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웅택
대구가톨릭평화방송 PD
도시는 오래된 건물을 복원한다고 살아나지 않는다. 사람이 걷고 머물고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최근 대구 원도심에는 반가운 변화가 이어진다. 경상감영 복원사업이 속도를 내고, 교동시장은 글로컬 상권 육성사업(약 38억 원)에 선정됐다. 동아백화점 본점 부지엔 청년임대주택이 들어서고, 대구시청 이전도 원도심 재생의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의미 있는 변화지만,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사업의 성공이 아니라 이들이 하나의 도시 생태계로 연결되는 일이다.
제인 제이콥스는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에서 도시의 활력은 거대한 개발이 아니라 “거리의 삶”에서 나온다고 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대구 원도심은 하드웨어는 갖췄지만 거리의 삶은 아직 충분히 회복되지 못했다. 근대골목, 전선문화관, 대구콘서트하우스, 대구역까지 기반은 구축됐지만, 시설과 시설을 잇는 사람의 흐름은 여전히 약하다.
찰스 랜드리는 『창조도시』에서 도시의 경쟁력은 새 건축물이 아니라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창의성”이라 했다. 결국 도시는 공간이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곳이다.
대구에는 500년 경상감영의 역사, 근대산업의 출발점, 섬유산업의 기억, 치맥 문화, 안경 산업까지 다른 도시가 흉내 낼 수 없는 자산이 있다. 그러나 이 자산들은 흩어져 있을 뿐 하나의 서사로 연결되지 못했다. 가나자와는 전통거리와 현대미술관을, 타이난은 오래된 시장과 청년창업을 결합해 도시 브랜드를 만들었다. 성공한 도시들의 공통점은 문화재 보존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문화로 바꾼 것이다.
리처드 플로리다의 ‘창조계급’ 이론처럼, 창의적 인재는 다양성과 삶의 질이 높은 도시를 선택하고, 청년이 모이는 도시가 기업과 일자리를 끌어온다. 동아백화점 청년주거와 대구백화점 본점의 미래 활용은 이런 관점에서, 청년 창업·디자인·공연예술·지역 먹거리가 어우러지는 창조 플랫폼으로 만들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경상감영에서 교동시장·대구백화점·동성로·향촌동·대구역·콘서트하우스를 잇는 보행 중심 문화벨트를 구축해, 시설이 아니라 경험을 파는 도시가 돼야 한다. 중기적으로는 대구백화점 본점을 공공·민간이 함께하는 복합문화 플랫폼으로 만들어 동성로 재생의 심장으로 삼아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대구경북신공항 시대에 맞춰, 국제 공연예술·음식축제와 디자인 비엔날레로 이틀 이상 머무는 국제문화도시를 지향해야 한다.
도시는 개발의 대상이 아니라 관계의 공간이다. 건물은 행정이 짓지만, 도시의 활력은 시민과 청년, 예술가와 상인, 여행자가 함께 만든다. 경상감영 복원, 교동시장 사업, 청년주택, 시청 이전은 원도심이 다시 태어날 드문 기회다.
대구 원도심을 과거의 유산으로 남겨둘 것인가, 아니면 아시아 도시 재생의 새로운 모델로 만들 것인가. 그 답은 지금 우리의 상상력과 실행력에 달려 있지 않은가.
우웅택 대구가톨릭평화방송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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