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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획] 외인 자금 빠지고 기업은 투자금 확보… 메마른 달러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경상수지가 역대급 흑자를 기록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외인 120조 매도… 역송금 발생

기업들, 환전대신 대미 직접투자

정부, 정책전반 구조 변화 필요

[연합뉴스]

수출이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경상수지가 역대급 흑자를 기록했지만 원·달러 환율은 1998년 외환위기 이후 28년 만에 최고치로 치솟았다. 외국인이 국내 주식을 대거 팔아 달러로 바꿔 나가는 사이 수출기업들은 해외 투자와 결제 수요를 이유로 달러 환전을 미루면서 외환시장에 극심한 ‘달러 가뭄’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수출 호조에도 원화 약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고환율 장기화가 물가와 내수 부담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체감 환율 1600원대… 외국인 매도에 달러 수요 확대

7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지난 6일 오전 2시 마감한 야간 거래에서 원·달러 환율은 장중 1561.5원까지 올랐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3월 이후 17년 3개월 만에 최고 수준이다. 이날 야간 종가는 전일 주간 거래 종가보다 19.9원 오른 1559.0원이었다.

분기 평균 환율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올라섰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2분기 들어 지난 5일까지 평균 원·달러 환율은 주간 거래 종가 기준 1490.98원으로 집계됐다. 1998년 1분기 이후 약 28년 만에 최고치다. 올해 들어 평균 환율도 1477.06원으로 지난해 연평균 환율(1420.97원)을 크게 웃돌았다.

개인이 체감하는 환율은 이미 1600원대를 넘어섰다. 지난 6일 기준 하나은행 고시 공항 영업점의 달러 현찰 매입 환율은 1624.0원이었다. 해외 출장이나 여행을 앞둔 개인은 1달러를 사기 위해 1600원 넘는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다.

환율을 밀어 올린 직접적인 수급 요인으로는 외국인의 거센 주식 매도세가 꼽힌다. 올해 들어 외국인은 유가증권시장에서 국내 주식을 120조원 가깝게 순매도했다. 외국인이 주식 매도 대금을 달러로 바꿔 해외로 반출(역송금)하면서 외환시장의 달러 수요를 자극했다.

정용택 IBK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우리 경제의 취약점을 건드리는 중동 사태와 외국인의 대규모 주식 매도라는 수급 우려가 금리 차이 등 기존의 환율 설명 변수들을 제치고 환율 변동을 주도하고 있다”며 “다만 외국인 주식 매도는 한국 시장 전망을 나쁘게 보고 떠나는 것이라기보다 국내 주식시장에 대한 과매수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포트폴리오 재조정 때문으로 판단된다”고 분석했다.

자료=서울 외환시장

◇ 사상 최대 흑자의 역설… ‘달러 움켜쥐는’ 기업들

문제는 외국인의 역송금 수요를 받아줄 달러 공급이 시장에 전혀 돌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은에 따르면 4월 경상수지는 282억9000만달러 흑자로 월간 기준 역대 두 번째 규모를 기록했다. 통상 경상수지 흑자가 커지면 외환시장에 달러 공급이 늘어 환율이 떨어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수출 증가와 경상수지 흑자가 환율 안정으로 전혀 이어지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하고 있다.

이는 수출기업들의 달러 운용 방식이 과거와 완전히 달라진 영향이다. 과거에는 수출기업이 벌어들인 달러를 국내로 들여와 곧바로 원화로 바꾸는 ‘네고 물량’이 환율 상승을 방어했다. 반면 최근에는 환율 변동성이 극대화된 데다 원자재 결제, 미국 현지 생산설비 확충 수요가 겹치면서 기업들이 달러 환전을 미루는 흐름이 강해졌다.

대미(對美) 직접투자 확대도 환율 하락을 가로막는 악재로 작용한다. 반도체와 배터리 대기업들은 미국 산업정책 변화와 공급망 재편에 맞춰 현지 공장 투자를 늘리고 있다.

전규연 하나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지정학적 위험 확대와 미국 경제지표 호조를 감안해도 원화는 과도하게 절하된 상태”라며 “환율이 하락하려면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와 외국인 자금 유입이 선행돼야 하지만, 대미 직접투자 비중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달러의 국내 공급 유인이 줄어들어 환율 하락 폭이 제한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두개입 약발 제한… 수급 분산 카드 거론

외환당국은 환율 급등세가 이어지자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를 열고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한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관계기관과 회의를 열어 최근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점검했다. 참석자들은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의 이익 전망이 개선되고 경상수지 흑자가 확대되는 등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은 견고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최근 환율 변동성 확대에는 외국인 투자자의 비중 조정과 차익실현뿐 아니라 일부 투기적 거래에 따른 쏠림이 작용했다고 내다봤다.

당국은 과도한 환율 변동성과 일방향 쏠림 현상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특히 역외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를 통한 쏠림이 국내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보고 NDF 거래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역외 NDF 거래를 국내 외환시장 거래로 흡수하는 방안도 검토 대상에 올랐다.

투기적 움직임과 시장교란 의심 행위에 대한 점검도 강화된다. 한은과 금감원은 원화 약세 흐름에 편승한 거래나 시장 기능을 왜곡하는 행위가 있는지 살펴보고 결과에 따라 엄정한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다만 당국 조치가 환율 흐름을 단번에 되돌리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근 환율 상승은 외국인의 주식 매도에 따른 역송금 수요와 수출기업의 달러 보유 수요가 맞물린 실수요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커진 반면 시장에 나오는 달러가 부족해진 만큼, 당국 대응도 특정 환율선을 방어하기보다 쏠림을 막고 달러 수요를 분산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가능성이 크다.

이에 시장에서는 1500원대 환율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대미 투자와 기업의 달러 보유 수요가 이어지는 한 경상수지 흑자만으로 환율이 빠르게 안정되기는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정 이코노미스트는 “단기간에 환율이 급변하며 경제주체들이 그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발생하는 여러가지 부작용이 문제다. 1500원대나 특정 환율 수준에 대한 지나친 의미 부여나 불안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 신용도에 문제가 없다면 단순한 환율 수준 자체는 큰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국이 구두개입에 그칠 것이 아니라 금융·통화·외환정책 전반의 대응 기조를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의종 금융시장연구원 원장은 “외환위기의 유령이 다시금 서울 외환시장을 배회하고 있다”며 “원·달러 환율이 1560원을 돌파하고 공항 환전 창구의 달러 현찰 매입 환율이 1600원을 넘어선 것은 일시적 충격으로 보기 어렵다. 정부는 무기력한 구두개입에 그칠 게 아니라 금융·통화·외환정책 전반의 비상 플랜을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진아 기자 gnyu4@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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