에 있었던 부동산 정책 국민대토론회가 말해준다. 권력자가 직접 주재했다. 부동산 정책 논란의 핵심 무대인 서울시의 시장 발언은 국무회의에서 가로막고 생방송 무대에서 국민 의견 수렴을 내건 대토론회를 연출한 것이다. 알다시피 140명의 선택된 국민이다. 객관적 여론 수렴으로 보자면 일반 여론조사나 공론화 위원회 방식이 훨씬 더 타당하다. 비판적 의견 수렴이라면 야당이나 해당 전문가와의 토론이 더 적절하다. 방송에서 정리된 내용 역시 ‘답정너’라는 야당의 비판이 억지가 아니었다. 대토론회 이후 여론의 반응이 말해 준다.

대통령이 주재하는 샌프란시스코 ‘AI 정상회의’ 같은 건 나름대로 의미있는 행사였지만 대기업 총수들 거느리는 방식에 일정한 절제도 필요해 보인다.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 세리머니에 주인공으로 끼어들려다 제지당했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야 한다. 극장식 포퓰리즘은 민주적 리더십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권 내부에서 중도실용 통합 노선을 비판하면서 핵심 지지층의 개혁 요구에 화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이 중도 통합 노선을 걸었다고 보이진 않는다. 또 보완수사권 폐지 논란에서 보듯이 코어 지지층이 말하는 강경 노선이 곧 개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

지난 집권 1년은 통합 노선보다는 방탄 논란을 부른 여야 진영 갈등이 더 극단화된 시기였다. 통합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던 한두 사람의 인사는 개별적 시도였고, 그마저도 좌절되거나 결국 튕겨나갔다.

강경 노선이 곧 개혁은 아니다. 예컨대 보완수사권 폐지가 바로 검찰 개혁은 아니라는 것이다. 검찰 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문재인 정부 시기 ‘검경수사권 조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입법 과정에서 그나마 공론화 과정이 있었다. 이 또한 막바지에는 패스트트랙을 동원해 밀어붙였지만, 제도의 효과에 대한 일정한 토론들이 상당 기간 있었다. 이후 검수완박, 검찰청 폐지, 보완수사권 폐지 입법 추진에 이르기까지 다수의 위력과 권력으로 밀어붙여 왔다.

한성숙 국무총리(가운데)가 지난 7월 27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에 참석,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강경 노선이 곧 개혁은 아니다

김민석 당시 총리도 그동안의 검찰이 믿지 못할 일을 해왔기 때문에 일단 책임을 묻는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6월 22일 기자 간담회)는 식이었다. 응징 차원의 조치를 개혁이라고 한 것이다. 총리 자신, 그리고 대통령도 그런 조작 기소의 피해자라고 덧붙였다. 책임을 묻고 싶은 동기의 당사자가 국민이 아니라, 일부 정치인, 특히 여권의 일부 정치인이었다는 점을 새겨 봐야 한다. 사적, 당파적 응징 요소가 과도하게 투영된 것이다. 장윤기 사건을 계기로 약자의 피해 구제와 보호 차원에서 논란이 되고 있지만 적법 절차와 소명 기회라는 헌법상의 기본권이 근본적 쟁점이다. 기본권 차원에서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되는 개악이라고 우려하는 박찬운 교수 등의 진단에 공감한다.

한쪽에서는 개혁 이탈, 중도실용 노선 등의 문제를 이재명 정부의 문제로 지적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당정 일체로 뒷받침하겠다고 말한다. 전당대회를 앞둔 민주당 내부의 권력 투쟁 양상이다. 교조화된 당내 권력 투쟁에서는 유효한 구호일 수 있지만 지난 1년의 성찰이 남긴 당과 대통령의 과제가 그것이었을까. 대통령의 힘이 됐던 주식 시장은 오히려 급격한 변동성이 낳은 피해가 커지면서 국정 지지의 악재로 바뀌는 분위기다. 새롭게 부동산 대책에 대한 불만이 도드라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가장 큰 요인으로 나온다. 만기친람 리더십의 장점도 소진되고 이제는 식상한 극장식 포퓰리즘이 되고 있다.

개혁으로 자임했던 내란 청산 프레임과 방탄 논란을 부른 각종 입법이 사실상 집권 여당의 구심점이자 동력이었다. 점차 그 에너지가 한편으로는 소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권력 남용으로 비추기도 한다. 이런 문제에 대한 성찰과 미래 비전이 전당대회를 비롯한 여권의 쟁점이 돼야 할 터이다. 그런데 여전히 강경 노선과 무조건적 대통령 뒷받침론이 전당대회 권력 투쟁을 주도하고 있다. 정치 세대 혁신과 소수 세력 대표성 강화가 제기되기도 하지만, 역부족이다. 이를 내세우는 정치인이 경선에서 컷오프를 넘지 못하거나 그 목소리 또한 변방에 그치고 있다.

◇ ‘도파민 정치’의 폐해

유튜브 등을 기반으로 하는 ‘도파민(dopamine) 정치’가 만들고 있는 풍경이다. 자극적이고 강한 주장이 먹히는 유튜브 등이 정치 여론을 주도한다. 알다시피 도파민은 쾌감과 동기 부여를 일으키는 뇌의 신경전달물질이다. 합리적 숙의보다 즉각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는 단기적 자극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정치 여론 환경이다. 조롱이나 혐오의 용어들이 쉽게 등장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파적인 에코챔버 속에서 자기확증을 강화하며 자발적으로 가스라이팅된다. 요즘 정치 집단들이 유사 종교 집단처럼 되는 주요한 배경이자 경로다.

정파적 재생산 도구가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의 언론 기능을 상당 부분 대체하고 있다. 정당 정치인뿐 아니라 정부나 청와대 인사들도 정파적 유튜브를 정책 홍보의 주무대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여당 내부의 극렬한 권력 투쟁은 도파민 정치의 일종이다. 여야 진영 대립을 강화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던 도파민 정치가 여권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도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당 내 권력 투쟁의 쟁점들이 국민의 보편적 민심을 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국민의 보편적 민심으로 기수를 돌리지 않고 극단 세력에 의존하면서 소수화된 채로 버티는 야당의 일부 리더십도 마찬가지다.

도파민 정치를 주도하는 유튜브 등의 정치 환경이 당장 바뀔 것 같지는 않다. 그래도 생활 현장의 민심은 보편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민심과 유리된 도파민 정치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상대의 실패가 아니라 대안과 미래 비전으로 경쟁하는 생산적 정치가 부재한 피장파장의 정치가 유감스러울 뿐이다. 이쪽저쪽 모두 퇴락한, 잔인한 정치 풍경이다.

여야 관계를 비롯한 정국은 물론 여권 내부의 권력 투쟁에도 대통령의 사법 리스크가 숨은 코드로 자리하고 있다. 그만큼 정국 전환의 핵심 고리다. 권력 맘대로 난도질하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벗어난 해법을 기대할 수 있을까.

※ 외부 필자의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만흠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weeklyhk@hankooki.com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