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흔들리면, 인재도 설 곳이 없다 [기자수첩]
삼성전자 노사 평행선...성과급 동상이몽
HBM 경쟁 '골든타임' 속 내부 갈등 장기화 우려
이유나
기자
2026-04-02 06:00:01
사진제공=뉴스1
지난달 31일 삼성전자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는 '인재를 잃으면 삼성전자 미래 없다'는 입장문을 발표했다. 성과급 제도의 투명화와 상한 폐지의 제도화, 종합반도체 기업에 걸맞은 인재 투자 정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반도체 인재 확보는 기업 경쟁력을 넘어 국가 간 경쟁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미국과 중국 등 주요국들은 보조금과 세제 혜택까지 동원하며 글로벌 인재 유치 전쟁에 나서고 있다. 국내에서도 핵심 인력의 해외 이동과 기술 유출 우려가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국내 반도체 인재를 지키는 일은 이제 기업의 경쟁력을 넘어 생존 문제에 가깝다.
삼성전자는 이번 노조와의 집중교섭에서 상당한 수준의 보상안을 제시했다. DS(반도체) 부문이 국내 업계 1위를 달성할 경우 경쟁사 이상의 성과급 재원을 쓰겠다고 했고, 기존 연봉 50% 상한을 넘는 특별 포상도 가능하도록 했다. 적자에 시달려온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성과 개선 시 최대 75% 수준의 성과급을 보장하겠다는 방안도 포함했다.
여기에 6%대 임금 인상, 저금리 주택자금 대출, 출산 지원 확대, 자사주와 복지 포인트까지 더하면, 단순한 임금 협상을 넘어 총 보상 구조를 손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SK하이닉스와의 보상 격차를 의식한 대응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그러나 노조는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질적인 보상보다 성과급 상한 폐지에 방점을 뒀다. 처음에는 영업이익 15% 재원화를 요구하다가, 최종적으로는 영업이익 10%를 재원으로 하되 이를 부문 40%, 사업부 60%로 배분하는 구조의 제도화를 요구하며 교섭 중단을 선언했다.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5월 총파업에 돌입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노조의 요구가 특정 사업부에 집중되면서 전사 구성원들의 이해를 균형있게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특히 주택대부제도 신설 등은 임직원 다수가 체감할 수 있는 보상안이였지만, 교섭 중단으로 복지 패키지 도입 역시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현재 삼성전자 내 최대 노조인 초기업노동조합 삼성전자 지부 조합원 중 약 80%는 반도체 부문에 집중돼있다. 이런 구조 속에서 성과급 논의가 반도체 사업부 중심으로만 흐르면서, 다른 사업부의 상대적 박탈감은 더 커지고 있다.
재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삼성전자가 HBM 주도권 탈환 등 사활을 건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는 '골든타임'에 노조가 기업의 전략적 유연성을 제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SK하이닉스에 뒤처졌던 삼성전자는 HBM4를 중심으로 반등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지만, 글로벌 환경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특히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연구개발(R&D)과 시설투자가 적기에 이뤄져야 하는 '타이밍 산업'이다. 투자 시점과 시장 사이클이 어긋나면 막대한 손실로 직결된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이익을 성과급으로 고정배분할 경우, 불황기에 대응할 여력은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노사 갈등은 외부 경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더 큰 리스크로 작용한다. 미국을 대표하던 자동차 기업 제너럴 모터스(GM)는 지난 2009년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금융위기와 경쟁력 약화 속에서 높은 임금과 복지 부담 등 구조적 문제가 누적된 결과였다. 특히 노조와의 협상 과정에서 형성된 퇴직자·가족 대상 의료보험 등 이른바 '유산비용(legacy cost)'이 경영 부담을 크게 키웠다. 같은 해 크라이슬러 역시 비슷한 길을 걸었다.
노조가 보상체계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을 문제 삼을 수는 없다. 다만 회사가 총 보상 확대의 여지를 열어둔 상황에서, 성과급 상한 폐지에만 초점이 쏠려 현실적인 접점을 찾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기업의 경쟁력은 사람에서 나온다. 그러나 기업이 흔들리면 인재도 설 자리를 잃는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격화되는 국면에서, 내부의 균열은 경쟁사에 기회를 내주는 일이다. 지금 삼성전자에 필요한 건 노사간 소모적 대립이 아니다. 미래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답은 이미 나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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