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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획] 베트남, 중화권 기업 인력 '싹쓸이'에 흔들리는 K-제조업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베트남 북부 전자산업의 거점인 박닌성(Bac Ninh), 이곳에 위치한 여러 산업단지에서는 최근 수년간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풍경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화권 기업들의 잇따른 진출로 인력...

[기획] 베트남, 중화권 기업 인력 '싹쓸이'에 흔들리는 K-제조업

기사 이해를 돕기위해 AI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입니다.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베트남 북부 전자산업의 거점인 박닌성(Bac Ninh), 이곳에 위치한 여러 산업단지에서는 최근 수년간 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풍경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화권 기업들의 잇따른 진출로 인력 쟁탈전이 심화하자, 신입사원 한 명을 채용하는 대가로 한 달 치 월급에 육박하는 1,000만 동(약 54만 원)의 ‘사인온보너스(Sign-on Bonus)’가 현금으로 지급되는 것이 지역 채용 표준으로 자리잡은 것이다.

베트남 북부 지역에서는 삼성전자를 비롯해 수많은 우리 기업들이 닦아놓은 비옥한 인적 토양 위로 중화권 자본이 ‘현금 폭탄’을 투하하며 현지 인력을 진공청소기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그렇게 박닌성에서 촉발된 인력 쟁탈전은 이제 호치민시와 동나이성 등 남부 제조 벨트로 빠르게 번지며 우리 기업들을 위협하고 있다.

◇ "전쟁보다 무서운 건 인력난"… 남부 공단의 실질적 위기

그간 인력 쟁탈전이 북부 박닌성을 중심으로 한 국지전 양상이었다면, 이제는 한국 기업들이 수십 년간 터를 잡아온 남부 지역까지 그 영향권에 들어섰다. 현지 진출 기업들은 최근의 상황을 단순한 구인난 이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동나이성(옛 빈프억성) 소재 한국계 제조업체 관계자 A씨는 “인력 수급이 어려운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 인근 중화권 기업들이 높은 임금을 내세워 대대적인 인력 모집에 나서면서 생산직 채용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호치민시(옛 빈즈엉성)의 제조업체 관계자 B씨 역시 “중동 전쟁 여파로 물류비가 오르고 원자재 수급이 꼬이는 대외적 변수보다 더 큰 문제는 공장을 돌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며 “신입 이탈은 말할 것도 없고, 기존 인력들도 하나 둘 떠나고 있다. 중화권 기업 때문이라는 말이 들려와 최근 인사팀에 지역 소재 기업들의 채용 동향을 정밀하게 파악하라고 지시해둔 상태”라고 밝혔다.

◇ "100명 중 10명만"…철저한 실리주의 채용

업계에 따르면 중화권 기업들의 채용 방식은 지독하리만큼 효율 중심적이다. 이들은 우선 대규모 인원을 채용해 현장에 투입한 뒤 단기 역량을 검증해 상위 10%의 이른바 ‘옥석’만 남기고 나머지는 정리하는 식의 서바이벌형 채용을 선호한다. 이렇게 걸러진 정예 인력에게만 파격적인 대우를 집중하는 방식은 현장의 임금 가이드라인을 통째로 흔든다.

이러한 변화는 공단 주변의 풍경마저 바꾸고 있다. 호치민시(옛 빈즈엉성) 소재 한국계 업체 관계자 C씨는 “중국 기업으로 이직했다가 다시 복귀하는 직원이 있을 정도로 인력 이동이 빈번하다”며 “중화권 기업의 유입과 맞물려 중국 음식점 등 관련 서비스 업체들이 속속 생겨나는 것을 보면 자본의 이동이 실질적으로 체감된다”고 설명했다.

◇ 투자 유치 384억 달러, 집행액 276억 달러 시대…‘언어 권력’ 교체의 배경

이러한 인력 이동의 배경에는 베트남 투자 지형의 거대한 지각변동이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 통계국(NSO)의 공식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베트남 내 외국인직접투자(FDI) 총액은 384억2,000만 달러에 달했다. 특히 등록된 자본금 중 실제 자본이 투입된 금액을 나타낸 집행액은 276억2,000만 달러를 기록하며 5년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투자 약속을 넘어 실제 공장이 세워지고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실질적인 인력 수요가 폭발한 것이다.

신규 투자 규모를 보면 싱가포르가 48억4,000만 달러로 1위, 중국은 36억4,000만 달러로 2위를 차지했으나, 신규 사업 허가 건수에서는 중국이 선두를 달렸다. 반면 한국은 8억9,590만 달러로 신규 투자액 순위에서 밀려났다. 한국 기업들이 기존 설비 확충에 집중하는 사이, 중국은 베트남 전역에 수많은 중소형 공장을 새로 세우며 실질적인 신규 고용 수요를 장악해버린 결과다.

◇ 95% 폭증한 중국어 수요, ‘제자리걸음’ 한국어

인력 시장의 헤게모니가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구체적인 통계로 증명된다. 현지 채용 플랫폼 잡OKO(JobOKO)가 약 68만2,000건의 채용 공고를 분석해 내놓은 ‘2025년 급여 보고서’에 따르면, 외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직종 중 중국어의 수요 증가 속도는 타 언어를 압도했다.

지난해 중국어 능통자를 요구하는 새로운 일자리는 약 1만 3,000개에 달했다. 이는 2년 전인 2023년(약 6,600개) 대비 무려 95%나 폭증한 결과다. 반면, 과거 베트남 청년들이 가장 선호하던 한국어는 2023년 2,270명에서 지난해 2,390명 수준으로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반복했다. 단순 생산직이라도 중국어 소통이 가능할 경우 파격적인 가치를 인정받는 시장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베트남 청년들의 실용주의적 선택도 가속화되고 있다.

◇ "선호도 4%의 경고"…채용 전략의 전면 재검토 시점

베트남 현지 구직자들이 우리 기업을 선호하지 않는 것도 문제다. K-Job 전문 채용 플랫폼 사람인베트남이 최근 구직자 7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한국 기업에 대한 취업 선호도는 단 4%에 그쳤다. 이는 일본(8%), 싱가포르(6%), 중국(5%) 등 주요 아시아계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에 대해 사람인베트남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아시아계 타 국가 기업 대비 인지도 및 채용 매력도를 강화하는 전략의 필요성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실제 필자의 주변에서도 영어나 한국어보다 중국어를 학습하는 젊은 친구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정서적인 친밀감보다 당장 높은 급여와 직결되는 중국어를 택하고, 타 아시아 국가 기업들을 더 선호하는 베트남 MZ세대의 흐름은 우리 기업들에게 채용상 어려움으로 직결되는 모습이다.

중화권 자본의 압도적인 신규 프로젝트 공세와 실리적인 채용 시스템이 맞물린 현재의 흐름 속에서, 우수한 인력을 모집하고 유지하기 위한 우리 기업들의 맞춤형 채용 전략 재점검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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