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유가 상승에 금리 인하 기대 후퇴
연준 내부 시각차 확대…고금리 장기화 가능성 부상
“실제 인상보다 매파적 관망” 전망에 시장 긴장감
신현송 체제 첫 금통위 주목…한은 메시지에 쏠린 눈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이 지난 4월 29일(현지시간) 마지막 기자회견을 마치고 자리를 떠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오피니언뉴스=김솔아 기자] 중동 전쟁 장기화와 국제유가 급등 여파로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이 다시 '긴축'으로 향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당초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를 실어왔지만, 최근 들어 중동 리스크와 에너지 가격 상승 여파로 기대가 빠르게 약화되는 분위기다. 국제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이 물가를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중앙은행 내부에서도 금리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중동 리스크가 공급망과 물가를 동시에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중동 리스크가 장기화되면서 유가뿐 아니라 알루미늄·헬륨·디젤 등 산업 핵심 원자재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공급망 압력 지수 역시 반등 조짐을 보이며 금융시장의 긴장감을 키우는 상황이다.
연준 내부 시각차 확대…시장 흔든 '매파적 동결'
미국 연준 내부 분위기도 이전과 달라지고 있다. 연준은 지난 4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 기준금리를 3.50~3.75%로 동결했지만, 시장은 결과보다 성명서와 기자회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준은 성명서를 통해 "최근 글로벌 에너지 가격 상승을 일부 반영해 인플레이션이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동 정세가 공급망과 물가 경로에 미치는 영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특히 이번 FOMC에서는 1992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인 네 명의 반대 의견이 등장하며 연준 내부 시각차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스티브 미란 이사만이 금리 인하를 주장했고, 다른 세 명의 위원은 동결에는 동의했지만 성명서 내 완화적 기조를 포함하는 데에 반대 의견을 냈다. 동결 결정 자체보다 연준 내부 시각차와 긴축 경계감 확대가 시장에 더 큰 신호로 읽힌 이유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발언 역시 시장 기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지난 몇 주간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이 반등한 점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유가 상승이 물가 하락 경로(Disinflation)를 방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중동 분쟁과 유가 상승이 단순한 일시적 충격이 아니라 향후 물가 경로의 주요 변수가 될 수 있다는 경계감이 담긴 발언으로 해석됐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하 시점 전망도 빠르게 뒤로 밀리고 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파월 의장의 발언과 관련해 "금리 인하 시점이 시장 기대보다 더 뒤로 밀릴 수 있음을(Higher for Longer) 시사했다"며 "향후 금리 경로는 연준의 의지보다 중동 정세와 그에 따른 WTI 유가 추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시장에서는 실제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 자체는 아직 제한적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미국 경제가 과거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낮고, 강달러에 따른 수입물가 안정 효과 역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현재 기준금리 수준 자체가 이미 상당히 제약적인 수준이라는 점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실질금리가 높은 구간에서 추가 긴축은 물가 상방 위험 억제를 넘어 실물경제 둔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며 "현실적 정책 조합은 기준금리 인상보다 매파적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기대 인플레이션 억제"라고 분석했다.
결국 시장이 주목하는 것은 실제 금리 인상 여부보다 '매파적 관망' 가능성이다. 인하 기대를 과도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키는 방향으로 중앙은행 스탠스가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케빈 워시 미 연준 의장 지명자가 지난 4월 21일 미 상원 인준 청문회 출석한 모습. 사진=연합뉴스
그럼에도 시장 분위기는 이전과 달라졌다. 기존에는 연준이 경기 둔화와 금융시장 부담을 고려해 결국 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란 기대가 우세했지만, 최근에는 고금리 장기화 가능성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중동 리스크와 유가 상승이 단기 변수에 그치지 않을 경우 중앙은행들이 인하 시점을 계속 늦출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 FOMC가 파월 체제 마지막 회의였다는 점도 시장 관심을 키웠다. 파월 의장은 오는 5월 15일 의장직에서 물러날 예정이며 차기 의장으로는 케빈 워시가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대신증권은 이번 회의를 두고 "파월의 질서 있는 퇴장과 워시 체제의 예고편"이라고 평가했다.
워시 체제 전환 가능성은 시장 불확실성을 더욱 키우는 요인이다. 워시는 과거부터 상대적으로 매파적 성향으로 분류돼 왔고 시장에서는 새 연준 체제 아래 통화정책 기조 변화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금리 인하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연준의 독립성이 다시 주요 이슈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파월 의장 역시 기자회견에서 연준 독립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통화정책은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 최대고용과 물가안정이라는 목표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정치적 고려가 개입될 경우 시장의 신뢰와 인플레이션 통제 능력에 대한 믿음이 훼손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4월 2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신현송 체제 첫 금통위…한은도 커진 긴축 고민
국내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은행 역시 금리 인하 기대가 약화되는 흐름 속에서 통화정책 방향을 두고 고민이 깊어지는 모습이다. 시장에서는 오는 28일 신현송 총재 체제 첫 금통위가 열리는 점에도 주목하고 있다. 대외 불확실성과 물가 변수 확대 속에서 새 한은 지도부가 어떤 정책 메시지를 내놓을지가 향후 금리 경로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상대 한국은행 부총재가 공개적으로 “금리 인상을 고민할 때”라고 언급하면서 시장 분위기도 달라졌다.
기존에는 내수 부진과 경기 둔화 우려를 고려해 연내 금리 인하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지만 최근에는 성장률과 물가 흐름 모두 예상보다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시장 전망치를 웃돌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역시 반등 흐름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달러·원 환율 상승과 국제유가 급등까지 겹치며 수입물가 부담도 다시 확대되는 분위기다. 원화 약세가 장기화될 경우 에너지·원자재 수입 가격이 상승하면서 국내 소비자물가에도 추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채권시장에서도 경계감은 뚜렷하다. 하건형 신한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 금통위 회의 전까지 확인될 소비자물가와 IT 수요 호조 등을 고려하면 금리는 박스권 상단 부근에서 등락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다”며 “당장 금리 인상 가능성을 반영할 여건은 아니지만 경계심은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장에서는 한은이 실제로 금리를 인상할 가능성 자체는 아직 높지 않다고 보면서도 최소한 기존보다 훨씬 신중한 스탠스를 취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금통위에서는 실제 금리 조정보다 향후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메시지가 더 중요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시장의 관심은 단순한 금리 인하 시점 자체보다 중앙은행들이 다시 물가 대응을 정책 우선순위로 두기 시작했는지 여부에 쏠리고 있다. 중동 리스크와 유가 상승, 공급망 압박이 장기화될 경우 글로벌 금융시장은 다시 ‘긴축의 시대’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