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동
2026년 설 연휴, 극장가에서 상영 중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는 세조와 단종, 그리고 충신 엄흥도의 이야기를 조명했다. 세조는 조카의 왕위를 빼앗은 군주로 기억되지만,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을 현실 속에 뿌리내리게 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한글로 불경을 간행하고 전국에 보급했다. 그 결과 훈민정음은 단순한 ‘문자’에 머물지 않고, 백성의 삶 속에서 쓰이는 살아 있는 문화가 됐다.
위대한 발명이라도 쓰이지 않으면 사라진다. 기술도 마찬가지다. 현장에서 사용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양돈산업 역시 이 교훈 앞에 서 있다.
현재 우리나라 양돈 기술 수준은 세계적으로 손색이 없다. 돼지의 DNA를 분석해 우수한 형질을 가진 개체를 미리 선발하는 유전체 선발 기술은 세대 간격을 단축하고 개량 효율을 약 두 배 이상 높였다. 인공지능(AI) 카메라는 돼지의 체중을 실시간으로 측정하고 이상 징후를 24시간 감시한다. 체형 분석을 기반으로 사료량을 자동 조절하는 정밀 사양 기술은 농장 관리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환경 분야에서도 분뇨에서 발생하는 악취와 온실가스를 줄이는 친환경 사료 기술과 미생물 활용 기술이 개발됐다. 항생제를 대체하는 박테리오파지 기술은 질병 제어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 만성호흡기증후군(PRRS)에 저항성을 가진 돼지를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 가위(편집)기술도 연구 단계에서 성과를 거두었다.
연구 기반은 충분히 다져졌다. 이제 과제는 분명하다. 기술 고도화를 넘어 산업 전환을 완성하는 단계로 진입해야 한다는 점이다.
2026년은 ‘기술 개발의 해’가 아니라 ‘기술 확산의 원년’이 되어야 한다. 고곡물가, 환경 규제 강화, 동물복지 요구 확대, 농촌 고령화라는 구조적 변화 속에서 기술은 선택이 아니라 산업 지속가능성의 핵심 기반이 되었다. 생산성 향상과 환경 부담 저감, 질병 대응력 강화는 국가 식량안보와 직결된 문제다. 양돈산업의 경쟁력은 곧 국가 농업의 경쟁력이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연구기관을 넘어 산업 전환의 실천 기관으로 역할을 강화했다. 인공지능 기반 임신진단 기술은 시범사업을 통해 현장에 적용했다. 농가가 직접 활용하며 효과를 검증하도록 지원 체계를 구축했다. 스마트 사양관리 기술은 교육과 실증을 병행하며 확산 기반을 마련했다.
품종 경쟁력 강화도 전략적으로 추진했다. 토종의 풍미와 육질, 외래종의 성장성을 결합한 ‘우리흑돈’과 ‘난축맛돈’은 민간 종돈장과 협력 체계를 구축해 보급을 확대했다. 이는 단순한 품종 개발을 넘어 국산 종돈 경쟁력을 높이는 산업 전략의 일환이다.
또한 동물복지형 사육 환경 개선, 친환경 사양기술 확산, 스마트팜 장비 도입 확대 등 정부 정책과 연계한 지원 체계를 강화했다. 기술 보급은 단순한 장비 지원이 아니라 산업구조를 정교하게 전환하는 과정이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은 연구, 실증, 교육, 정책 연계를 아우르는 통합 확산 모델을 구축했다.
기술은 연구실에서 완성되지 않는다. 돈사 현장에서 활용될 때 비로소 산업의 힘이 된다. 세조가 한글 서적을 간행해 백성의 손에 직접 전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한글을 자유롭게 쓰고 있듯, 양돈 기술 또한 농가의 일상 속에서 사용될 때 그 가치가 온전히 드러난다.
2026년은 우리 양돈산업이 기술 중심의 체질로 한 단계 더 도약하는 전환의 시점에 놓여 있다. 국립축산과학원은 연구 성과가 현장에서 안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현장 실증과 확산 체계를 더욱 촘촘히 다듬고 있다. 기술이 논문에 머무르지 않고 산업 경쟁력으로 이어지도록 연결하는 일, 그것이 우리 기관이 맡은 역할이다.
더 나은 생산성, 더 낮은 환경 부담, 더 건강한 사육 환경을 향한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다. 그 흐름이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자리 잡도록 함께 준비해 나가고 있다.
/김시동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 양돈과 과장
전북중앙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