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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벼 품종의 자격

기후위기 시대, 벼 품종은 더 이상 “무엇을 심을 것인가”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어떤 해, 어떤 기상 조건에서도 최소한의 수량과 품질을 지켜 줄 수 있는 리스크 설계 도구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벼 품종의 자격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벼 품종의 자격

국립식량과학원 경지이용작물과 농업연구관 김우재

칼럼

박상래

2026년 07월 02일 14:25

승인

2026년 07월 02일 23:42

기후위기 시대, 벼 품종은 더 이상 “무엇을 심을 것인가”의 문제에 머물지 않는다. 어떤 해, 어떤 기상 조건에서도 최소한의 수량과 품질을 지켜 줄 수 있는 리스크 설계 도구다. 기후변화는 농업의 외부 변수가 아니라 논 안으로 들어와, 벼 재배의 기본 전제였던 ‘평년’을 무너뜨리고 있다.

전남의 한 농가는 몇 해 연속 등숙기 고온을 겪으며 같은 품종·같은 방식으로 농사를 지었지만, 야간 기온이 내려가지 않으면서 완전미율이 줄고 불량립이 늘어 수매 등급이 낮아지는 피해를 겪었다. 이후 고온 적응성이 검증된 품종으로 전환하자 등숙 안정성이 개선되고, 품질과 가격을 일정 수준 회복했다. 이는 고온 적응성이 농가 소득을 방어하는 현실적 장치임을 보여준다.

병해충 양상의 변화도 품종의 중요성을 키우고 있다. 벼멸구, 도열병, 깨씨무늬병 등은 기상 조건에 따라 발생 시기와 강도가 달라지며, 예년보다 빠르고 강하게 나타나 방제 횟수와 비용을 늘리고 일부 지역에서는 수량 감소까지 초래하고 있다. 이제 “약을 얼마나 치느냐”보다 “어떤 저항성을 가진 품종을 선택하느냐”가 더 중요한 질문이 되었고, 복합 저항성을 갖춘 품종 없이는 안정 생산을 기대하기 어렵다.

이러한 압박 속에서 육종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수량과 미질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고온 등숙 조건에서도 전분 구조를 유지해 심복백과 불량립 발생을 줄이고, 주요 병해에 복합적으로 저항하는 계통이 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집중호우와 태풍에 견디는 줄기 강도, 침수 후 회복력을 보이는 내침수성, 가뭄 속에서도 생육을 유지하는 내건성 등 다양한 재해 내성을 한 품종에 담는 시도도 확산되고 있다. 최근에는 저비료 조건 등 기후 시나리오를 반영한 시험 재배로 미래 환경에서의 품종 성능을 사전에 검증하려는 연구도 이루어지고 있다. 기후변화 시대의 육종은 좋은 형질 하나를 더하는 일이 아니라, 나쁜 해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는 데 가깝다.

디지털 기술은 이 속도전을 뒷받침하는 도구다. 드론과 센서로 수집한 생육·도복·병해 데이터를 유전체 정보와 결합해 계통을 선발하는 정밀 육종은, 과거 여러 해의 현장 평가 과정을 데이터 기반으로 앞당기고 있다. 기후변화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품종개발의 속도와 정확도를 함께 높여야 한다.

그러나 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후에 강한 품종의 가치는 연구실 지표가 아니라, 실제 논에서 나타나는 품질 저하와 병해충 발생, 도복과 침수 피해를 얼마나 줄여 주는가로 확인된다. 농가는 어떤 조건에서도 최소한의 수량과 품질을 지켜 주는 품종을 원한다. 따라서 연구는 현장의 문제를 출발점으로 삼고, 성과는 농가가 선택할 수 있는 품종과 재배기술로 돌아가야 한다. 현장의 경험이 연구를 움직이고, 연구 성과가 다시 현장을 지탱할 때 품종 혁신도 힘을 갖는다.

기후변화는 벼 농업의 위기지만, 동시에 벼 품종의 역할을 다시 묻고 육종 혁신을 재촉하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평년이 흔들리는 시대에도 생산과 품질의 하한선을 지켜낼 수 있는 품종이다. 국립식량과학원은 고온, 병해충, 침수, 가뭄 등 복합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품종개발과 현장 검증을 통해 우리 쌀 산업의 안정성과 지속 가능성을 높여 나가고 있다. 변화하는 기후 속에서 농업을 지키는 힘은 결국, 어떤 조건에서도 끝까지 버텨주는 품종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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