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 남매가 찍은 ‘인생 컷’…무대는 영암 ‘그라제’
[전남광주서 희망 찾는다] 그라제147 배우 김규리, 동생 김건우씨
수묵비엔날레 인연 남도 매력에 ‘푹’
상대포 역사공원 옆 폐가한옥 새단장
동생은 정착 김규리는 오가며 힘 보태
“카페보다 영암 숨은 보석 알리고 싶어”
2026년 09월 22일(화) 20:10
배우 김규리(왼쪽)씨와 동생 김건우씨가 영암군 군서면에 문을 연 카페 ‘그라제147’ 앞에서 활짝 웃어보이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 3월 카페를 열고 영암살이를 시작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상대포 역사공원의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한눈에 반했습니다. 거기에 어딜 가나 입안을 사로잡는 남도의 미식과 깊은 멋까지 더해지니 이 땅의 매력에서 도무지 헤어나올 수가 없더라고요.”
다가오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전남광주시 영암군 군서면의 카페 ‘그라제147’에서 만난 배우 김규리(46)씨의 얼굴에는 남도에 대한 깊은 애정이 묻어났다. 화려한 스크린과 무대 위를 누비던 베테랑 배우가 요즘 가장 오래 머무러는 곳은 촬영장도, 화려한 대도시도 아닌 월출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싼 영암이다.
김규리씨는 동생 김건우(44)씨와 함께 올해 3월, 영암 상대포 역사공원 인근에 카페를 열었다. 출발점은 문화예술과의 인연이었다. 동양화를 그리며 아티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져온 그는 전남 수묵비엔날레 1회 때부터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수개월간 남도 땅 구석구석을 누볐다. 스승이었던 신안 출신 수묵화가, 광양 출신 민화 작가 등 한국화 거장들의 발자취를 따라 진도와 신안, 광양 등을 다니며 예향 남도의 멋에 매료됐다. 여기에 영화 ‘1980’을 촬영하며 목포 원도심 주민들과 두 달 넘게 소통했던 따뜻한 기억, 작은 구멍가게조차 기막힌 손맛을 자랑하던 전라도의 미식 경험이 더해지며 남도는 그에게 제2의 고향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전남지역을 찾을 때마다 드는 아쉬움도 컸다. “지방 활성화라는 말을 뉴스에서 들었을 때는 솔직히 무슨 뜻인지, 왜 필요한지도 잘 몰랐어요. 그런데 전남 수묵비엔날레 홍보대사를 하고, 영화 촬영차 목포와 영암을 오가면서 비로소 이 지역의 진가를 눈으로 확인하게 됐죠. 자연과 역사는 이렇게 기막히게 살아있는데, 막상 정주하는 사람이 너무 적더라고요.”
그러던 중 지난해 영암 하정웅미술관과 상대포 역사공원을 찾았다가 운명 같은 장면을 목격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공원 바로 옆에 덩그러니 방치된 폐가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렇게 예쁜 공원(상대포역사공원) 앞에 폐가가 방치돼 있는 게 너무 아쉬웠어요. 군에서 공고를 냈는데 2차, 3차 유찰되어 이틀 뒤면 마감이라는 얘길 들었죠. ‘저곳을 예쁘게 정비해서 거점을 만들어놓으면 오가는 분들이 편하게 쉬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 결정적 조력자는 남동생 김건우씨였다. 서울에서 오랜기간 요식업에 종사했고, 최근까지 7년 간 바리스타로 일하며 창업의 문턱에서 고민하던 동생에게 누나 김규리씨가 “나랑 일 하나 같이 해보자”라며 제안을 건넸다.
누나의 제안에 동생 김건우 씨는 망설임 없이 결단을 내렸다. 올해 3월, 영암군 군서면 구림마을로 거주지를 옮겨 영암군민이 됐다. 그렇게 탄생한 공간이 바로 베이커리 카페 ‘그라제147’이다. ‘그라제’는 상대의 말에 장단을 맞추며 긍정하는 전라도 사투리에서 따왔고, ‘147’은 카페가 들어선 지번(구림로 147)에서 따왔다.
“누군가 이야기할 때 ‘그라제!’ 하고 맞장구를 쳐주면 상대방의 자신감이 생기고 기가 살잖아요. 사람을 살리는 정겨운 추임새죠. 거기에 이곳의 정체성을 담아 지번을 붙였어요. 남도의 기운을 받아 찾아오시는 모든 분들의 기를 살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카페 오픈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폐가를 보수하는 일부터 메뉴를 개발하는 일까지 순탄한 것이 없었다. 그러나 남매는 서로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바리스타인 동생은 매장을 지키며 맛있는 커피와 빵을 구워내고, 서울과 지방을 오가며 활동하는 누나 김규리씨는 스케줄이 빌 때마다 영암으로 내려와 앞치마를 두르고 ‘알바생’을 자처한다.
영암군민이 된 동생 김건우씨는 “서울에서는 나만의 가게를 갖는다는 기회를 잡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제 꿈을 펼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다”며 “지방 생활이 처음이라 매일이 새로운 숙제의 연속이지만, 식당에 갈 때마다 실패 없는 완벽한 남도 음식과 고즈넉한 풍경 덕분에 마음의 여유를 얻고 있다”고 웃어 보였다.
김규리씨는 인터뷰 내내 영암과 남도의 자랑거리를 늘어놓는 데 더 열을 올렸다. “저희 카페 홍보보다 영암의 숨은 보석들을 더 많이 알리고 싶어요. 밤 8시에도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을 나올 수 있을 만큼 안전하고 아름다운 곳이거든요. 이런 좋은 곳을 더 많은 분들이 알고 찾아오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암=김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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