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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획] SK하이닉스, 자사주 소각 한 달 만에 신주 찍는다…15조 '미국행...

차세대 주력 제품인 6세대 HBM4의 주도권을 삼성전자가 가져가면서 위기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맞서 청주 M15X를 HBM 전용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2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올해 설비투자...

[기획] SK하이닉스, 자사주 소각 한 달 만에 신주 찍는다…15조 '미국행...

HBM 1위인데 몸값은 마이크론의 절반, 용인 클러스터 600조 투자 재원 확보 위해 미국 증시 ADR 상장 본격화

[공감신문] 이상민 기자=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에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하기 위한 공모 등록신청서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비공개로 제출했다. 연내 상장을 목표로 신주를 발행해 10조~15조원 규모의 달러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구상이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세계 1위 기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벽을 넘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제 몸값을 인정받겠다는 선언이지만, 자사주 12조원어치를 소각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신주 발행 카드를 꺼내 든 데 대한 논란도 거세다.

SK하이닉스는 24일 SEC에 Form F-1을 제출했다고 25일 공시했다.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이미 미국 ADR 발행 주관사 선정을 위해 주요 외국계 증권사에 입찰제안요청서(RFP)를 배포한 상태다. 발행 규모는 전체 주식의 약 2.4% 수준, 금액으로는 10조~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해진다. 공모 규모와 방식, 일정 등 세부 사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으나 SEC 심사 결과와 시장 상황, 수요예측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종 상장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다.

이번 ADR 상장 추진의 배경에는 실적과 기업가치 사이의 극단적 괴리가 자리한다. SK하이닉스의 지난해 글로벌 HBM 시장 점유율은 57%로, 경쟁사 마이크론(21%)의 두 배를 넘어선다. 영업이익 역시 47조2063억원으로 마이크론(24조2000억원)을 압도한다. 그러나 시장이 매기는 값은 정반대다. SK하이닉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약 5.7배에 불과한 반면, 마이크론은 12.1배다. 같은 이익을 내도 시장이 인정하는 기업가치가 절반에 머문다는 뜻이다. 단순 계산으로 SK하이닉스가 마이크론 수준의 PER만 인정받아도 주가는 현재의 두 배 이상인 190만원대까지 뛸 수 있다는 분석이 증권가에서 나온다.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로 불리는 이 현상은 한국 증시의 고질적 문제다. 자본시장연구원이 45개국 상장기업 자료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0년간 국내 상장기업의 주가-장부가 비율은 선진국의 52%, 신흥국의 58%에 불과하며 분석 대상 45개국 가운데 41위에 머물렀다. 미흡한 주주환원, 취약한 지배구조, 회계 불투명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SK하이닉스가 미국 증시라는 '심판대'에 직접 올라서겠다고 나선 것은 이 구조적 저평가를 기업 스스로 깨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기도 하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열린 엔비디아 연례 개발자회의 'GTC 2026'에서 ADR 상장을 공식화했다. 최 회장은 "한국 주주뿐만 아니라 글로벌 주주들에게 노출돼 더 글로벌한 회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같은 자리에서 그는 "인공지능(AI)으로 인한 수요가 공급을 계속 앞지르면서 전 세계 반도체 웨이퍼 부족 현상이 2030년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내놓았다. AI 시대의 핵심 부품을 쥐고 있는 기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제값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이 이번 결정의 출발점인 셈이다.

그러나 이번 ADR 상장이 순수한 기업가치 재평가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 이면에는 천문학적 규모의 투자 재원 확보라는 절박한 현실이 놓여 있다. SK하이닉스가 경기도 용인에 구축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4기 팹의 투자 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019년 발표 당시 2028년까지 128조원이 들 것으로 예상됐던 비용은 공정 미세화와 원재료값 상승 영향으로 600조원 규모까지 확대될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 자신도 "만지면 만질수록 투자 규모가 늘어난다"고 토로할 정도다. 국내 금융권 대출이나 채권 발행만으로는 이 막대한 자금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ADR이라는 '재무적 승부수'를 꺼내게 만든 배경이다.

위기감도 한몫한다. SK하이닉스는 그동안 엔비디아라는 강력한 우군을 바탕으로 HBM 시장을 장악해 왔으나 최근 판도가 흔들리고 있다. 차세대 주력 제품인 6세대 HBM4의 주도권을 삼성전자가 가져가면서 위기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이에 맞서 청주 M15X를 HBM 전용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20조원 이상을 투입하고, 올해 설비투자 규모를 30조원대 중반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2027년으로 예정된 용인 클러스터의 첫 클린룸 가동 시점도 당초 5월에서 2월로 3개월 앞당겼다. 이를 위해 용인 1기 팹 신규 시설 투자비 21조6000억원을 2030년 말까지 우선 집행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이다. SK하이닉스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회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지난달 9일 보유 자사주 2.1%, 금액으로 12조2400억원 상당을 전격 소각했다. 주주 환원의 적극적 의지를 보여주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불과 한 달여 만에 신주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쪽에서 주주가치를 높이겠다며 자사주를 태우고, 다른 쪽에서 새 주식을 찍어내 기존 주주의 지분 가치를 희석시키는 형국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취지에 역행한다는 일각의 비판은 이 대목에서 힘을 얻는다.

'역유입 리스크'도 간과할 수 없는 변수다. 현재 미국에 ADR을 상장한 국내 기업들의 성적표를 보면 '미국 프리미엄'은커녕 대부분 한국보다 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3월 20일 기준 KB금융은 미국에서 한국 대비 2.99% 낮은 가격에, 신한지주는 5.45%, 포스코홀딩스는 2.76% 각각 디스카운트 상태로 거래 중이다. 이 격차를 이용해 미국에서 ADR을 반납하고 한국 주식(원주)으로 바꿔 국내 시장에서 매도하는 이른바 '역유입'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해외용으로 묶여 있던 물량이 국내 유통 시장으로 쏟아질 경우 주가 하락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SK하이닉스의 경우 기존 상장사들과는 궤를 달리할 것이라는 낙관론도 만만치 않다. 금융지주사나 전통 산업군과 달리 SK하이닉스는 전 세계 AI 반도체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미국 현지 투자자들 사이에서의 인지도가 이미 높다. ADR이 필라델피아반도체지수(SOX) 등 글로벌 주요 지수에 편입될 경우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거대 패시브 자금이 자동으로 유입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대만의 TSMC가 1997년 뉴욕증권거래소에 ADR을 상장한 이후 글로벌 독점 지위를 강화하며 기업가치를 폭발적으로 키운 선례는 SK하이닉스가 벤치마킹하는 모델이다.

결국 이번 ADR 상장의 성패는 SK하이닉스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AI 반도체 핵심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각인시킬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20년 묵은 숙제에 기업이 먼저 답을 내놓은 것은 의미가 있으나, 그 답이 기존 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는 시장의 시선도 무겁다. 대형 IB 출신 반도체 전문 애널리스트는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이 성공하면 TSMC나 엔비디아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자본 동원력을 갖추게 되지만, 신주 발행에 따른 지분 희석과 역유입 리스크를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향후 주가 흐름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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