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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고]핵잠 연료, 무기한 기다릴 수 없다… 문근식의 ‘핵잠 연료확보 전략’

미국과의 핵추진잠수함(핵잠) 연료 협력이 무기한 지연되거나 미국의 국내 정치로 중단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응할 국가전략사업을 다른 나라의 정치 일정에 끝없이 맡길 수는 없다.

[기고]핵잠 연료, 무기한 기다릴 수 없다… 문근식의 ‘핵잠 연료확보 전략’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문근식 교수 제공

미국과의 핵추진잠수함(핵잠) 연료 협력이 무기한 지연되거나 미국의 국내 정치로 중단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북한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위협에 대응할 국가전략사업을 다른 나라의 정치 일정에 끝없이 맡길 수는 없다. 정부는 협상의 시한을 정하고 대체 공급망과 국내 역량 확보를 병행해야 한다. 동맹을 존중하는 것과 국가안보에 필요한 결정을 무기한 유보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출발점은 우리의 목적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한국이 확보하려는 것은 핵무기가 아니라 잠수함의 추진 동력이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핵무기와 기타 핵폭발장치를 금지하지만 핵추진잠수함을 일률적으로 금지하지 않는다. 한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협정 제14조에도 금지되지 않은 군사활동을 위한 절차가 마련돼 있다. 정부는 이 근거를 토대로 비핵폭발 목적의 해군 추진을 추진할 수 있는 제도적 경로를 적극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그렇다고 안보의 절박성을 설명하는 것만으로 모든 제한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평화적 이용 조건으로 도입한 핵물질을 공급국 동의 없이 군사용으로 전환할 수는 없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조건을 정확히 확인하고 필요한 동의를 얻거나, 해군 추진 용도를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별도의 공급 약정을 체결하는 것이다. 기존의 제약을 이유로 손을 놓아서도 안 되지만, 제약을 무시한 채 사업을 시작해서도 안 된다.

첫째, 미국에 협력 여부와 실행 일정을 문서로 제시하도록 요구해야 한다. 공급 주체와 연료 형태, 수출 허가 절차, 의회 관련 절차와 예상 일정을 구체화해야 한다. 필요한 시점까지 실행 가능한 합의가 나오지 않으면 대체 협상을 확대한다는 방침도 사전에 밝혀야 한다. 시한 없는 협의는 상대에게 결정의 부담을 주지 못하면서 우리 사업의 일정만 소진시킨다.

둘째, 제3국과의 공급 협상은 지금 시작해야 한다. 공급 후보국에는 단순한 판매 의향이 아니라 한국의 해군 추진 용도를 허용할 정치적 의사와 법적 권한이 있는지 물어야 한다. 원료부터 농축과 연료 제작까지 어느 단계에서 누구의 승인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실제 계약으로 연결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성해야 한다. 대체 공급국의 이름을 나열하는 수준을 넘어 정부 간 예비협의와 법률 검토에 착수해야 한다.

셋째, IAEA와의 협의를 공급 협상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저농축 사용과 핵폭발 목적의 전용 금지, 핵물질 관리 및 보고 원칙을 명확히 제시하면서 군사기밀을 보호할 절차를 협의해야 한다. IAEA와 합의할 사항과 공급국이 승인할 사항을 구분해 각각의 협상에 책임자와 일정을 부여해야 한다. 어느 한쪽의 협의가 다른 쪽의 지연을 정당화하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

넷째, 국내 핵연료 공급 역량을 장기 국가전략으로 검토해야 한다. 해외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연구·인력·산업 기반을 확보하되, 농축과 재처리까지 모두 핵잠 연료의 필수 조건인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 된다. 특히 재처리는 저농축우라늄 연료 확보에 반드시 필요한 공정이 아니다. 각 역량의 안보상 필요성, 비용, 소요 기간과 국제적 의무를 따져 우선순위를 정해야 한다. 자립을 선언하는 것보다 실제 공급 능력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공급 제한이나 제재에 대한 대비도 사업계획에 포함해야 한다. 먼저 수출 허가 거부, 계약상 공급 중단, 금융·운송 제한, 유엔 차원의 제재를 구분해야 한다. 각각 결정 주체와 법적 근거가 다르기 때문이다. 부당한 제한에는 공식 이의제기와 적용 가능한 분쟁해결 절차를 활용하고, 허용되는 면제와 허가를 확보하며, 비제재 공급원과 운송·보험 서비스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국내적으로는 적법하게 확보할 수 있는 연료와 핵심 부품의 비축, 공급처 다변화, 계약 중단에 대비한 재정 지원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민간 발전용 연료의 공급 안정성도 함께 점검해야 한다. 핵잠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전력 생산과 원전 수출에 미칠 영향을 사전에 평가하고 완충책을 갖춰야 한다. 제재를 견딜 능력은 구호가 아니라 재고와 계약, 대체 공급원과 재정에서 나온다.

NPT 탈퇴 문제는 이러한 대책과 구분해 다뤄야 한다. 국가의 최고이익이 위태로운 상황에서 조약상 탈퇴 조항을 검토할 수는 있다. 그러나 탈퇴만 하면 연료를 자유롭게 구입하거나 농축·재처리 시설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공급 중단과 기존 협력의 축소를 촉발할 가능성까지 평가해야 한다. 이를 정책 선택지로 검토한다면 안보상 이익과 민간 원자력·경제에 미칠 비용을 국민과 국회에 설명해야 한다.

정부는 국제사회에 분명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한국은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지 않으며 검증 가능한 비확산 의무를 이행할 것이다. 동시에 북한의 수중 핵위협에 대응할 방어 역량을 무기한 유보하지도 않을 것이다. 한국의 계획에 반대하는 국가는 막연한 우려를 넘어 구체적인 법적 근거와 실행 가능한 안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핵잠 연료 협력은 기다림만으로 확보되지 않는다. 미국과의 협상에는 시한을, 대체 공급망에는 예산과 책임자를, 국내 역량 확보에는 장기계획을 부여해야 한다. 국제규범 안에서 가능한 경로를 끝까지 확보하고 부당한 제한에는 외교·법률·산업 역량으로 대응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안보에 필요한 사업을 대한민국이 책임지고 추진한다는 원칙을 이제 실행으로 보여줄 때다.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

정충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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