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투표지 부족 사태 여진
과거 후보자 운명 바뀐 사례 많아
미래 대한 엄중한 경고였을지도
국힘은 사전투표 폐지 당론 모색
이상구 인천대 대학원 초빙교수
6·3 지방선거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다. 투표지가 모자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가 하면 투표율 오입력까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총체적 난맥이 아닐 수 없다. 이를 관장한 선거관리위원회의 무능과 무책임까지 더해 선거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감마저 높아지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선거무효 소송도 줄을 이었다. 지난 7월16일 충주시장 선거 결과에 대한 재검표가 있었다. 1위와 2위 후보의 격차가 124표 차이에서 122표로 줄었다. 28일 통영시장 선거 재검표 결과에서는 당선자의 득표수는 변함이 없었지만 낙선자의 득표수는 6표 늘었다. 부산 북구 시의원 선거에서는 1위와 2위의 표 차가 26표에서 30표로 더 벌어지기도 했다. 개표결과의 오류는 현재진행형이었다. 도하 각 매체는 이를 보도하며 ‘이변은 없었다’는 식으로 결과에 집중하는 양상을 보였다. ‘고작’, ‘단’ 등의 부사를 써 미세한 표차를 강조하기도 했다. 부인 못 할 사실(fact)이긴 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대목은 간과하는 듯하여 안타깝다. 유권자 각자에게 주어진 한 표의 무게 혹은 가치 말이다.
선거 현장에서 그 한 표의 위력은 실로 대단하다. 그로 인해 후보자의 운명이 뒤바뀌는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 있었던 사건은 역대급이다. 인천지역 한 구의원 선거의 개표결과 A 후보가 한 표 차이로 이긴 것으로 집계됐다. 그러나 낙선한 B 후보의 요구로 진행된 재검표에선 오히려 낙선한 B 후보가 2표 더 득표한 것으로 나타났다. 단 한 표 차로 당락이 뒤집어진 것이다. 선후는 바뀌었어도 당선자와 낙선자는 천국과 지옥을 오간 셈이다.
2020년 인천 연수을 국회의원 선거는 하나의 분기점이 됐다. 당시 미래통합당 민경욱 후보가 청구한 재검표 결과 무려 279표가 잘못 집계된 것으로 나타났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가장 정교하고 과학적이라는 전자 개표시스템의 치명적 오류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일대 사건이었다. 게다가 재검표도 석연치 않은 이유로 1년 넘게 지연됐다. 그런데도 당락에 영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묻히고 말았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를 계기로 부정선거 진상규명 운동은 확고하게 명분과 세를 얻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8년 재보궐 선거에 처음 도입된 사전투표제에 대한 논란도 더욱 커지고 있다. 사전투표 결과의 편향성이 반복·고착화되면서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해 투표함의 부실관리, 이송과정의 허술함 등까지 드러나며 개폐 논쟁까지 불러온 것이다. 최근에는 표심의 유효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사전투표를 통해 지지한 후보자의 심각한 결함이 뒤늦게 드러나도 이미 투표한 후라 번복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하자라는 것이다. 이를 유권자 권리의 제한 혹은 침해로 해석하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러한 모든 문제점을 들어 사전투표폐지에 당론을 모으고 있다. 이에 따라 전면 수개표 도입과 사전선거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를 적극 검토할 필요와 의무가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다수 국민을 설득시킬 수 없거나, 오히려 국민 불신이나 갈등만 초래한다면 과감하게 수정하거나 아예 폐기하는 게 옳기 때문이다. 국민의 신뢰를 얻고 국가적 혼란을 막기 위해선 모든 부담을 감수해야 마땅하다. 우리와 디지털 기술 수준이 대등하다고 평가받는 대만이 아직도 투표 종료 후 즉시 현장 수개표 방식을 고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20년이 넘게 회자되는 ‘재검표 역전 사건’은 공교롭게 전자개표 시스템이 도입된 첫 선거에서 발생했다. 그때 이미 미래의 부작용에 대해 엄중한 경고를 날린 건지도 모른다. 그 예상대로 문제가 곪아 급기야 터진 형국이다. 사전투표제도도 다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다. 지난 일은 차치하고라도 봉합의 과제는 남았다. 첨단 선거 시스템 수출국으로서의 위신이나 지존심, 그동안의 매몰 비용 따위는 잊어도 좋다. 무엇보다 국민이 걱정하고 나라가 이 지경이지 않은가. 부작용이 더 큰 정책을 계속 밀어붙이는 건 국익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정책은 결과로 평가된다. 좋은 정책은 국민의 신뢰를 부르고 기꺼이 애국하게 만든다.
/이상구 인천대 대학원 초빙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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