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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기름값 뛰고 경기는 식는다…'4高 쇼크' 다시 오나

삼성전자 실적에서도 나왔듯이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사이클 자체가 여전히 강한 부분이 다행스럽게도 최근 고유가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휴전 이후 상황이 또 어떻게 될지...

기름값 뛰고 경기는 식는다…'4高 쇼크' 다시 오나

전문가 5인이 전망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

중동전쟁으로 국제유가가 치솟은 가운데 지난 3월 29일 경기 구리시 한 주유소에서 차량들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주유를 하기 위해 줄지어 대기하고 있다. photo 박상원 조선일보 기자

중동전쟁 여파로 한국 경제에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4고(高)' 악재에 따른 스태그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상승)의 공포가 드리우고 있다. 국책 연구기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4월 7일 발표한 '경제동향 4월호'에서 미국·이란 전쟁으로 경기 하방 위험이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진단했다. 경제성장률이 예상보다 더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이다. 특히 석유류 가격이 대폭 상승했고 향후 원유와 밀접한 부문을 중심으로 물가상승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금융시장은 중동 전쟁 장기화 우려와 이에 따른 유가 급등세 지속 등 불확실성이 확대되면서 높은 변동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른 국책 연구기관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역시 지난 4월 1일 발간한 '미·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충격의 주요국 파급효과' 보고서를 통해, 전쟁이 국제 유가와 세계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조기 종전·휴전 △호르무즈해협 봉쇄·분쟁 장기화 △에너지 시설 타격·확전 등 3가지 시나리오를 통해 분석했다. 2027년 4분기 기준 조기 종전 때는 배럴당 90달러(약 13만원), 봉쇄 장기화 때는 배럴당 117달러(약 17만원), 에너지 시설 타격 시 배럴당 174달러(약 26만원)로 전망했다. 3개 시나리오 모두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인 배럴당 63달러(약 9만원)로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봤다. KIEP는 보고서에서 "한국의 나프타 수입 중 중동 비중은 약 34.4%에 달하고, 카타르 시설 피격 시 복구에만 3〜5년이 소요될 수 있어 중장기적 에너지 안보 강화가 필요하다"며 "브라질에서 원유 수입 확대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런 보고서에는 공통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를 담고 있다. 정부는 이런 우려에 선을 긋고 있다. 구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4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아직은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은 아니라고 보인다"고 일축했다. 김민석 국무총리도 지난 4월 6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야당의 스태그플레이션 초기 단계라는 지적에 대해 "중동 상황에 따른 외부 변수로 인한 일시적 변동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반박했다. 그렇다면 전문가들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을까.

미국이 호르무즈해협 역봉쇄에 나선 지난 4월 13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미국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표시돼 있다. photo 뉴스1

"스태그플레이션 아니지만 방향성 존재"

오건영 신한은행 패스파인더 단장은 이렇게 분석했다. "지금이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하는 건 과한 해석이다. 하지만 방향성이 그렇게(스태그플레이션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게 우려스럽기 때문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고용시장 자체 실업률이 높아지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풀다운되고 있고, 미국 소비자물가지수가 에너지 가격 상승을 그대로 받으면 물가에서 우려스러운 점은 분명히 나타나게 될 것이다. 성장률은 둔화될 가능성이 높은데 물가는 튀어오르게 되니까 스태그플레이션의 방향성을 가리키는 건 맞는 것이다. 다만 휴전으로 채권 금리와 환율이 내려가고 주가가 뛰는 등 금융시장이 먼저 반응하는 것을 보면, 전쟁이 조기에 종식될 경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은 매우 낮아지게 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이렇게 전망했다. "전쟁이 얼마나 장기화될지가 변수일 텐데 최소한 1~2개 분기 정도는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실적에서도 나왔듯이 전 세계적으로 인공지능(AI) 사이클 자체가 여전히 강한 부분이 다행스럽게도 최근 고유가 충격을 어느 정도 상쇄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휴전 이후 상황이 또 어떻게 될지, 호르무즈해협 봉쇄 여부가 과연 지속이 될지 아닐지가 향후 스태그플레이션 흐름에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본다."

앞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중동 전쟁 리스크를 반영해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1%(지난해 12월 전망)에서 1.7%(올해 3월 전망)로 낮추는 한편, 물가상승률 전망치를 2.7%로 상향 조정하며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경고했다. 전체 경제 지표상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아니더라도 장바구니 물가와 서민 생활 등 체감 경기는 사실상 스태그플레이션에 가까운 '괴리'가 발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따른다.

다음은 천소라 인하대 경제학과 교수(전 KDI 경제전망실 전망총괄)의 진단이다. "에너지 문제는 근본적 원인인 전쟁이 끝나야 해소되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실물 경제 파급이 당장은 보이지 않더라도 영향을 미치는 건 확실하기 때문에 수요 대책까지 장기화에 대한 대비를 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원유 가격이 올라 소비자물가 상승률로 전환되는 데에 약 3~4주 걸린다. 우리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국제적으로 결정되는 가격에는 이미 어느 정도 반영이 된 지수다. 휴전으로 유가가 떨어졌다고 해도 그 이전 수준과 비교하면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3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도 시장에서 어느 정도 예상했다고 해서 그게 낮은 수준은 아니다. 기대인플레이션과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방향성을 볼 수 있다. 앞으로 에너지나 원자재 가격 레벨 자체가 떨어지는 걸 사실 기대하기 어렵다. 한국 경제는 양극화된 케이(K)자 성장을 보이고 있다. 소비자와 자영업자 등 서민 체감 경기는 나쁘지만 전체 지표상으로 관측하기는 어려운 큰 괴리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세부 지표들을 구별해서 더 잘 살펴야 한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생산비용이 올라가는 '공급축 쇼크'는 경기가 침체되면 물가가 내려가고 활성화되면 오르는 수요곡선 이동과 반대다. 1970년대 '오일 쇼크'가 왔을 때 수요는 그대로인데 원가가 오르면서 물가가 크게 오른 현상이 전형적인 스태그플레이션이다. OECD가 최근 우리나라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올리고 경제성장률은 내린 건 일종의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지만, 완전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아니고 약간의 스태그플레이션으로 볼 수 있다. 미·이란 전쟁이 과연 얼마나 가느냐가 변수지만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도 있어 곧 끝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오른 유가 여파로 국내 물가도 두세 달 정도 오를 순 있지만, 유가가 안정되면 물가도 같이 안정화되면서 전면적인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진입하진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가 당분간 금리를 인하 또는 인상할 유인은 아직 없고 동결할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미국과 이란의 세부 협상이 휴전 기간 동안 잘 타결돼 종전하더라도, 국제 유가는 전쟁 이전보다 다소 높은 상태로 유지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결국 소비자 물가 부담은 당분간 가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미국과 이란의 협상) 타결이 어떤 식으로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지만, 유가는 배럴당 80달러 정도로 전망된다"면서 "그러면 아무래도 전반적으로 물가가 높아지고 우리나라 내수가 그렇게 빨리 살아나지 못하면서 '준(準)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 올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최악은 전쟁이 장기화되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추세가 더욱 가팔라질 수 있다는 것"이라며 "환율도 유가를 따라가는데, 1450원에서 1500원으로 50원 오르는 건 많아 보이지 않아도 원자재 등 수입 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짚었다.

오 단장은 "전쟁 이전 60달러였던 유가가 전쟁 발발 후 110~120달러까지 뛰었는데, 전쟁이 끝나도 다시 60달러대로 돌아오긴 쉽지 않거나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며 "세계 경제 전체가 높은 에너지 가격과 그만큼 늘어난 물가를 일정 수준 감당해야 하는 일종의 '전쟁에 대한 비용'인 셈"이라고 봤다. 이어 "소비자물가지수가 오르면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 심리를 '고착화'시키는 문제가 생긴다"면서 "고착화는 심리적 요인과도 맞물려 있는 고질병으로 치료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재발을 잘하기 때문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26.2兆 추경, 속도보다 '방향' 고민해야"

미국의 물가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국내 물가지수도 동반 상승할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 주도로 여야가 합의한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른바 '전쟁 추경'으로 정부는 예산 4조8000억원을 들여 소득 하위 70% 국민 약 3256만명에게 1인당 10만~60만원의 '고유가 피해 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에너지 수급 위기 대응을 위한 석유 최고가격제 지원 예산 4조2000억원을 마련하고, 대중교통비 부담 완화를 위해 'K-패스'도 한시적으로 50% 할인으로 확대한다. 하지만 추경으로 유동성이 늘면 물가 상승이 수반되기 때문에, 재정 투입 분야 등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다.

주 본부장은 "물가를 생각하면 사실 추경하기엔 좀 불안하지만, 공급망이 끊기고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 '셧다운' 우려가 있다"면서 "둘 중에 하나는 포기해야 한다면 인플레이션의 압박을 감수하더라도 취약계층 지원 등을 위한 추경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오 단장은 "미국도 물가가 오르지만 작년에 OBBBA(One Big Beautiful Bill Act, 트럼프가 추진한 초대형 감세·재정 패키지 법안)로 감세안을 통과시켰는데, 세금을 돌려주는 게 어느 정도 하단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며 "물가가 오르면 결국 서민 경제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성장의 급격한 둔화를 제어하기 위한 차원에서 재정의 지원과 노력은 필요하다"고 했다. 박 연구원도 "추경으로 현금 지원금이 나오면서 소비 등을 기본적으로 받쳐줄 수 있는 부분이 있어 아무래도 국내외 경기 하방을 일부 막아줄 것"이라며 "추경은 궁극적으로 추세를 바꿀 수 있는 게 아닌 일단 방어막 정도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봤다.

반면 강 교수는 "정부가 추경으로 시중에 현금을 풀어버려서 물가상승 요인이 더 커졌다"면서 "만약 세수가 생겼으면 적자 편성한 예산에 갚는 게 우선이고, 전쟁 때문에 추경한다는 건 옹색한 면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선거 시즌엔 항상 돈이 풀리는데, 만약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면 중앙은행이 이자율(기준금리)을 올리고 정부는 긴축 재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 교수는 "석유 최고가격제 실시와 전기료 인하 또는 동결에 따른 적자분은 재정으로 보전할 필요가 있지만, 소득 하위 70%가 과연 모두 피해 계층인가"라며 "예를 들어 소비쿠폰을 주면 외식 물가가 오르고, 학원비를 보조해 주면 일제히 학원비가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또 "무분별한 자영업자 지원 역시 오히려 경쟁력 없이 시장에 머물면서 도덕적 해이로 빚만 더 늘어가고 나갈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악순환 측면도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어 "큰 틀에서 경기 하방 압력을 줄이기 위한 필요성은 있지만, 장기전으로 갈 경우 재정 투입은 제한적이고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면서 "재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선별적으로 필요한지와 효과로 연결되는지 등을 면밀하게 살펴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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