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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자수첩] HBM '가수요' D램 '반사수요' SSD는 '진짜 수요'

삼성전자의 57조 영업이익은 AI 역량의 결과라기보다 이 반사수요의 덕을 본 측면이 크다. 문제는 이 수요가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HBM 투자가 안정화되면 범용 D램 가격은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반사수요의...

[기자수첩] HBM '가수요' D램 '반사수요' SSD는 '진짜 수요'

AI 칩 열풍의 '파급 효과'

경제학의 시선으로 보니

칩플레이션 주범 드러나

최태원 SK그룹 회장(오른쪽)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 2023년 6월 21일 프랑스 파리 이시레물리노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열린 2030 부산세계박람회 공식 리셉션에서 함께 목발을 들고 미소짓고 있다. /연합뉴스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수요는 하나가 아니다. 증권가 이야기를 들으면 HBM이 연산의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다르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묶어 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HBM 수요는 AI 가속기를 만들기 위한 파생적 필요일 뿐이며 시장을 실제로 움직이는 축은 따로 존재한다.

HBM이 촉발한 D램 가격 상승과 AI 모델이 만들어내는 SSD 수요는 서로 다른 경제적 메커니즘 위에서 작동한다. 이 세 가지 흐름을 경제학의 시각으로 분리해 보지 않으면 현재의 AI 반도체 시장을 정확히 읽기 어렵다.

HBM '가수요'(Speculative Demand)

미래 기대가 만든 칩플레이션의 주범

HBM 수요는 근본적 필요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만든 측면이 크다. 빅테크가 AI 경쟁에서 뒤처질까 두려워 과잉 주문을 쏟아내는 현상은 전형적인 '가수요'다. 실제 사용될 물량보다 더 많은 HBM이 창고에 쌓이고 있는 이유다. 문제는 이 가수요가 웨이퍼 자원을 HBM에 집중 투입하게 만들어 오히려 범용 D램 시장을 교란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칩플레이션의 진짜 원인이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하나 더 있다. HBM 가수요는 HBM 자체의 필요라기보다 'HBM을 못 구할까 봐' 조여드는 심리가 만든 기대의 자기충족적 예언에 가깝다. 빅테크가 실사용량보다 2~3배 더 주문하는 안전 재고 전략이 오히려 실제 부족을 만들어내는 구조다. 휴지 사재기가 실제 품귀를 유발했던 사례와 유사하다. 문제는 이 가수요가 웨이퍼 생산 라인을 HBM으로 고정시켜 수요가 꺾일 경우 공급 과잉으로 급격히 전환될 위험을 키운다는 점이다.

D램 '반사수요'(Reflected Demand)

한쪽 호황이 부른 공급 부족 현상

D램 수요는 AI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HBM에 웨이퍼가 빼앗기면서 범용 D램 공급이 줄어든 결과로 가격이 올랐다. 이것은 '반사수요'에 해당한다. 한 시장의 호황이 다른 시장의 공급을 줄여 가격을 상승시키는 현상이다. 삼성전자의 57조 영업이익은 AI 역량의 결과라기보다 이 반사수요의 덕을 본 측면이 크다. 문제는 이 수요가 일시적이라는 점이다. HBM 투자가 안정화되면 범용 D램 가격은 다시 내려갈 가능성이 높다.

반사수요의 특징은 실제 수요 증가처럼 보인다는 데 있다. 일반적으로는 AI 확산으로 D램 수요가 늘었다고 인식하지만 실제로는 HBM으로 웨이퍼가 이동하면서 공급이 줄어 가격이 상승한 결과다. 이는 특정 업종의 호황이 인접 시장 가격을 끌어올리는 전형적인 구조다. 수요가 늘어서가 아니라 공급이 줄어서 오른 것이다. 이 구조를 구분하지 못하면 투자 판단이 왜곡될 수 있다.

SSD '진짜 수요'(Real Demand)

파라미터를 어디 보관하느냐의 문제

HBM과 낸드의 격도를 이미지한 모습 / 제미나이 나노바나나2

진짜 수요는 eSSD(기업용 SSD)에서 나온다. 조 단위 파라미터를 저장해야 하는 AI 모델의 구조적 특성이 만들어낸 근본적 필요다. 이 수요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AI 인프라가 성장할수록 함께 증가하는 구조적 흐름이다. 경제학에서 말하는 '진짜 수요'는 가격이 올라도 쉽게 줄어들지 않는 특성을 가진다. SSD 시장이 바로 이 범주에 해당한다. 실제로 가격이 크게 올랐음에도 수요는 오히려 확대됐다.

이 수요의 본질은 데이터의 축적 구조에 있다. AI 모델은 학습과 파인튜닝을 반복할 때마다 새로운 가중치 버전을 남긴다. 기존 모델을 쉽게 삭제하지 않는 한 데이터는 계속 쌓인다. 이는 설계도를 계속 보관하는 구조와 유사하다. 설계도가 늘어날수록 이를 저장할 공간도 함께 증가한다. 이 점이 SSD 수요를 지속적으로 확대시키는 근본 원인이다.

결국 지금의 AI 반도체 시장은 하나의 성장 스토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성격의 수요가 동시에 얽힌 복합 구조다. HBM '가수요'는 기대가 꺼지는 순간 빠르게 식을 수 있고 D램 '반사수요' 역시 공급 정상화와 함께 되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시장이 이 두 흐름을 구조적 성장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 SSD '진짜 수요'는 AI 인프라의 확장과 함께 장기적으로 누적될 수밖에 없는 영역이다. 지금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커 보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지속되느냐'다. 단기 과열과 구조적 수요를 구분하지 못하면 투자 판단은 물론 산업의 방향성 자체를 오판할 수 있다. AI 시대의 진짜 경쟁은 연산이 아닌 저장에서 시작되고 있다. 창고 전쟁은 이제 시작된 단계다.

☞가수요(Speculative Demand) = 미래 가격 상승 기대나 공급 불안 심리에 의해 실제 필요 이상으로 발생하는 수요를 의미한다. 이는 현재 소비가 아니라 미래 확보를 위한 선점 행동으로 가격 신호를 왜곡하고 공급 배분을 비효율적으로 만든다. 특히 반도체처럼 생산 리드타임이 긴 산업에서는 가수요가 설비 투자와 생산 구조까지 왜곡시켜 이후 급격한 공급 과잉이나 가격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을 내포한다.

또한 가수요는 자기강화적 성격을 가진다.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가 주문을 늘리고 늘어난 주문이 실제 공급 부족을 유발하며 그 부족이 다시 가격 상승 기대를 강화하는 순환 구조를 만든다. 이 과정에서 시장은 실수요와 괴리된 상태로 과열되며 결국 기대가 꺾이는 순간 급격한 조정이 발생한다. HBM 시장에서 나타나는 과잉 주문과 웨이퍼 쏠림 현상은 이러한 전형적인 가수요 메커니즘의 사례다.

여성경제신문 김성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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